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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동구의 일산지역에는 지형이 바다 쪽으로 툭 튀어나온 지형이있다. 이를 한 시대에는 한 시대에는 울기(蔚崎)로 지명했다. 붉은 색이 많이 함유된 바위군을 지역사람은 오랜 세월동안 '댕방'으로 불렸다.  댕방은 시대에 따라 확대, 재해석되면서 대왕바위(大王岩), 댕바위, 대양암(大洋岩), 금강암(金剛岩) 등 명칭이 다양해졌다. 댕방은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에는 대왕암이라 불렀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정조.순조조에 활동한 울산사람 이양호(李養吾, 1738∼1811)의 시 '유은모군과 같이 바다를 보고 대왕암에 오르다(與柳君殷模觀海登大王岩)'에서 확인된다. 

 울산 향토사연구회장 이유수(李有壽,1926∼2007)는『울산지명사』(울산문화원, 1986)에서 대왕바위(大王岩), 댕바위, 대양암(大洋岩), 금강암(金剛岩) 등으로 소개했다.  (사)동구향토사연구회는 댕방을 문무대왕의 장지(葬地)로 연결시켜 1997년부터 매년4월에 행사를하고 있다.
 동구청은 2004년 대왕암 주위를 아울어 '대왕암공원'으로 명칭을 공식확정했다.

 댕방에는 살아있는 용과 죽은 용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한다. 하나는 살아있는 용의 처소 즉, 용추(龍湫)이다. 다른 하나는 떨어져 죽은 용 즉, 용추(龍墜)의 이야기다. 용추와 용추는 한자 표기는 다르지만 한글 표기는 같다. 용추(龍湫)는 용이 산다는 깊은 웅덩이를 표현하는 말이며, 용추(龍墜)는 용이 떨어졌다는 말이다. 물이 깊어 푸르게 보이는 용의 거주지보다 용이 승천하다가 잘못되어 떨어져 죽은 용은 피를 바위 이곳저곳에 뿌려 바위가 붉은 색을 띠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시각적이다. 아마도 바위군의 붉은 색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로 생각된다. 긍정적으로 볼 때 푸른 바다와 붉은 색의 바위군이 어울려있기 때문에 두 가지 이야기가 가능하다. 용추(龍湫)와 용추(龍墜)의 발상이 상상에 바탕을 둔 이야기화한것라면 삼국사기 기록의 대왕석(大王石)을 구태여 대왕암(大王岩)으로 부르는것은 애향적 바람의 정서에 바탕하고 있다고 하겠다.

 바닷가 붉은 색 바위군은 신라 때도 그 자리에 있었으며, 현재도 있다. 그러나 그곳을 찾는 사람은 시대 따라 달라지며 관심자에따라 전설에다 주관을 보태어 학문적으로 발전시킬려고도 한다. 앞에서 대왕암의 명칭이 다양한 것은 보는 사람마다 자기 주관의 반영으로 빗대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대왕암의 명칭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지만 대왕암 존재에 대한 인식의 주장은 수년간 설왕설래하고 있다. 대왕암의 지명 유래를 지형학적 접근보다는 역사적으로 접근하여  문무왕비릉론, 효성왕릉론, 문무왕릉론, 선덕왕릉론 등 다양한 추론을 말하고 있다.

 그 중 문무왕비릉론, 문무왕릉론 등은『삼국사기』문무왕 21년 7월 1일조의 "동해구의 대석 상에 장사지냈다. 세속에 전하는 것은 왕이 화하여 용이 되었다 하니 그 돌을 가리켜 대왕석이라 한다(葬東海口大石上俗傳王化爲龍仍指其石爲大王石)."라는 기록의 동해구와 대왕석에서 미련을 갖고 천착하고있다. 울산 동구 앞바다는 동해에 속하며, 공교롭게도 바위군의 이름이 대왕석과 유사한 대왕암으로 불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사성은 지역민 특히 향토사에 많은 애향심 발휘 자에게는 가슴설레이는 관심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지역것으로 접목될 충분조건으로 천착할 수도 있다. 동해에는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와 울산 동구 등 두 곳에 대왕암있는데, 지금까지 모두 문무대왕의 장지로 내세우면서 소모적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한편 동해에는 문무대왕이 죽어 용으로 변했다고하는 설화가 속전한다. 용이된 이유는 평화로운 신라를 호시탐탐 넘보는 왜적을 감시 격파하기 위함이다.

 문무대왕이 죽어 용이 되어 머무는곳으로 접근하면 두 곳 모두 정당성과 합당성에 설득력이 있다. 울산은 대왕석이나 대왕암 등을 장지적 바위에서 벗어나 문무대왕이 용이되어 머무는 용추암(龍湫岩)으로 과감하게 인식 전환할 때 '대왕암 대왕제'의 기대효과와 지역적 독창성을 더 부각시킬수 있으며 문무대제의 정당성도 있다.
 부여 조룡대에는 백제 무왕이 죽어 용이되어 그곳을 지키고 있었는데 소정방이 백마를 미끼로 잡았다는 전설을 간직하여 해마다 많은 관광객이 찾고있음을 타산지석으로 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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