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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을 부르는 말 중 곗가와 갯가가 있다. 부르는 소리인 음은 서로 비슷하나 가르치는 훈은 차이가 있다.
 곗가는 계변(戒邊)을 한자와 한글로 일음일훈한것이며, 갯가는 포(浦)의 우리말 개와 가장자리 변의 된소리이다. 계변은 융변(戎邊)과 함께 사용되며, 신라 때 울산의 몇몇 명칭중 계변성(戒邊城)과 융변성(戎邊城)에서 근거한다. 경상도지리지(1425) 울산군조에는 "울산군은 본래 계변성이다. 신라 때 신학성으로 고쳐 부른 것…….(蔚山郡 本戒邊城在新羅時改稱神鶴城........)"이라하여 계변성이 나타난다. 경상도읍지(1831) 고적 조에는 "신학성은 곧 융변성이다. 부의 동쪽 5리에 있다.

   옛날 융변신이 학을 타고 내린 것에 연고한 이름이다(神鶴城卽戎邊城在府東五里古戎邊神駕鶴降故名)"라고 하여 융변성이 등장한다. 같은 지역을 두고 두 문헌에서 각각 계변성과 융변성으로 기록하고있어 함께 혼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갯가는 삼면이 바다를 접하고 있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보편적으로 표현되는 이름이다. 울산 역시 동해를 접하기 때문에 갯가라 부른다.

 계변성의 계(戒)와 융변성의 융(戎) 한자에서 짐작되듯이 계율(戒律)의 계자, 융복(戎服)의 융자 쓰임과 같이 지킨다와 칼, 창, 궁 등 무기의 의미로 쓰인다. 또한 계는 군사적으로 방어하고, 버티고, 굳건히 지킨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변은 끝, 가장자리 등을 의미하는 변두리라는 의미이다. 성은 신라시대 최소의 행정단위로 고을을 말한다.

 갯가란 강이나 하천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을말하는것으로 어원이 개다. 갯벌, 갯버들, 갯바위, 갯내음, 갯 마을 등이 대표적 개의 쓰임 사례이다. 개가 된소리 갯으로 발음하는 것은 태화강을 태홧강으로 발음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는 경상도인 울산 사람의 정서와도 무관하지 않다. 갯가는 울산도 예외가 아니다. 5개 구.군이 모두 동해와 접촉하는 친수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갯가라 하면 얼른 생각되는 말이 갯가사람이다. 오늘의 70∼80대 울산 토박이들은 울산의 옛이야기를 하면서 간혹 '갯가 사람이 거칠다' 혹은 '00은 갯가라 혼사도 꺼렸다'는 등 갯가와 갯가사람을 강조하고 있다. 갯가사람이란 갯가에서 바다를 대상으로 주로 고기잡이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내륙사람들이 그렇게 부른다. 인구의 회자 속에 갯가와 갯가사람이 강조되는 이유는 다양하겠다.

 그 중 수시로 변하는 바다의 거친 자연환경을 상대하여 삶과 죽음이 하루에도 수차례 공존하는 생활에서 연유한 것 같다. 경험이 없어도 험한 파도 속에서 작업을 할 때면 평상시와 다르게 말과 행동이 거칠고 고함쳐야하는 등 삶의 현장적 스케치에서 느낄 것 같다.
 그러나 어디 바다를 상대하는 사람뿐이겠는가 누구할것없이 삶의 자연환경이 그렇게 만든 것이지 타고난 성품은 아닐 것이다.
 계변(戒邊)은 다소 생소하지만 군사적으로 어떤 중심에서 먼 가장자리에서 중심을 지키는 보루 역할을 나타낸 용어로 사용한다.

 신라 때에 울산을 계변성이라 부른 이유 중에는 신라중심 월성(月城)을 외적의 침략으로부터 지키고, 방어하고 외호하는 역할을 담당한 중요한 지역이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울산인 계변성이 자연지리에서 외적으로부터 신라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 것은 지역에 관문성이 존재하는 것에서도 찾을 수 있다. 관문은 중요한곳의 출입을 통제하는 곳으로 계변과 관문은 서로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지금까지 울산을 바다와 접한곳을 보편적으로 부르는 갯가로만 인식해왔다.

 그러나 조금 더 관심 있게 속을 들여다보면 군사적 기능을 상징하는 역사적 지명에 담겨있는 식견의 곗가인 계변을 알게될 것이다. 구태여 계변의 의미성을 광복 68주년을 맞는 즈음에 강조하는 것은 역사적 지명을 통해 살고있는 도시의 역할성을 재조명해 보고자함이다. 어느 민족이던 나라를 굳건히 하는 계변없이 국민이 화평하게 살 수 있는 태화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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