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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심 속에 자리한 울산동헌과 내아는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호다. 이 건물은 조선 선조 32년(1599)에 울산이 부로 승격된 후 숙종 7년(1681)에 지어졌다.

도심 속에 자리한 울산동헌과 내아는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호다. 동헌은 정면 6칸, 측면 2칸의 익공계(翼工系) 겹처마 팔작지붕건물이고, 내아는 정면 6칸, 측면 1칸의 홑처마 맞배지붕건물이다.
 

   울산이 부·현·도호부 등으로 승격 또는 강등되면서 그 때마다 치소(治所)를 옮기거나 폐쇄하거나 새로 짓거나 했다고 한다. 동헌은 조선시대 울산도호부의 수령이 공무를 처리하던 곳이고 내아는 살림살이를 하던 곳이다.
 

 현재의 울산동헌 건물은 조선 선조 32년(1599)에 울산이 부로 승격된 후 숙종 7년(1681)에 부사 김수오가 지었으며, 숙종 21년에 김수오의 아들 김호가 '일학헌'이라 이름지었다.
 

 1981년 11월 건물을 뜯을 때 나온 상량문에 의하면 1763년(영조 39) 9월 9일에 부사인 홍익대(洪益大)가 중건하고 이름을 반학헌(伴鶴軒)이라 고치고 현판을 고쳐 걸었다. 증보문헌비고 권39 여지고(輿地考) 27 경상도 울산 반학정조(伴鶴亭條)에는 1760년에 중건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어서 위 상량문과 차이가 있다.
 

 또, 일학헌중수상량문(一鶴軒重修上樑文)에 의하면 1787년(정조 11)에 유한위(兪漢緯)가 중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관청은 병마절도사영·수군절도사영과 더불어 울산의 대표적인 관아였으며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다.
 

 울산동헌은 지금의 울산시청사와 같다. 이 때문에 일제강점기에는 울산군의 회의실로 사용됐고 오랜 기간동안 의상 행정의 중심 역할을 했다. 지금은 문화행사가 열리고 전통혼례식이 열리는 곳으로 변했지만 동헌과 내아가 도심 속에 남아 잇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울산의 역사성을 말해주는 소중한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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