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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한 이견대 오르니 대왕암이 한눈에
감은사 빈 터 지키는 삼층석탑 2기 늠름
돌아오는 길 감포항 들러 무더위와 안녕


경주 감포로 가는 길이 더욱 시원해졌다. 지난해 9월 경주 읍천과 봉길을 잇는 터널이 개통됐기 때문이다. 무더운 날씨에 지친 마음을 달래줄 나들이 장소는 없을까 생각하다 문득 감포가 떠올랐다.

    봉길터널이 개통됐다는 소식만 들었는데다 감포라는 마을구경도 제대로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곳에 문무대왕릉을 잘 볼수 있다는 이견대가 있다는 정보만 머리속에 담고 무작정 차 시동을 켰다.

 비 온 뒤 맑음이라고, 날씨는 끝내주게 좋았다. 푸르른 하늘과 초록빛 나무가 반짝여보일 정도로. 저 멀리 에메랄드빛 강동바다 품에 안기고 싶은 기분이 든다. 준비 없이 떠난 여행의 예감이 좋았다.

 그러나 위기는 찾아왔다. 경주 읍천항을 지나 월성원자력 방면으로 들어설 때쯤 길을 잃어버렸다. 길치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어 내비게이션을 이용했건만 왜 이런 시련이 찾아왔을까.

 월성원자력 홍보관 주변을 몇 바퀴나 돌고 있는데 내비게이션이 새로운 길을 안내해 준다. 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주변이 너무나 고요하다. 으쓱한 기운이 들었다. 원래 감포로 가는 길이 이렇게 한적했던가 싶었다. 꼬불꼬불 비탈길을 타고 5분을 달리다 또 한 번의 좌절을 맛 봤다.

 '통행금지. 터널을 이용하세요'  아…. 터널이 뚫렸다는 얘기에 감포를 찾았는데 정작 터널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내비게이션도 지난해 이후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은 탓에 구식정보를 알려준 것이다. 그제서야 터널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월성원자력 홍보관으로 돌아갔다.

 홍보관 주차장쪽으로 가면 포항 방면의 길이 나오는데 그 도로를 타고 달리면 되는 것이었다. 아주 친절하게도 터널 가는 길 안내판도 떠억하니 세워져 있었는데 이를 지나쳤다니 등잔 밑이 어두운 셈이었다. 처음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울산 동구에서 감포까지 1시간이면 도착하는 길이 30분이나 지체돼 버렸다. 이제 이 도로를 타고 감포로 가면 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휴대폰 내비게이션도 가동했다.
 

#문무대왕릉 내려다보이는 이견대
 봉길터널로 진입하자 새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깔끔하게 정비된 긴 터널을 타다 또 다시 햇살을 맞았다. 조금 지나니 길이 두갈래로 나뉜다. 왼쪽으로 가면 감은사지가 나오고 오른쪽으로 돌면 이견대가 나온다고 했다. 우선 이견대부터 가보기로 했다.

 이견대는 생각보다 아담했다. 사진 속에서 본 이견대는 화려하고 웅장해보였는데 실제 모습은 중대형의 정자 느낌이었다. 그만큼 방문하는 이들도 이 곳을 쉼터로 생각하고 있었다. 점심시간 때라 월성원자력 직원들로 보이는 여럿이 여기를 찾아와 목을 축이고 있었다.

 이견대는 문무대왕릉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최적지라고 알려져 있다. 신라 문무왕의 혼이 깃든 대왕암을 바라보는 언덕 위에 자리잡은 정자이니 그럴만도 하다.

 삼국유사 기록을 보면 이견대는 신문왕이 바다에 나타난 용을 보고 나라에 크게 이익을 얻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용으로부터 세상을 구하고 평화롭게 할 수 있는 옥대와 만파식적이라는 피리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뒤 신문왕은 문무왕을 참배하자는 뜻에서 대왕암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이견대를 지었다고 하는데, 현재 이견대는 신문왕이 지은 이견대는 아니다. 소실된 이견대를 지난 1970년께 발견해 1979년 당시의 건물 양식을 추정해 다시 지은 곳이 지금의 이견대다.

 정자에 오르니 아름드리 소나무 사이로 넓은 바다와 문무대왕릉이 한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서 볼 수는 없지만 깊은 동해바다 속에 잠든 문무대왕의 위엄이 느껴진다.

#문무왕 영혼 깃든 감은사지
 이견대를 빠져나와 감은사지로 방향을 돌렸다. 감은사는 문무왕의 영혼이 깃들여진 사찰이다. 문무왕은 왜구를 격퇴하고자 해변에 절을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끝내 마무리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아들인 신문왕이 부왕의 유지를 이어받아 나라를 지키는 사찰로 682년에 완공했다.

 지금은 영광스러운 이름만 남아있을 뿐이다. 문무왕은 절을 완공하기 전 건강이 위독해지자 "죽은 후 용이 돼 불법을 받들고 나라를 지키겠다"며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리고 그 유언이 이뤄진 곳이 이견대에서 보이는 문무대왕릉이다.

 신문왕은 문무왕의 뜻을 이어 절을 완성시키고 감은사(感恩寺)라 이름 붙였다. 삼국유사에는 신문왕이 금당(金堂) 계단 밑으로 구멍을 내어 용이 출입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발굴 결과 금당의 마룻바닥 밑을 땅보다 높여 돌다리 놓듯이 만든 흔적이 발견됐다.

 나라를 지키는 사찰이었던 감은사가 언제 없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현재는 터만 남아 감은사지라 불리는데 삼층석탑 2기만 남아 국보 제112호로 보존되고 있다. 높이 13m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석탑 중에서 가장 크다.

 동해를 바라보는 높은 대지에 굳건히 발을 붙이고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오른 모습이 늠름하다. 청명한 날씨 덕분인지 삼층석탑의 모습이 더욱 웅장하게 느껴졌다. 우뚝솟은 석탑을 뒤로하고 바닷바람을 쐬러가기로 했다. 장쾌한 삼층석탑의 모습에 압도당했지만 찜통같은 날씨가 발걸음을 옮기게 한다.
 
 

#소규모 어시장 형성돼 있는 감포항
 바다를 찾아 도착한 곳은 감포항. 상쾌한 바람과 함께 바다내음이 더위를 싹 가시게 한다. 항구 주변에는 가자미 등 해산물을 판매하는 횟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손님을 유혹하는 횟집 사장님들도 더위에 지쳤는지 거리에 나와 담소를 나누는 중이다.

 차를 항구 가까이 세우고 내렸더니 깜짝 놀랄만한 기운이 느껴졌다. 거짓말 1%도 하지 않고 차량 에어컨 바람을 능가하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항구를 바라보며 바람을 만끽했다. 소규모로 어시장이 형성돼 있는 감포항을 한바퀴 돌고 나들이를 마무리 하기로 했다.

 울산으로 돌아가는 길. 길을 잃어버린 탓에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문무대왕릉이 가까이 보인다. 봉길해수욕장이다. 그냥 돌아가기에는 아쉬워 잠시 차를 세웠다. 하늘은 푸르고 바다는 쪽빛이다. 바다 위 문무대왕릉도 굳건한 호국의지로 뜨거운 여름을 맞이하고 있었다. 올 여름 더 가까워진 감포로 가는 길은 유난히 시원했다. 글·사진 김은혜기자 ryusori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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