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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상반되는 누정(樓亭)문화와 수렴(垂簾)문화가 함께 존재한다. 누정문화는 누각과 정자를 함께 일컫는 말로 수승한 자연경관을 활용하여 드러내는 문화라 할 수 있는 반면, 수렴문화는 바로 드러난곳을 발을 드리워 인위적으로 감추려는 문화이다. 

 태화강변에는 명정천을 끼고 있는 자라 형상 같이 생긴 야트막한 산이 있다. 이를 예부터 내오산(內鰲山)이라 불렀다. 권상일은 '내오산은 경치가 그윽하고 묘하다'고 학성지에 기록했다. 현장으로 보면 태화강대공원 서쪽 끝자락에 숲이 우거진 곳이다. 내오산에는 울산 도호부사(府使) 박취문(朴就文, 1617∼1690)이 1600년대 말 건립했다는 정자 만회정이 있었으나 세월에 따라 허물어졌다고 한다. 울산시는 만회정의 복원사업을 2011년 8월에 시행하여 동년 12월 9일에 바닥 면적 31㎡, 정면 3칸, 측면 2칸, 팔각지붕형태로 복원을 완료하여 낙성식을 가졌다.

 만회정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정자이다. 정자는 이층 다락구조로 지어지는 누(樓)에 비해 비교적 단층으로 아담하게 세운 단순한 건물이다. 흔히 일컫는 누정(樓亭)은 누(樓)와 정(亭)을 합쳐 이르는 말이다. 누와 정은 이름은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마룻바닥을 지면에서 한 층 높게 지어 사방을 멀리 넓게 볼 수 있도록 전망 좋은 곳에 짓는 공통점이 있다. 누정의 활용중의 으뜸 기능은 주변 경치를 감상하며 휴식을 취하는 유흥상경(遊興賞景)의 개방형 공간이다. 누정은 본래 경치를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세우기 때문에 경치좋은곳을 찾을려면 누정을 찾아가면 실패하지 않는다는 말도 이런 연유에서 기인했다.

 사람은 자연을 잠시 빌려 자연을 즐길 수 있고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산, 언덕, 계곡, 호수, 바닷가 등 적당한 곳이면 가리지 않고 크고 작은 누정을 지었다. 박취문의 심성도 그러하여 내오산에다 만회정을 지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수렴은 '발을 드리운다'는 말이다. 언뜻 수렴청정(垂簾聽政)이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르겠지만 그때의 수렴도 같은 의미이다. 발의 소재는 대나무, 억새, 갈대 등 다양하며, 수렴은 은은함의 상징이기도하다. 무대공연에서 발의 드리움은 '샤막'의 활용과 같이 은은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발을 드리우면 보여도 가렸다는 안정감을 찾고 또한 혹시 보는 사람에게도 당혹감이 덜하게한다.

 도로변에 살다보니 출입 등 좋은 점도 있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이 의도적 혹은 무심코 집안을 들여다보는 등 일상생활에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특히 더운 여름에는 웃옷이라도 벗고 싶지만 마음대로 행동하지 못할곳이 길가 집이다.   길가 생활은 담너머 들여다보기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이 갖고있는 특별한 궁금증에 대한 호기심의 발동도 한 몫을 더 하고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요즈음 운동하기 좋은 아침과 저녁 시간에는 담넘는 시선과 자주 마주친다. 담장에 발을 치고, 담쟁이덩굴 잎새로 가리움을 더해도 그 작은 틈새로 스며드는 까만 호기심은 어쩔수 없다. 60∼70년대만하더라도 단독주택 생활에서 여름이면 발은 필수였다. 대문에는 물론 거실과 안방사이에도 발을 치곤했다. 요즈음 아파트 생활에서 발은 브라인더, 버티칼, 커튼 등으로 대체되어 그 기능을 이어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근래에 들어 만회정 앞에 심은 대나무의 효과에 대한 이용시민들의 긍부정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다. 사람은 변화에 민감하면서 긍부정의 감정을 나타낸다. 만회정 앞 대나무 식재에 대한 긍부정 감정의 표현도 그러하다. 대나무야 어느 곳이던 심을 수 있다. 하지만 하필 경치를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세우는 정자의 기능을 고려하지 않고 구태여 앞을 가려 경치의 완상에 장애가 된다는 의견과 반면 대나무가 심어져 드러나지 않고 은근함이있어 오히려 좋다는 시민의 이야기가 긍부정이다. 대나무 식재 이후 만회정을 찾아보니 앉아쉬는 이용객보다 드러눕는 이용객이 늘어났다. 커튼의 효과일까? 누정문화는 답답함보다 시원함이, 스트레스보다 힐링의 개방형 공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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