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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은 과장된 행동으로 나타난다. 동천에 뜬 달을 보고 개가 짖듯, 시정잡배가 한판 난장을 위해 웃옷부터 찢어버리고 소주병 하나 주둥이를 잡고 깨부수고 달려들듯 두려움은 곧잘 과장과 거친 목청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정확히 6년 전 당시 첫 총리직에 오른 아베 신조는 자국의 종전기념일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일본 내각 각료들이 종전기념일을 맞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는 것은 처음이었다. 전후 집권 내각 가운데 가장 우익성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아베 내각이 6년 전 외교적 결정은 오늘의 노골화된 우익화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일본의 우익은 종종 곰팡이에 비유된다. 햇살이 강렬하면 곰팡이는 음지로 기어들기 마련이듯 아베 내각도 음습한 시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바로 그 시대가 왔다는 판단을 아베는 하고 있는 모양이다.

 두 번째 총리직에 나선 아베는 6년 전과 판이한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 여전히 발톱은 숨기고 있지만 야스쿠니에 예물을 보내는 식으로 '꼼수 참배'로 눈속임을 했다. 문제는 6년 전의 그와 지금의 그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를 증명하듯 아베는 지난 주말 전몰자 추도식에서 돌직구처럼 우경화 메시지를 전달했다. '가해와 반성'이 빠진 추도사를 낭독한 것을 두고 일본 언론과 정치권이 비난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아사히신문은 16일자 사설에서 "아베 총리가 추도사에서 언급하지 않은 내용은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반성하고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1995년)와 겹친다"며 "무라야마 담화를 수정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면 용인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신문은 "아베 총리가 추도사 작성 담당자에게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추도식인지 백지 상태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으니 (내용을) 근본적으로 재고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소개한 뒤 "잘못된 대응은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고립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태도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소다. 메이지유신 직후인 1869년 일왕에 의해 '호국의 신'들에 대한 제사 지내기 위해 건립된 야스쿠니는 다른 신사와 차별성을 가졌다. 특히 2차대전 당시에는 전몰자를 호국의 영령으로 제사하고, 여기에 일왕의 참배라는 특별한 대우를 해줌으로써 일본인에게 왕의 신격화를 고양하는 역할을 했다. 자신들의 왕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혼은 출신이나 과거사를 묻지 않고 신격화 하는 야스쿠니는 말 그대로 일반인이 신으로 둔갑하는 변신의 통로였다. 2차대전 당시 일본의 젊은이들은 '야스쿠니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전쟁터로 떠났을 만큼 모든 가치의 기준을 왕에 대한 충성도로 정의했고 그것이 전쟁이라는 광란의 시대와 결합해 왕을 위해 죽는 것이 영광이라는 새로운 도덕관을 만들었다. 2차대전의 A급 전범인 히로히토 일왕은 독일이 히틀러와 달리 비명횡사라는 몰락의 길을 걷지 않았다. 그는 패전과 함께 신격화된 지위가 인간으로 내려앉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황실의 권위까지 빼앗기지 않았다. 명예를 목숨보다 귀하게 여긴 사무라이 정신과 그 추종자들이 미 군정의 어디를 핥아주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미국은 불행히도 히로히토를 단죄하지 못했다. 원죄의식 때문인지 히로히토는 전후 일본 우익이 끊임없이 요구한 도조 히데끼 등 A급 전범의 야스쿠니 합사를 끝까지 반대했다. 뿌리가 어디인지를 아는 그가 마지막까지 우익과 거리를 둔 것은 최소한의 양심이다. 문제는 그 마지막 양심조차 지금의 일본 우익에겐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역사를 부정하고 한술 더해 조작과 왜곡을 일삼는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은 가히 왜곡의 달인이다. 그래서 일본의 역사를 조작의 역사라고까지 이야기 한다. 임진왜란 시기부터 조작된 것으로 알려진 일본의 역사서 일본서기는 일본인들이 과거사 치매에 면죄부 역할을 담당해 왔다. 사실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이 보인 탈 아시아적 태도는 메이지 쿠데타를 주도한 3류 사무라이들의 얄팍한 국수주의가 그 뿌리다. 이토 히로부미 등 3류 사무라이들은 300여 년 간 지속되어 오던 도쿠가와막부의 '평화의 시대'를 거부하고 '살육의 시대'를 선택했다. 그런 의미에서 메이지 쿠데타는 일본에 있어 근대화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섬나라 일본의 '광기의 역사'가 시작된 세계사의 불행이기도 했다. 그 광기의 역사가 아베의 두번째 내각에서 노골화되고 있다. 원칙과 신뢰를 강조하는 박근혜식 외교가 아베의 장난을 받아줄리 없다. 당연히 한일관계는 냉전상태가 지속될 모양새다. 북한을 길들이듯 일본의 반성을 기대하는 건 오산이다. 정치적 수사나 대미외교를 지렛대로 삼아 언제든 한국과 악수할 수 있다는게 아베식 외교의 출구전략이다. 문제는 왜곡의 근원을 알고 있는 아베 내각의 열등감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있다. 사과하고 반성하라고 외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스스로 역사의 진실 앞에 겸허해질 수 있도록 객관적 자료와 사실을 끊임없이 내보내야 한다. 일왕의 뿌리부터 일제강점기의 잔혹사까지 낱낱이 들추어 세계와 공유해야 한다. 길손의 외투를 벗기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햇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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