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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이 보도자료를 냈다. '반구대 암각화, 최선의 보존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핵심은 임시제방이든 뭐든 반구대암각화 주변에 어떤 인공물도 거부한다는 내용이다. 에둘러 "임시제방 설치는 암각화에 심각한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음을 관계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는 포장을 했고 말미에 울산시민의 식수원을 고려한다는 내용을 밝혔지만 수사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당장 올 여름 큰물지면 물 속에 잠기는 반구대암각화는 상관이 없다는 이야기다. 하기야 40여년 이상을 물 속에 방치해 왔는데 올여름이 대수냐는 입장이다. 그런데 말이다. 문화재청의 보도자료를 가만히 뜯어보면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임시제방이든 생태제방이든 안된다는 문화재청은 불가 이유를 세가지로 밝히고 있다. 그 하나가 완전한 물막이를 위해서 높이 약 15m 이상의 규모와 엄청난 수압을 견디는 구조적 강도를 지녀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생태제방을 제시한 울산시가 수자원학회의 공식 검증을 거친 사안을 문장 한줄로 거절한 셈이다. 생태제방의 경우 성토과정을 통해 최소한의 토목공사를 하는 것을 마치 댐이라도 만드는 토목공사로 과장하고 있다. 특히 15m의 엄청난 구조적 강도 운운하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두 번째 이유는 생태제방의 경우 물길 확보를 위해 암각화 전면 야산의 상당 부분을 절개하는 토목공사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들었다. 인공적인 토목공사의 불가피성은 이미 예견된 사안이다. 수문설치를 할 경우에는 토목공사가 불필요한 것처럼 이야기 하지만 이 역시 인공적인 구조물의 개보수 작업이 필연적이다. 어떤 방식으로 암각화를 보존하려해도 이미 사연댐이라는 거대한 인공물이 가로막혀 있기 때문에 원형보존은 전제의 오류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거론한 것은 생태제방 공사를 시행할 경우 터파기·다짐·운반, 배수를 위한 모터의 진동 등으로 암각화에 심각한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거론했다. 이 문제는 기우에 불과하다. 댐을 만들거나 도로를 개설하는 거대한 토목공사를 유추해 이를 비교대상으로 삼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생태제방을 위한 특수공법과 가능한 소음진동을 줄이는 공사방식은 얼마든지 있다. 문화재청이 전국의 수많은 문화유적을 복원하거나 조성할 때 소음진동 따위의 문제를 한번도 거론하지 않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문제는 이번 문화재청의 보도자료가 가진 함의에 있다. 21일로 예정된 문화재위원들의 반구대암각화 현장설명회에 맞춰 보도자료를 낸 문화재청은 이를 통해 자신들의 확고한 주장을 울산시에 전달하겠다는 의지다. 울산시와 여권의 공세에 주춤했던 여론전을 다시 추스르고 적어도 문화재 문제에서는 자신들이 '갑'이라는 입장을 굳건하게 하겠다는 의지다.

 사실 '반구대청장'으로 불리는 변영섭 문화재청장이 문화재청의 수장이 된 이후 반구대암각화는 어느 때보다 국민적 관심의 대상이 됐다. 스스로 갑이라 생각하는 문화재청은 새로운 청장의 의지에 맞게 그동안 열심히 여론전에 매달렸다. 문화재 전문위원과 문화포퓰리즘에 충실한 재야 운동가까지 동원한 여론전은 원칙에 충실한 '원형보존론'을 무기로 울산시와 울산시민을 '문화재파괴자'로 매도해 왔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들의 활동은 반갑다. 방관하고 방치하며 무시해왔던 문제를 스스로 꺼내 바로잡아 보겠다는 노력은 건강하다. 다만 지나간 시간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잘못된 문제들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없었기에 지금, 그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잃고 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우리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갈등을 조장하고 증폭시킨 쪽이 그들이지만 굳이 대립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싶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핵심은 반구대암각화 보존이지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들의 아집을 비난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재를 사랑하고 이를 보존하고자 하는 애정은 모두가 동일하다. 문제는 방법이다. 합리적인 해결책보다 최선의 방법을 고집하는 문화재청이 알아야 하는 부분도 이 지점이다. 반구대암각화의 원형은 이미 사연댐 건설로 잃어버렸다. 그 사실을 지우개로 지운채 원형보존을 사수하겠다는 이야기는 아집이다. 스스로 갑이라 생각한다면 생태제방은 안된다고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사연댐을 헐고 물길을 열어주자고 주장하는 것이 진정한 '갑질'이다.

 울산시민들의 식수 문제와 반구대암각화의 보존은 어느 한쪽도 포기 할 수없는 문제다. 양날의 칼을 갈기만 하면 칼날만 예리해질 뿐이다. 스스로 칼을 쥐고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어느 쪽이든 칼날에 상처를 입지 않도록 견고한 칼집을 만들어야 한다. 잊을만 하면 여론전을 펴고 진지한 검토없이 반대 보도자료나 내는 일로 '갑질'을 할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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