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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까지만 해도 동양에 한참 뒤처진 유럽이 어떻게 19세기 세계의 패권을 잡을 수 있었을까.


 역사에 있어 가정은 별 의미가 없지만, 만약 동양이 유럽을 계속 압도했다면 현대사는 크게 뒤바뀌었을 것이다.


 유럽 국가들에 19세기는 '최고의 100년'이었지만 아시아 국가들에겐 충격과 굴욕의 세기였다. 아시아 주요 국가들은 서양 국가들에 의해 강제로 문호를 개방했으며 좋든 싫든 서구의 가치관과 생활양식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신간 <유럽은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을까?>는 근대 유럽이 19세기 세계의 패권을 쥐게 된 배경에 대해 심도 있는 역사적 분석을 시도한다. 프랑스 근현대사를 전공한 후쿠이 노리히코 일본 가쿠슈인대 학장은 동양과 서양의 운명이 바뀌게 된 출발점을 '대항해 시대'로 규정한다. 15세기부터 시작된 대항해 시대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유럽 사회 전반에 연쇄적인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무역의 중심지를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이동시켰고 유럽 각국은 아시아 교역 시장에 앞다퉈 뛰어들었다. 아시아에서 흘러 들어온 막대한 부는 유럽 사회를 크게 변화시켰다. 부가 재편되면서 기존 신분 질서가 무너졌다. 유럽 각국에서 계몽사상이 태동했고 프랑스 혁명 등 시민 혁명이 유럽 각지로 번져나가면서 권력의 중심이 왕에게서 국민에게로 이동했다. 과학적인 사고는 산업화의 토대가 됐다.


 저자는 근대 유럽의 패권이 가진 빛과 그림자를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논한다. 16세기부터 20세기 전반까지의 긴 기간에 걸쳐 근대 유럽의 패권이 성립한 과정과 그 붕괴에 대해 살펴본다. 특정 인물이나 국가가 아닌, 근대 유럽사 전체를 조망함으로써 다채롭고 유기적으로 전개된 당시 상황을 흥미롭게 전달한다.


 저자는 국민국가의 성립과 산업 발전이 근대 유럽의 패권을 지탱하는 양축이 됐다고 분석한다. 저자는 근대 이후 유럽이 세계를 제패한 것은 단순히 유럽문명이 뛰어났기 때문이라는 유럽중심주의적 시각을 단호히 배격한다. 이른바 '근대 유럽의 패권'이 19세기에 갑자기 성립된 것이 아니며 대항해 이후 벌어진 역사적 전개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일본 고단샤 출판사에서 창사 100주년을 맞아 기획한 '흥망의 세계사' 시리즈 첫 번째 책이다.


 19세기 유럽의 세계 제패 이야기가 아직도 솔깃하게 들리는 건 근대 유럽이 낳은 '빛과 어둠'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 유럽의 역사를 통해 당시 서양에 일방적으로 밀렸던 근대 동양의 역사까지 되돌아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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