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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괘천에서 바라본 작천정.  정자 맞은편 바위에 새겨진 한시들이 눈에 띈다.


예부터 물 좋고 산새좋은 곳엔 시인 묵객들이 풍류를 읊고 문학과 정치를 논하던 정자 한 곳쯤은 으레히 있었다. 울산에선 울주군 삼남면 교동리에 소재한 '작천정'(酌川亭)이 대표적이다. 작괘천 가의 기이한 바위와 수려한 풍광으로 이름 난 이곳엔 여러 시인 묵객들이 시대를 오르내리며 찾았다는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있다. 최근 울산대곡박물관이 열고 있는 '울산 작천정에 꽃핀 문학전'은 이 시인 묵객들의 발자취를 더듬는 전시다.
전시와 함께 작천정을 직접 찾는다면, 옛 시절 간월산 기슭 아래서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던 시인 묵객들의 예술향기가 전해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다보면 각진 도시생활쯤은 잠시 잊은 채 여백의 삶을 한가롭게 꾸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수려한 경관으로 묵객 유혹했던 작괘천
작괘천(酌(勺)掛川)은 간월산(1,083m)에서 물줄기가 시작돼, 등억리와 작천정 앞을 지나 태화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시내의 이름이다.
 작괘천은 예로부터 경관이 매우 빼어난 곳으로 알려져 있었으니, <교남지(嶠南誌)>와 <울산읍지(蔚山邑誌)>는 이곳 풍경을 가리켜 "너럭바위가 맑고 깨끗해 마치 옥 판자를 땅에 깔아 놓은 듯하고, 바위 면이 마치 술잔 모양 같다"고 찬탄했다.
 지금도 작괘천은 사시사철 아름답다. 너럭바위와 간월산 산새가 드리운 풍경은 철마다 그 아름다움이 변한다.
 특히 봄이면 오랜 연륜의 벚나무들이 피워내는 벚꽃들이 아름답고 여름이면 정자 앞을 흐르는 차디찬 물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 더위가 가신다. 정자 주변에 있는 고목이 만들어내는 그늘은 더더욱 시원함을 더한다.
 이 시내의 주변은 간월산 중턱의 홍류폭포를 비롯해 호박소 등 아름다운 경관이 하늘을 찌를 듯한 산의 위용과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등산객들이 많이 찾아 올라가는 곳이기도 하다.
 인근의 자수정 동굴과 신불산 자연휴양림 역시 뭇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잡아끈다.
 

바위에 새겨진 글귀.


# 아름답지만 화려하지 않은 작천정
맑은 물이 흘러 여름철이면 피서객이 끊이지 않는 작천정. 기이한 너럭바위 위로 흐르는 맑은 물빛이 고운 정자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누각 건물로 지난 1902년 7월 건립됐다. 작천정 앞 바위부터 건너편 바위까지 한시, 명문이 빼곡해 이곳이 유서깊은 정자임을 알려주고 있다. 멋스럽지만 난해하지 않고, 아름답지만 화려하지 않은 정자다.
 울산대 국어국문학과 성범중 교수는 "작천정의 건립시기는 분명치 않지만 작괘천의 가장 아름다운 곳에 자리를 잡아 너럭바위와 시내를 굽어보고 맞은편의 산을 마주하고 있는 이 정자는 언양지역의 시인묵객들이 자주 찾은 명소였을 것이다"고 말한다.
 이곳은 고려말 유배온 포은 정몽주 선생이 글을 읽던 곳이라고도 전해진다. 건립유래는 정자에 걸린 <작천정기(酌川亭記)>에 전해진다.
 1887년 언양 선비들이 모은 시계가 1895년 언양현감 정긍조(鄭肯朝)에 의해 시사(詩社)로 바뀌었으나 모임 장소를 구하지 못하다, 1898년 최시명(崔時鳴)이 언양군수로 온 다음 작천정을 세웠다 한다. 지금의 작천정은 세 차례 중수를 거쳐 2005년 다시 중건된 것이다.
 정자 내부엔 상량문을 비롯해 기문시 등 편액 19개가 새겨져 있고 주변 너럭바위엔 시회(詩會) 우수작 및 정몽주 선생을 추모하는 '모은대'(慕隱臺)등이 새겨져 있다.
 

 

# 대곡박물관 '울산 작천정에 꽃핀 문학'展
최근 울산대곡박물관은 개관 4주년을 기념해 이곳이 시인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었음을 재조명하고 있다.
 신형석 관장은 "작천정에는 여러 개의 현판이 걸려있고 주변 바위에는 다양한 시문이 새겨져 있다"며 "그동안 이들 자료가 한문으로 적혀 있다 보니 일반인들이 그 내용을 알기 어려워 이를 쉽게 번역해 소개하는 작은 전시회를 기획하게 됐다"고 했다.
 전시에는 작천정 관련 상량문 1편, 기문 5편, 시 18편 등이 소개되는데 원본과 함께 사진, 번역문도 함께 실렸다. 한문 자료 번역 및 패널자료에는 성범중 교수의 도움을 받았다.
 특히 전시에 소개되는 한시들을 보면 우선 작천정의 수려한 풍광을 노래한 시들이 눈에 띈다. 만화 김헌륜(金憲輪)의 작품이다. 이 시는 작괘천 주변 산수의 아름다움을 그려내고, 그 가운데 한가롭게 오락가락하는 노인의 태평스러운 모습을 그렸다.
 
 이름난 구역이 많이 있는 곳이지만
 으뜸은 작괘천의 다락이네.
 산의 형세는 구름에 기대어 서고
 물의 마음은 바다를 좁게 여기며 흐르네.
 문장은 비단을 열어 헤치고
 광경은 봄가을에 달라지네.
 태평시대에 눈썹이 흰 늙은이는
 한가롭게 오지만 시름은 보이지 않네.
 
# 기이한 바위로 더 유명했던 작천정
작천정을 찾은 시인 묵객들은 기묘하게 생긴 바위 등에서 오는 경이감과 감흥을 노래하기도 했다. 경주서 살았던 남경희(南景羲, 1748~?)의 작품이 그 예다.
 이곳에는 유람객이 많이 지나갔는데
 넓고 아득한 남은 자취에서 신선들을 말하네.(중략)
 조물주는 누구를 위해 교묘하게 쪼고 새겼는가?
 고상한 사람은 예로부터 맑고 그윽함을 주관하였네.
 산림은 인가가 가까워도 무방한데
 귀를 씻는 데 어찌 반드시 허유(許由)를 배우리요?
 
 이처럼 작천정은 예부터 바위 모양새가 신기한 것으로 유명했으며 이곳을 찾은 시인 묵객들은 허유의 고사가 전해지는 기산(箕山) 영수(潁水)를 찾지 않더라도 그들의 삶의 자세를 이곳에서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다.
 남강 신성표(申星杓) 역시 작천정의 기이한 바위를 노래했다.
 
 푸른 산이 있어서 유명한 것이 아니요
 파란 물이 흘러서 빼어난 것이 아니네.
 기이한 경관은 오직 잔질하는 바윗돌인데
 천하에서 다시 구하기가 어렵네.
 
 그는 이곳이 유명한 것은 푸른 산이 있기 때문도, 파란 물이 흐르기 때문도 아니라고 하면서, 이곳이 기이한 것은 바위 때문이므로 천하 어디에 간들 이런 모습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 추전 김홍조와 구소 이호경
작천정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도 소개된다. 추전 김홍조(金弘祚, 1868~1922)와 구소 이호경(李頀卿, 1894~1991)이 그들. 둘의 이름은 작천정 앞 바위에 새겨있다.
 김홍조는 근대 울산의 선각자로, 큰 부자였다고 전해진다. 한 때 작천정을 소유했으며 학성공원 부지를 지역사회에 기증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그의 소실 이호경은 이구소로 알려져 있는데, 한시 작가로 유명했다. 그는 작천정에 대한 여러 편의 시도 지었는데 계절의 순환에 따른 경이감, 인생에 대한 성찰과 이별의 정회 등을 토로했다.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작천정을 출입했고 정자 마루엔 먹물이 마를 새가 없었다. 이런 데엔 정자의 위치와 주변 풍광이 한몫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그 풍광과 함께 이곳에 새겨진 시문들에서 그와 비견되는 호젓함을 얻어간다.
 신형석 관장은 "작천정에서 많은 시문들이 쓰여졌고 문학이 꽃피었음에도 이를 잊고 지낸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이번 전시는 작괘천과 작천정이 경치뿐 아니라, 여러 글로 인해 이름을 날렸던 곳임을 보여주는 자리"라고 소개했다. 전시는 오는 9월 29일까지. 문의 229-4741  김주영기자 usk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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