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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을 수행하면서 사실 언어만큼 큰 혜택을 입고 있는 것이 없는데 자주 언어의 힘을 간과 해버린다. 아마도 암암리 말로서는 상처를 치료할 수 없다는 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 나온 말을 내가 믿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렇지 않은가. 사실 말은 그냥 말일 뿐이고 '실재'에 대한 표상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을 치료하고자 하는 '심리학'에서 조차 이론적 전개를 하다보면 자기-표상 대상-표상이라는 말을 쓴다. 마음 안에서의 예컨대 어머니라는 대상 표상과 아들인 자기 표상이 대상관계로서 내면화 돼있다는 식이다.

   이론으로 설명하려는 것이니 그럴 수 있다고 이해는 가는 것이지만 어머니 존재와 아들인 나의 존재라는 것은 존재로서 있는 것이다. 그 존재에 대한 이해가 일차적인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은 그냥 표상으로서는 상처를 만져줄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닌 말뿐인 말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정신과 의사인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을 시작한지도 1세기가 훨씬 넘는다. 그의 기본 치료 규칙은 '환자는 자신과 치료자에 대해 철저히 정직하고 진실해야 한다. 환자는 그의 마음이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가는 모든 것들을 어떠한 예외도 없이 고백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이 규칙이 지켜진다면 우여곡절을 겪겠지만 지금까지 저항해 왔거나 깨닫지 못했던 세계와의 관계를 포함한 모든 가능성이 자유롭게 실현되리라는 것이다. 

 한 사람의 세계도 사실은 역사다. 고백하는 것은 그의 과거이며 그렇게 솔직하게 밝힌 과거를 되찾아 현재로 가져오게 하는 것이 모든 역사의 과제인 것이 아닌가. 이런 역사는 모두 언어로 써져 있다.

 필자는 그것을 환자들에게 '과거작업'이라고 설명한다. 과거는 옷처럼 그냥 벗어 버릴 수 없는 것이다. 그냥 사라지지는 않는 것이며 솔직히 자신을 드러냈을 때에야 그것을 현재로 가져오게 해 기억케 할 수 있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요점은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것이다. 모든 생각과 감정을 상세하게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라는 것이다. 언어는 인간의 거주지라는 것으로서 거주지로서의 언어라면 자신의 모든 것이 그 안에 담길 것이고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환자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야 하는 것은 정신과 의사만이 아닌 모든 의사가 그렇다. 병력 채취(history taking)를 하는 것이고 병력을 문진에서 행하는 것은 병의 원인과 결과를 찾고자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이미 두 존재는 인간으로서 만나고 있는 것이다. 서로의 마음이 오가고 있는 것이며 이러한 때 정신과 의사는 '과학적인' 언어로 원래 언어의 공감적인 부분을 억압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언어, 진정한 너와 나의 관계에서의 언어 그리고는 자신의 역사를 기록하는 언어를 말하고 싶은 것인데 필자는 환자들에게 의사가 환자의 증상이나 소견을 적듯이 본인도 자신의 감정이나 고통 생각 같은 것을 적으라고 말한다. 그것은 미래의 자신의 투병일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고도 말은 그냥 말일뿐일 수 있다. 병이 좋아진 다음 어떻게 좋아진 것인지를 돌아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오랜 상담에서 정말 존재인 네가 나에게 말을 걸어 그 말에 너를 직접적으로 체험하며 네가 나와 하나같이 느끼게 된 그 어떤 것에서 치유에 이르게 한 것인지….

   언어는 존재의 조명영역이라서 존재하는 모든 것이 출현해 치유되게끔 하는 그런 것인지를 확실히는 말할 수 없지만 생각이나 말이 없는 어두운 실존영역에서 그래도 자유로운 빛 속으로 나오는 것이 언어가 아닌가. 우리가 말하고 쓸 수 있음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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