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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다녀온 사람들이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것이 있다. 바로 지금 우리의 세태로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교통문화다.

 일본에 머무르는 동안 경적소리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부터, 병목구간에서 차량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진출입하는 장면을 보면서 소름이 돋았다는 말도 하고 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일본인들의 남다른 교통문화는 남에게 폐를 끼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어린시절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것을 차를 운행하면서도 실천으로 옮긴 덕분일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일본과 격차를 많이 줄였다고 자부하지만, 이런 시민의식은 우리가 선진국 문턱을 넘어섰다고 말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92년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등장 이후 세계화는 우리의 화두였다. 세계화를 위해서는 글로벌스탠다드를 충족해야 했다.

 무역과 산업 등 경제분야에서는 세계화에 큰 진전을 이루었다. 세계의 산업을 선도하는 분야가 나오고, 세계 1등 상품이 쏟아졌다. 글로벌기업도 속속 등장했다. 우리나라는 잘 몰라도, 우리나라의 기업, 그런 기업이 만들어내는 상품은 이제 세계인들의 소비욕구를 이끌어내고 충족시킬 만큼 세계화되었다.

 그러나, 세계화를 외친 지 20년이 넘게 흘렀지만, 기업과 제품으로 대표되는 경제분야와 한류로 통칭되는 문화와 예술분야를 제외하고 세계화의 문턱을 넘어선 것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다.

 그 가운데서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의식의 세계화와 선진화는 아직도 우리의 경제수준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다.

 관행이라는 미명 아래, 그리고 우리나라의 특수한 사정이라는 이유로 글로벌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과 자격을 회피하고 있다.

 비건한 예로, 여름 휴가철 관광지의 풍경만 봐도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휴가철 한몫 잡아보겠다는 얄팍한 상도의가 넘치면서 바가지요금이 기승을 부린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개선되기 보다는 굳은 살이 박힌 것처럼 바가지요금을 주고받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잘못된 풍토마저 자리잡고 있다.

 '휴가철 한때인데 어때'라는 심보와 '휴가철 한때인데 그럴수도 있지'라는 포기가  우리나라의 일그러진 휴가풍경이 되어버렸다.

 개인의 소유물이 아닌 국가의 재산인 계곡에 버젓이 평상을 펼쳐놓고 돈을 받고, 돈을 내지 않으면 계곡을 이용할 수 없도록 봉이 김선달의 행태를 보여도 짐짓 한쪽 눈을 감고 나몰라라하는 행정기관의 관행과 구태가 계속되는 한 우리는 글로벌스탠다드를 갖출 자격조차 얻지못할 것이다.

 우리의 교통문화를 한번 되짚어보자. 경적소리를 들어보기 어려운 곳이 일본이라면 하루라도 경적을 울리지 않으면 안된다고 여기는 것이 우리의 교통문화다. 병목구간에서도 차량을 먼저 들이미는 것이 운전을 잘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교차로는 물론 신호가 바뀐뒤에도 차량의 소통과 관계없이 꼬리부터 물고 보는 것 또한 우리의 교통질서의식이다.

 끊임없는 계도와 단속에도 이 같은 잘못된 풍토는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법과 제도의 허점, 운영의 미비점을 따지기 이전에 스스로 글로벌시민으로서 조건과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를 반성해야 할 일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와 법이 있고, 운용의 묘를 살린다해도 공동체가 합의해서 만든 것을 지키지 않고 훼손한다면 그것은 백약이 무효다.

 선진화와 글로벌화의 핵심은 약속을 어기는 흩어진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의 약속을 지키는 현명한 개인으로부터 출발한다.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고 했다. 형식없는 내용은 맹목적이고 내용없는 형식은 공허하다는 뜻으로 형식과 내용의 조화와 균형을 강조하고 있다.

 글로벌시민이라는 타이틀이 맹목적이고 공허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형식과 내용 모두를 알차게 채우는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 그런 다음에 우리는 글로벌시민인가의 물음에 글로벌시민이라고 당당하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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