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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폭포 깊은 소(沼)와 정사중이다
간지러운 봄 햇살에 놀러온 바람
쏴아 쏴아 몸 안으로 마구 들어온다
대나무 숲은 멀리서
바람 따라 우수수수 신호를 한다
할미 쪽머리 가르마 같은 길
양 옆에 거느리고 소나무들은
자욱한 솔향기 피워 망을 보는데
눈 부릅뜬 장승들 경계 속에서
겨우내 얼어붙어 참았던 욕망
흐흑 흐흑 재우치는 신음소리 거칠다
국창 송만갑이 득음했다는 정자에는
명창을 꿈꾸는 아이들의 창 소리
철썩이는 요분질 소리에 들을 수 없다
신선대에서는 갓 태어난 봄 햇살도
시린 물과 서털구털 통정을 한다
앞 메 잔등처럼 솟은 할미 바위는 숨죽여
울었던 민초들 설움에 얼마나 애달았을까
구례군 산동마을 산수유 꽃담 길
담벼락에 이끼 파랗게 물오르면
지리산 음지비알에도 얼음은 녹아
계곡물 불어나 시린 물 제 홀로 몸서리칠 때
수락폭포의 봄 저만치서 황홀하다

■시작노트: 봄, 봄, 천지사방이 봄이다. 간지러운 바람과 정겨운 햇살이 마음 들뜨게 하는 봄날에는 인적 드문 지리산 골짜기 어딘가에서 삶을 지우고 버리면서 사는 사람, 빚은 술이 익었다고 봄을 기별해주는 오래된 친구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약력: 2009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 <그리운 풍경에는 원근법이 없다> 펴냄. 현 광주보훈병원 심장혈관센터장. kvhwkim@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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