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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현대차 노사가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지난달 28일 상견례를 가진 후 지금까지 다섯 차례의 임단협 교섭을 진행했다. 그런데 지난 17일 '함께 가는 길'이라는 간행물을 통해 회사는 이번 협상을 '많고! 무겁고! 과도하고!'의 소위 '삼고(三苦) 교섭'이라고 정의했다.

  올 협상을 앞두고 노조(지부)는 회사에 임금 13만498원 인상을 비롯해 75개 요구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실제 세부조항까지 포함하면 무려 200개에 육박한다. 일개 기업의 노사협상에서 이만큼 많은 안건을 다루는 경우는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아마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물지 않을까 싶다.

  숫자 못지 않게 요구내용 또한 현란하다. 그 중 눈에 띄는 몇 가지만 보자. 노조활동에 대한 면책특권, 상여금 800%, 퇴직금 누진제, 정년 만 61세, 차량 할인 최대 35%, 순이익 30% 성과급 지급, 대학 미진학 자녀에 대한 기술지원금 1천만원 지급, 미사용 생리휴가 150% 지급(일반 연월차는 이미 150% 지급), 완전고용보장 합의서 체결…. 이만하면 '화려하다'는 표현을 써도 절대 과장이 아니다.


 기업은 재화가 샘물처럼 무한정 쏟아져 나오는 화수분이 절대 아니다. 사람과 같은 하나의 생명체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건강관리를 못하면 단명을 할 수 밖에 없다. 누가 봐도 탄탄한 기업들조차 힘들게 번 돈을 R&D(연구·개발)에 쏟아 붓는 이유도 건강한 생명을 오래도록 유지하기 위해서다. 더욱이 요즘 같은 무한경쟁시대는 삐끗하면 몰락으로 치닫게 된다.

  연습도 없다. 한 때 전 세계 경쟁업체를 호령했던 소니와 GM이 처참하게 구겨질 줄은 감히 상상이나 했던가. 이미 시장에서 사라진 기업도 부지기수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로마제국의 멸망을 비롯해 국가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한순간 방향이 뒤틀리면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 세상이치다.


 현대자동차가 얼마나 대단하고 든든한 재력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늘이 보장하는 특별한 기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안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더욱 그렇다. 실력 있는 사람도 많겠지만, 운이 좋아 그곳에 들어가 큰 소리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노조는 회사를 옥죄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개발해 협상테이블에 올려놓고 한판 전쟁을 벌일 태세다. 그러면서도 틈만 나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니 '동반성장'을 거론한다. 문제는 노조가 가진 '사회적 책임'이다. 현대차 노조는 이미 우리 경제에서 상당한 책임을 공유해야할 위치에 있다. 이는 해마다 반복되는 현대차 노조의 다양한 요구안이 여타 사업장 노조에게 곧바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데서 잘 드러난다.

 우리 사회에서 노조는 동반성장이나 자본의 재분배 등 긍정적인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같은 이면에는 특정 노조가 권력집단으로 변질하고 노조 간부가 귀족노조 소리를 듣는 부정적인 효과도 함께 만들어져 온것이 사실이다.

  이는 바로 이번 현대차 노조의 요구안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현대차 노조는 이번 교섭에서는 '면책특권'을 요구했다. 국회의원들조차 자신들이 너무 과도한 대접을 받고 있다며 특혜 하향조정을 논하는 시대다. 일개 기업의 대의원이나 조합 집행부 상근자들이 얼마나 큰 일을 하는 대단한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조합활동에 따른 행위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말라고 하는 것은 너무 후안무치(厚顔無恥)하지 않은가. 이런 논리라면 대한민국에서 면책특권을 받아야 할 사람은 아마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만 명에 이를 것이다. 권력병(病)이라는 게 있다면 중증환자 수준이다.


 그동안 현대차노조가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은 한둘이 아니다. 긍정의 측면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많은 국민들이 '사회적 책임'을 외면해온 문제를 지적한다. 특히 자기들 주장처럼 동반성장을 해야 할 협력업체와 그 근로자에게 안긴 고통은 필설로 다할 수 없다.

  최근만 해도 그렇다. 10년 동안 줄기차게 요구했던 주간2교대가 지난 3월부터 실시되기 바쁘게, 특근비 산정을 빌미로 무려 석 달이나 주말특근을 거부했다. 이로 인해 일할 기회를 박탈당한 중소업체 노동자와 그 가족은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현대차 조합원들은 자신들이 받는 고액연봉과 각종 복지혜택에 대해 동종업계 협력사에서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스스로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자신들의 처우가 어느 정도 선에 있는지를 제대로 바라볼 때 '함께하는 세상'이라는 노조의 명분이 긍지가 된다. 문제는 해마다 반복돼 온 현대차 임단협의 불협화음이다. 지금 회사가 노조의 요구안을 두고 고통(3苦)을 호소하는 것을 나몰라라 해서는 안된다. 회사의 미래가 직원과 조합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이번 교섭이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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