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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읍성 중심에 위치한 동헌 객사 학성관 앞 대로의 장날 풍경.

울산읍성은 왜구의 침략에 대비해 1385년 고려 우왕 11년에 처음으로 축조되었다. 1476년 조선 성종 7년에 병조판서 이극배의 보고로, 다시 축조되어, 이듬해 1477년 10월에 완성되었다. 당시 성곽의 위치는 현재의 함월산 남쪽인 중구 북정동, 교동, 성남동, 옥교동에 걸쳐 있는 큰 성이었다. 읍성의 규모는 성종실록에 높이 15척(약 4.5m), 둘레는 3,639척(약 1103m)으로 기록돼 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왜군이 울산읍성을 허물면서 사라져 버렸으며, 그 후 성의 복원을 보지 못하고 무성곽의 고을이 되고 말았다. 지금은 동헌 일원을 제외하고는 남아있는 것이 없다.
 
그동안 울산읍성 복원에 대한 목소리가 나왔지만 예산이 없어서 울산읍성 복원을 하지 못했지만 지난 2012년 정부예산에 울산읍성 관광자원화 사업을 위해 42억원이 반영됨으로 본격적인 울산읍성 복원사업을 시작됐다. 일단 2020년까지 동·서·남·북 성문 복원과 및 역사공원이 조성된다.
 
울산읍성의 복원 이전에 울산시민연대에서 울산읍성 도시탐방을 진행하였고 울산읍성내에 있었던 관아지를 다 찾는 노력을 해 왔다. 이러한 시민단체의 노력이 있었기에 복원이라는 결실을 맺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는 성벽은 없지만 그 흔적을 알 수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복원에 따른 근거자료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울산읍성의 전체적인 규모나 누각을 본 사람이 없고 사진도 남아있지 않다. 물론 누각에 대한 사진들은 남아있다. 현재까지의 자료를 종합해 보면 읍성 내에는 동헌(東軒), 내아(內衙), 객사(客舍)를 비롯해 30여 개의 관아시설과 8곳의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우물의 숫자로 미루어 볼 때 성안에는 많은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동서남북의 네 문에 3개소의 문루(駕鶴樓, 太和樓, 江海樓)가 있었다고 한다.

울산읍성의 입지특성은 성곽 뒤에 함월산(含月山)을 진산으로 하고 성곽 앞의 태화강(太和江)을 수계로 하여, 모든 배수는 성곽 앞의 태화강으로 빠지게 했으며 도로망은 동서간선도로와 남북 간선도로로 이어지는 T자형 도로구조였다고 한다. 현재 울산읍성은 성곽 유구가 전혀 남아있지 않아 대부분 형태를 찾기 힘들지만, 읍성 당시의 도로는 곳곳에 지금도 남아있는 곳이 많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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