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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동네, 우리 마을을 그림으로 그려보라면 한 번에 그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늘 다니는 길이면서도 무심코 지나가게 되는 우리 마을을 한눈에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울산 전역은 아니지만 동구와 북구 전경을 가까이 볼 수 있고 저멀리 중구까지 내다 볼 수 있는 장소, 동축산이다. 최근 북구청이 동축산 오르는 길을 산책로로 정비하고 '염포 이야기길'로 이름지었다. 부제는 역사와  기술이 공존하는 길이다. 역사는 그렇다치고 기술은 무슨 의미일까하고 의아했는데 오르고 보니 그 뜻을 알 만했다.

   
▲ 동축산 정상. 염포정과 애기장승, 솟대공원이 조성돼 있는 이 곳에서는 자동차공장과 수출선적부두의 광활한 전경을 내다볼 수 있다.

옛울산중심지로 조선시대 3포중 하나
소금밭이 많은 갯가라 '염포'라 불려
1.7km 걸쳐 정자·솟대공원 등 조성
7일 오전 10시 완공기념 등산로 걷기

# 신전체육공원서 동축산 정상까지
염포 이야기길은 신전체육공원에서 동축산 염포정까지 총 1.7km에 걸친 산책로로 구성됐다.
 염포동 신전시장을 찾아가면 염포 이야기길을 만날 수 있다. 시장에서 동네쪽으로 쭈욱 올라가 공영주차장을 지나면 염포 이야기길을 상징하는 아치형 간판이 보인다. 그 곳이 이야기길의 도입부다. 
 평일 오전 시간에 찾은 이 곳에서는 형형색색 등산복을 갖춰입은 중년주부와 어르신들을 자주 마주칠 수 있었다. 사람이 다니는 곳에 자연스럽게 길이 생기듯 염포 이야기길이 그랬다. 단지 이름만 이번에 새로 지어졌을 뿐.

   
▲ 염포 이야기길 입구

 이 길은 일반 산책로보다 약간의 경사가 있는 편이었다. 그래서 등반하는 느낌이 더 강했다. 지난 여름동안 해안산책로만 번번히 찾았더니 경사진 산길은 오르기가 버거웠다. 그러나 선선한 가을바람이 발걸음을 이끈다. 여름 더위를 식히기위한 길로 해안산책로를 찾는다면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은 등산을 겸할 수 있는 염포 이야기길과 같은 산길을 추천하고 싶다.
 
# 곳곳마다 얽힌 전설 안내판들
길을 오르다보면 염포라는 이름의 유래에서부터 역사를 간단히 소개한 안내판을 볼 수 있다. 주민이 자주 걷는 길에 역사를 알 수 있어 지역애도 차곡차곡 쌓을 수 있는 공간이 염포 이야기 길이다.
 염포동은 과거 소금과 항구로 명성을 높였던 울산의 중심지였다. 소금밭이 많아 소금이 나는 갯가라는 뜻으로 '염포'로 이름 지어졌다. 지형상으로는 서북쪽에 하얀 평야가 있었을뿐 갯가와 산지로 둘러싸여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상업도시로 물물교환이 잦았고 해방 전후로 소금이 많이 생산됐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염포는 조선시대 부산포, 진해 내이포와 더불어 3포의 하나이며 일본에 개방한 국제무역항이었다. 세종 때인 1426년 개항했고 후에 부산포에 상주하는 일본인을 줄이기 위해 염포에 왜관을 설치했다. 하지만 법을 어기고 상주하는 일본인의 수가 늘어나 삼포왜란의 원인이 됐다. 이로인해 삼포가 폐쇄됐으며 이후 부산포와 내이포만 다시 개항하면서 국제무역항으로서의 염포는 역할을 잃게 됐다.
 해방 이후를 전후해서는 어업이 번창해 부자들이 많았던 마을로 알려졌다. 큰 가마솥에 바닷물을 넣고 화목(火木)으로 달여 소금을 만들던 가마솥을 염분이라 했으며 소금을 거래하던 곳에 염포동의 지명이 남았다.

 또 멸치업도 성행했는데 멸치가 많이 올라올 때는 100여명이 넘는 마을 사람들이 해안으로 나가 그물을 건져오곤 했다고 한다.
 산책로에 설치된 안내판에는 이 같은 마을 역사를 비롯해 과거 나룻배를 타고 마을에서 장생포를 오가던 장면, 시집을 가는 여성이 나룻배를 타고 이주를 하는 장면 등을 볼 수 있다.
 또 길 곳곳에는 어슴길, 재꼭대 등 전설이 있는 공간이 소개 돼 있다. 언뜻 눈으로 보기에는 일반적인 땅처럼 보이는데 안내문을 읽고 보니 왠지 특별해보인다.
 파굼터는 외지인이 명당으로 안치된 무덤을 폐장한 장소라고 해서 붙여진 순수한 토종명칭이다. 한 때는 나뭇짐을 내리고 쉬어가는 휴식공간 역할을 했다.

   
▲ 여인의 잘록한 허리를 형상화한 어슴길
   어슴길은 여인의 잘록한 허리를 형상화 해 붙여진 이름이다. 윗 방향에서 우측으로는 사잇길이 연결돼 바둑판 같은 산길을 만든다고 전해졌다.
 전망의 최고봉이라는 외소나무의 전설도 있다. 동축재에 올라서면 울산 전역이 발아래 모여드는 전망의 최고봉이란다. 오랜세월 정월대보름 때면 달집을 태워 소원성취를 빌던 영험한 장소였으며 외소나무 옆에는 이 일대의 측량 기준점이 있어 산업수도의 영원한 발전을 지향하고 있다.
 
# 정상에서면 시가지가 한눈에
산책로 중간쯤에 오르면 염포 앞 바다를 매립해 만든 자동차공장과 수출선적부두의 광활한 전경을 나무 사이사이로 볼 수 있다.
 자동차를 타고 지나다닐 때는 무심코 지나쳤던 부두를 산에 올라 한 눈에 담으니 새삼 동네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진다. 울산하면 자동차와 선박이라는 이미지가 이렇게 굳혀지는가보다. 눈으로만 보기에는 아까워 사진을 찍었더니 나무에 가려 실물 만큼 담기지 않는다. 사진은 좀 더 올라가 담기로 했다.
 1시간 가량 걸어 오르면 동축산 염포정에 도착한다. 바람의 도시 북구 답게 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송글송글 맺힌 땀을 식혀준다. 그리고 차마 아래에서 모두 보지 못했던 울산 지역의 전경을 한 눈에 담을 수 있게된다.

 웅장한 해양설비를 제작하고 있는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와 배 위에 석유화학공장을 싣고 있는 현대미포조선, 항만을 가득 메운 유조선과 각종 선박들, 그리고 그 너머로 아득하게 끝없이 펼쳐진 석유화학단지들. 울산의 산업박물관이 따로 없다.
 거대한 산업단지와 시가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장소는 드물다. 도심 속에 살다보면 공단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곳에 올라보면 사람이 살고 있는 도심과 제품을 생산하는 공단이 어떻게 인접해있는지 금방 알게 된다. 동해바다쪽으로 현대중공업 조선사업부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멀리 대왕암공원을 배경으로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현대중공업은 세계 최대 조선소답게 동구 해안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 평탄한 동축산은 산악용자전거를 즐기기에도 좋다.
# 장승과 솟대·팔각정 아기자기
정상에서는 다양한 모양의 솟대가 세워져 있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애기장승과 소형 솟대지만 간절히 소원하면 이뤄질 것 같다. 청명한 가을하늘아래 비는 소원이라 성취도 잘 될 것 같은 기분이다.
 안내대로라면 이 길의 입구는 신전체육공원이지만 좀 더 빠른 시간에 울산을 담고 싶다면 염포119안전센터 옆 샛길에서 오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차를 이용해서도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정공기를 마시고 천천히 걸으며 마침내 오른 산 정상에서 내다 본 울산의 전경이 좀 더 지역애를 돋우게 할 것 같다.

 오는 7일 오전 10시부터는 염포 이야기길 완공 기념 등산로 걷기 행사가 열린다. 준공식을 겸해 이야기 길을 애용해 달라는 뜻에서 개최되는 행사다.
 주민의 한걸음 한걸음으로 생긴 역사의 길 염포 이야기길이 언제나 주민의 사랑을 받는 함께 걷는 길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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