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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아름다운 서재] 20.문선희 작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품의 산실이자 노동의 공간
2013년 08월 01일 (목) 20:36:09 김주영 uskjy@ulsanpress.net

출판사 사계절, 현암사, 기탄동화, 책만드는집, 국민서관…모두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아동서적 전문 출판사들이다. 울산에도 이 출판사들의 러브콜을 받으며 십여편의 책을 출간한 동화작가가 있었으니 바로 오늘 서재의 주인공 문선희 작가(58)다. 

간호학 전공하면서도 쉼없는 창작열정
결혼 후 교수 남편 발령지 울산과 인연
86년 등단 후 아동문학 작가로 유명세

   
▲ 문선희 작가가 서재와 작업공간을 소개하고 있다. 그에게 서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산실이자, 노동의 공간이다. 날마다 새로운 책이 쌓이지만, 꼭 필요한 책만 소장한다는 철칙 탓에 그의 서재에는 인문, 문학, 예술,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선택 받은' 책들만이 꽂혀있다.

# 늘 책과 함께 했던 유년시절
지난 주 그의 서재가 있는 중구의 한 아파트를 찾았다. 후한 인심으로 객을 맞이하는 모습에서 비교적 부유하게 자라 어릴적부터 책을 늘 곁에 두고 살았다던 그의 유년시절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어진 그와의 책 데이트. 지난 30여년 간 써온 동화얘기부터 뜨끈뜨끈한 신간, 줄곧 읽어왔다는 영문서적까지 다양한 책을 사이에 두고 나눈 유쾌한 대화는 한나절이 넘도록 이어졌다. 그동안 읽은 책들의 '엑기스'만 추려놓았다는 서재 속 책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특히 그의 여전히 맑고 또렷한 눈빛과 음성에서 뿜어나오던, 지식을 탐독하는데서 오는 희열은 그동안 바쁘단 핑계로 한쪽에 치워두웠던 책들을 꺼내보리라 마음먹게 만들었다.
 
# "창작 위한 큰 토대는 독서"
유년시절 아버지가 사업을 해 집이 부유했던 문 작가의 집엔 많은 책이 있었다. 모두 오빠들과 언니 몫이었지만 정작 그 책들을 다 읽은 건 문 작가였다.
 "국민학교 땐 세계아동문학전집을, 중고등학교 땐 한국, 세계문학전집을 모두 읽었어요. 특히 동네에 있는 책방에서 다달이 나오는 <학원>을 사 읽는 게 너무 좋았어요. 새 책에서 나는 종이냄새, 연재 이야기를 설레는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던 건 더없는 축복이었죠"

 어릴적부터 책을 좋아했던 소녀는 이후 중학교 때 소설을 습작할 정도로 재능있는 문학소녀로 자랐다. 하지만 대학 입시를 앞두고 아버지는 문학을 하려는 딸을 강하게 만류했다. '여자가 문학을 하면 끝이 안좋다'는 우려에서였다. 그리고 진학한 경희대 간호학과. 그의 넘치는 예술적 끼는 간호학과에 진학한 후에도 사그라들기는 커녕 더욱 커져갔다. 학부생 땐 당시 의과계열 단대에선 전무했던 '간호학의 밤'을 기획, 문학, 음악, 예술의 낭만을 아우르는 대학축제를 성공적으로 선보이는 등 끊임없이 예술과의 끈을 놓지 않았다.

   
▲ 198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래 그가 써온 동화, 소설작품들.
 그리고 결혼을 하면서 물리학 교수인 남편이 울산대에 발령을 받자 울산과 연을 맺었다. 이후 남편이 미국, 영국 등지에서 교환교수로 있게 되자 자연스레 그곳에서 문학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그의 문학생활의 단초가 된 건 86년 큰 기대없이 써낸 동화 '소나무와 민들레'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부터다. 문 작가는 "이전에 따로 문학이론이나 문예창작을 공부한 적은 없었지만 어릴적부터 읽어온 독서의 힘이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했다. 이후 울산대 국어국문학과, 영국 캠프리지대학의 현대 영문학과 문예창작 과정을 마치는 등 본격적인 문학공부를 하긴 했으나 어디까지 이론지식이었고 창작을 위한 큰 토대는 독서였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처럼 그에게 책은 '평생의 동반자'다. "책은 제가 읽어야 하는 도구인 동시에 써야 할 목표기도 해요. 책에서 많은 정보를 얻는 한편 제 책 역시 독자들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하길 바래요. 그래서 오랜기간 발품을 팔아 취재를 하고 많은 정보를 찾죠. 제 책을 읽는 독자들이 양질의 영양가를 섭취하길 희망해요"
 
# 철저한 사전조사로 완성한 작품들
그래서일까. 그는 철저한 사전조사로 유명하다. <장다리꽃>만해도 자료조사, 집필, 출간에 무려 12년이나 걸렸다. 배경이 되는 마을을 찾아 온 몸으로 마을을 느끼는 것은 기본, 일제시기부터 해방기인 시대상황을 실제처럼 그리기 위해 다양한 사료조사도 했다. 지역에 이름을 알린 <고헌 박상진>을 집필하기까지에도 최소 3년의 시간이 걸렸다. 정보 얻는 데엔 도통하다보니 요즘엔 지난 1년간 미국생활에서 얻은 정보를 계간 『아동문학평론』에서 <미국 아동문학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를 연재중이다. 이와함께 유쾌하지만 현 풍속도를 다룬 판타지류의 장편소설과 그림동화도 준비중이다. 이렇듯 열정적으로 책을 집필하는 자세는 그의 평소 삶의 자세와 닿아있다. 아이를 키우며 틈틈히 문학적 성과를 이끌어낸 것도,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모습도 그렇다.

 그의 소설 <장다리꽃>엔 이런 문장이 있다.
 "삶이란 아무도 돌봐 주지 않아도 제 나름의 모양과 빛깔을 가지고 소박하고 수수하게 피어나는 장다리꽃과 같은 것이다."
 문 작가는 자신은 작가로서 글쓰는 재능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으니, 최선을 다해 글을 써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누군가 내게 준 씨앗의 모양과 빛깔은 어떤 것일까. 그것이 비록 크게 화려하거나 조명받지 못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우리 역시 씨앗이 주어졌다면 최선을 다해 꽃으로 피워내야 하지 않을까. 문학의 힘은 이렇듯 삶에 대한 직관을 얻는데서도 발휘된다.

   
▲ 문 작가가 내 인생의 책으로 꼽은 <자기 앞의 생>. 이 책을 읽고 작가는 참 많이 울었다고 했다.
[작가가 말하는 내 인생의 책]

"선량한 소년 모모의 불행한 운명 앞에 아릿한 아픔"

#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지르)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가 스물두 살 되던 해 한겨울이었다. 콩쿠르 상을 거부한 작가 운운하는 글귀가 눈에 띄어 호기심이 일어 책을 샀던 그날,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정신없이 읽었다. 책을 덮는 순간 눈물이 볼을 타고 주루룩 흘러내렸고 흐느꼈다. 이렇듯 <자기 앞의 생>은 아릿한 아픔으로 감지하는 소설이다.
 주인공 모모의 양어머니 집엔 엄마가 돌봐주지 못해 맡겨진 창녀의 아이들이 있다. 모모는 양어머니의 일을 거들며 산다. 늙은 양모는 치매에 시달리고, 양육비를 제대로 못받아 언제나 가난하다. 가난한 두 사람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이다. 또 이들과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도와주며 살려하지만 타고난 운명 때문에 불행을 근본적으로 막을 길이 없다.
 내용으로만 보면 평범할지 모른다. 문제는 소설 속 등장인물이다. 그들이 눈물겹도록 순수하고 선량함에도 불구하고, 불행할 수밖에 없는 운명 앞에 할 말을 잃고 충격을 받게 된다. 모모의 아버지 유세프 까디르는 아랍인 뚜쟁이이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거느린 창녀들 가운데 가장 예쁘고 사랑스런 여자라서 그의 질투심 때문에 살해된다. 아버진 정신병이란 이유로 오랫동안 병원에 감금돼 있다가 모모를 찾으러 오지만, 로자 부인은 모모에게 그런 아버지가 필요없다고 판단해 모모가 그의 아들이 아니라고 한다. 절망감에 빠진 친부는 모모가 보는 앞에서 심장마비로 죽는다.
 유태인 창녀 출신으로 히틀러를 무서워하는 로자 부인, 양탄자 장수 아밀 할아버지, 유태인 깟쯔 의사, 성전환자 롤라 아줌마, 마술사 와룸바 형제, 성우 나딘느 아줌마도 등장한다. 모모의 말대로라면, 똥 같은 사람들이다.
 만약 자선병원에서 못 생기고 늙고 병까지 든 로자 아줌마를 식물인간의 모습으로 생명을 연장시킨다면, 그 행위는 잔인하다고 생각한 모모는 로자 아줌마를 편히 죽게 하기 위해 아파트 지하실로 데려가고, 3주나 썩어가는 양모의 시체에 향수를 뿌리고 화장을 해 준다. 이웃들은 어디선가 새어나오는 고약한 냄새를 좇다가 비로소 시체와 아이를 발견하고 기겁을 한다.
 양모와 자기는 너무나 외로운 사람들이라 서로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한 모모는 로자 아줌마가 없는 세상을 과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암담해 한다. 모모는 그녀가 없는 세상을 향해 사랑해야만 한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정신병원을 들락거렸던 작가 에밀 아자르는 끝내 권총으로 자살했다. 어렸을 때 입은 심리적 외상은 이렇듯 인생에 깊은 상흔을 남긴다. 사랑하며 살아보고자 몸부림쳤던 천재는 불행한 운명을 극복하기엔 세상이 바위 같이 차갑고 자신을 끊임없이 버리고 있는 것 같아서 사랑할 수 없었을까. 사랑의 근원을 상실한 사람의 결말을 보는 것 같아 쓸쓸함이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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