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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거실에는 한여름 말고는 서쪽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은 거의 금빛에 가깝다. 해질 무렵 거실 안을 기웃거리는 햇살은 황금빛 가루를 뿌리며 들어온다. 햇살이 가는 바람을 데리고 삐죽이 고개를 빼고 들어올 적에는 눈이 부셔 두 손등으로 가려야 할 정도다.

    오늘은 새로 사 온 발을 쳤다. 여름 햇살을 가리는 데는 발 만한 것도 없다. 발을 통해 보는 바깥풍경은 한결 운치를 더한다. 발은 햇살을 가리는 것 말고도 세상을 적당히 가림으로써 훨씬 아름답게 보이게 하고 사물에 대한 비밀스러움과 신비로움을 더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런 매력을 모르는 것 같다. 가리기보다 자꾸 드러내지 못해 안달이다. 수은주가 하루하루 올라갈 때마다 여자들의 아랫도리에 걸치는 옷도 덩달아 올라간다. 그뿐만 아니라 윗옷은 자꾸만 가슴을 파고 내려간다. 어떻게든 속살을 더 드러내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처럼 보인다.

 작년 여름 우연한 기회로 필리핀 '보라카이' 해변에 며칠간 머물게 되었다. '보라카이'는 휴양의 섬으로 머무는 내내 저절로'힐링'이 되는 여행지라 복잡한 현대를 사는 사람이라면 며칠쯤 푹 쉬었다가 오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그곳을 찾은 여행객은 대부분이 신혼부부였다. 비췻빛 바다와 하얀 모래사장이 어우러진 해변은 이제 막 부부인연을 맺은 새내기들이 달콤한 시간을 맛보는 '신혼의 섬'이 돼 있었다. 그중 상당수가 우리나라 젊은이였는데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노출이 도가 지나친 비키니만 걸친 것이 얼굴이 간지럽고 화끈거려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실오라기 가닥 천으로 특정부위만 아슬아슬하게 가린 것이 보는 내가 더 민망했다. 평소 우리가 입은 속옷 차림 정도라면 양반 축에 들 정도였으니 어쩌랴. 반소매 상의와 반바지차림으로 해변에 나간 나를 오히려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마치 대중목욕탕 안을 유독 나만 옷을 차려입은 채로 들어간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나는 민망하고 어색해 마침 준비해간 선글라스와 밀짚모자로 얼굴을 대충 가리고서야 그 마음이 덜했다. '주변 분위기가 아무 탈 없는 나를 역으로 이렇게 난처하게 할 수도 있는구나' 싶었다.

 가끔 TV 화면 속의 배우들은 보는 이가 눈을 가리고 싶을 정도로 속살을 훤히 드러내 보일 때가 있다. 그것도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야 귀엽게 봐 줄 수 있다지만, 늙수그레한 중년 여자들이 거침없이 실오라기만 걸치고 설칠 적에는 추하기까지 하다. 안으로 간직할 수 있는 내면의 아름다움이 부족하고 실속 없이 속내가 허약해진 현실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팔월의 도시는 가마솥더위에 들었다. 가는 곳마다 가릴 것 드러낼 것을 구분 못 하는 여자들을 흔하게 만난다. 조금만 더워도 못 참는 기색이 절절한 것은 참고 견디는 내면이 허약한 탓이다.

 오래 해 오던 일을 접고 집에서만 지낸 지 다섯 해다. 주어진 시간 대부분을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며 지낼 수 있는 과분한 호사를 누리고 있다. 사람의 마음이 간사해서 그마저도 때로는 시들하고 따분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나름의 투철한 질서를 가지려 애를 쓴다. 의미 없는 일상의 늪에서 생활하다 보면 삶이 쭉정이가 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둘만 사는 집안은 할 일이라야 드문드문 세탁기 돌리고 간단한 청소를 하며 식사는 될 수 있으면 편한 방식을 선택한다. 아들은 지난봄 짝을 만나 가정을 이뤄 분가했으니 이미 내 손을 떠났다. 결혼한 자식한테 가타부타하는 것은 쓸데없는 관심이고 집착이어서 오히려 해가 될 것이다. 세상 어느 부모가 자식을 염려하는 마음이야 없을까마는, 속내를 다 보일 수는 없는 일이어서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서로를 위해 좋을 것이다. 무엇이든 적당히 가릴 수 있으면 가려야 한다.

 지천명을 훌쩍 지났지만 좀처럼 남편 앞에서 덥다고 훌러덩 옷을 벗거나 지나치게 나태한 모습을 보이기는 싫다. 늙어가면서 무에 그리 서로를 의식하느냐고 물어올지 모르겠지만, 적당히 가릴 것은 가리고 지킬 것은 지키며 지내야 서로의 신비스러움을 조금이라도 오래 간직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달리 표현하자면 아직은 사랑받는 아내로, 정숙한 여자로 대접받고 싶어 하는 심사다.

 새로 사온 발을 서쪽 창에다 드리워 놓고 거실에 누워본다. 발 사이로 새어 들어온 가는 바람이 눈까풀에 낮잠을 데리고 와 슬그머니 앉는다. 설핏설핏 기우는 석양이 발을 통해 가는 빛기둥으로 들어오는 한갓진 거실에서 청하는 달콤한 낮잠이다. 아랫집 재윤이네한테도 근사한 발 한 장쯤 드리워 보라고 권할 참이다. 미간을 찡그리며 맞는 햇살이지만, 발 사이로 흘러드는 묘한 운치가 있으니 어찌 싫기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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