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흔히 가난한 사람이라고 하면 자신감이 적고,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가 부족하며, 게으르다고 생각하는 선입견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근로의욕을 잃은 사람은 '아직 배가 덜 고픈 자'로 취급해 도와줄 가치가 없다고 여긴다. 이처럼 가난의 고리를 개인적 차원에서 이해하려는 시각이 퍼져 있는 사회에서 복지는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들의 피 같은 세금으로 게으른 인간들에게 퍼붓는 시혜가 된다.


 복지혜택을 늘리면 근로보다는 정부의 지원에 의존하려는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에서도 우리 사회의 빈곤을 바라보는 시각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하지만 통념처럼 빈곤은 게으름과 무능 때문일까?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서재욱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원은 이번 신간에서 가난의 원인을 개인적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접근은 한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우선 빈곤층이 근로 동기가 약하고 복지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가정은 충분한 경험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2003년 미국의 정치학자 손드라 슈나이더와 윌리엄 제이코비의 연구는 연방정부의 공공부조급여를 받는 사람과 받지 않는 사람이 기본적인 가치관에서 거의 차이가 없음을 밝혀냈다. 여론조사에 응한 빈곤층 상당수는 공공부조를 계속 받기보다 일자리를 구해 빈곤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고 답변했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많은 사람이 졸지에 실업자가 되면서 노숙자가 늘어나고 많은 가정이 해체되는 비극을 겪었다. 최근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경기가 악화하면서 많은 영세 자영업자들이 곤경에 처한 상황까지 고려하면 가난을 개인의 근로 윤리 문제로 돌리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저자들은 꼬집는다.


 더군다나 개인의 근로 윤리를 강조하더라도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부분까지 개인 책임의 영역으로 내버려둬서는 빈곤의 감소를 기대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빈곤한 개인이 아무리 근로시간을 늘려 더 많은 소득을 얻는다 해도 생필품 가격이 급등한다면 개인은 빈곤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92쪽)


 저자들은 "중요한 것은 편견과 차별로 빈곤의 원인을 손쉽게 재단할 때 빈곤문제 해결이 더욱 요원해진다는 점"이라며 "빈곤층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빈곤을 재생산하는 기제로 작동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책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논쟁이 되는 주제에 대해 명쾌한 답을 제시한다. 예컨대 △복지와 경제성장은 양립할 수 없는지 △복지를 확대하면 국가 재정이 파탄 날 것인지 △복지를 확대하면 복지의존은 필연적으로 나타나는지 △해외원조는 정치·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해야 하는지와 같은 물음에 저자들은 단호히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구체적인 수치와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여전히 보편적 복지와 복지 확대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빈곤은 우리가 당장 나서서 싸워야 할 광범위하고도 심각한 문제란 것이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