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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노조의 특근거부가 도(度)를 넘었다. 석 달째 접어든 현대차 특근중단으로 협력업체를 비롯한 중소업체들은 사지(死地)로 내몰리고 있다. 그나마 지난주말의 경우  전주공장과 울산공장 소재 및 엔진부분은 생산을 재개했으나, 생산량의 절대량을 차지하는 승용 및 소형상용차 생산부문의 특근중단이 계속돼 그 효과는 미미하다. 이미 7만대 생산차질에 1조4천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니 열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번 특근중단은 어쩌면 현대차 노조의 특근거부라는 표현보다 '제조직의 특근거부'라는 말이 맞는말이다. 열네 차례의 긴 협의 끝에 지난 달 26일 현대차 노·사는 임금을 비롯한 특근운영 방식에 합의를 했다. 이는 노조집행부(지부)가 특근을 재재할 의지를 보여준 대목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특근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현장 제조직들의 반발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특근중단 책임을 지부에 전적으로 떠넘기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지부가 이번 사태에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절대 아니다. 이유야 어찌됐던 노조원을 대표하는 지부가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리더십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

 그렇다 치더라도 이번 특근중단 사태가 장기화되는 것을 보면서 일부 제조직들의 행태가 정치인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라는 것을 또 다시 확인했다. 하긴 두 개 계파가 연합한  현 집행부는 지부장이 리더십을 발휘하기엔 태생적인 한계도 있다. 하지만 조합원이 지부장을 뽑을 땐 분명히 지부장 후보를 염두에 투고 표를 던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내홍(內訌)을 일으키며 리더십에 타격을 입히는 것은 아무래도 볼썽사나운 장면이다.

 지난 6일부터 9일까지 진행된 현대차의 임시대의원대회는 인터넷으로까지 중계됐다. 이를 지켜보면서 '아, 한국 노동조합이 이렇게 변질됐나?'는 마음이 들었다. 올 임단협 요구안을 마련하기 위해 열린 임대가 집행부를 성토하는 자리가 된 것은 현대차 노조원들도 잘 알고 있다. 흔히 고약한 심사를 갖는 것을 두고 "손님 실수만 기다린다"고 한다. 이번 임대가 꼭 그랬다. 특근운영에 지부가 합의한 것을 두고 "직권조인"이니 "재협상을 하자"니 "추가협상을 하자"니 하면서 여기저기서 목소리만 높였다. 반대를 위한 반대, 한 마디로 무질서의 극치를 보여준 정치 놀음판이었다. 이 때문에 정작 신중하게 다뤄야 할 임단협 요구안은 막바지에서 서둘러 진행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현대차노조를 두고 '귀족노조'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이는 다른 사업장에 비해 월등히 높은 임금을 받고, 복지혜택과 근무환경도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여서 '신의 직장'이라고까지 불리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귀족'이라는 말은 가당치 않은 말씀이다. 바늘 가는 데 실 가듯이 귀족이라는 단어 뒤에는 반드시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라는 말이 뒤따른다. 쉽게 말해 남다른 대접을 받으려면 '사회적인 책임'도 다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일부 제조직을 비롯한 현대차노조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에 대해 심긱한 질문을 스스로 던질 필요가 있다.

 모기업의 특근중단이 길어지자 당장 생계비조차 위협받는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절박한 사정을 적은 피켓을 들고 와 "제발 주말특근을 합시다"고 호소를 했다. 그 전에는 업체 대표들도 노조를 찾았다. 지방은 물론 중앙언론조차 특근거부의 부당성과 위험성을 적시하며 "빨리 특근을 하라"고 수없이 충고했다. 수십 개에 이르는 사내 동호회에서도 대자보를 붙였다. 심지어 대의원대회에 참가했던 모 대의원은 회사 관리자에게 "차라리 회사를 파는 게 낫겠다"는 말까지 했단다. 기가 막히는 일이다. 그러나 특근거부 세력들은 귀가 없는지 눈이 없는지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자신들은 그 동안 얼마나 많이 벌어 놓았는지는 모르나, 이런 목소리에 귀를 닫은채 타인의 고통을 지속시키는 것은 스스로의 명분을 잃을 뿐이다.

 현대차 조합원에게 특근은 과외소득인지 모른다. 그러나 모기업 근로자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적은 급여를 받는 협력업체 근로자들에게는 가족생계비와 직결된다. 사돈의 팔촌까지 도움을 받아 힘겹게 회사를 세운 영세업체 대표들에게도 특근물량 확보야 말로 회사를 계속 돌릴 수 있는 캐시 카우(cash cow)다. 그러기에 현대차 노조 제조직의 특근거부는 그들의 목줄을 죄는 간접살인이나 다름없다. 이제 더 이상 그들에게 고통을 감내하라고 요구할 명분도 없다. 설령 모기업 노조가 피터지게 싸워 특근비를 더 받아낸다고 해도 업체 노동자들까지 특근비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신속한 특근재개, 그것만이 그들의 아픔을 들어주는 길이다. 제발 더 이상 정치놀음을 하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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