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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추구하는 과학과 감성적인 표현을 중시하는 예술. 얼핏 보면 전혀 다른 분야지만 실제 예술은 과학의 발전 덕에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변화해 올 수 있었다. 6일 오후 6시 30분 개막하는 울산미술협회의 '2013 울산 미술관의 미래, 테크노 이미지네이션' 전시는 이러한 예술과 과학의 만남을 보여준다. 동시에 오는 2017년 초 개관예정인 울산시립미술관의 모습과 그 안에 담길 전시 형태를 상상해보는 국제전시회이기도 하다. 울산시가 주최하고 울산미술협회가 주관하는 이번 전시는 울산에선 새롭게 시도되는 전시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기계, 미디어, 키네틱 아트 등을 통해 누구나 참여하며 즐길 수 있다. 또 한편 최첨단 과학기술의 시대에 과연 미래의 미술관과 그 안에 담길 예술가들의 상상력이란 어떤 속성을 가지게 될 지에 대한 해답이다.

 

 

   
관람객이 손으로 찌르거나 만지면 아름다운 색이 물감처럼 번지는 에브리웨어의 작품 'SOAK'.


2017년 개관하는 '울산시립미술관' 미리보기 버전
미디어 테크놀로지와의 융합 통한 실험 정신 선봬
시민과 함께 지역미술관의 미래 고민할 공간 제공

# 국내·외 디지털 아트작가 13인 작품 전시

전시장에 들어서면 우선 어두운 방 안, 빛나고 있는 빈 캔버스가 눈길을 끈다. 다가가 캔버스를 만져보면 부드럽게 눌리는 천이 물감을 머금은 듯 아름다운 색이 번지기 시작한다. 손가락으로 찌르고, 손바닥으로 문지르고, 혹은 온몸을 천에 기대면 그 깊이와 넓이 만큼 천 뒷면에 있는 가상의 물감을 빨아들여 아름다운 패턴이 형성된다.

 또다른 작품에선 딸기향이 나는 붉은색 비누방울이 끊임없이 뿜어져 나와 전시장 벽면과 바닥에 또 다른 회화작품을 만들어 내고, 내가 내뻗는 손짓 하나 발짓 하나가 고스란히 거울처럼 반영되는 벽면도 있다. 폴리에틸렌으로 만들어진 돌수반에는 연못 영상을 투사시켜 실제 연못 위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가짜지만 실물보다 더 실제같은 풍경이다

 이처럼 전시장에 들어서면 우선 11점의 미디어·설치작품이 관람객들의 눈길을 끈다. 국내외 미디어, 설치, 키네틱 등 디지털 아트작가 13인의 작품이다.

 이번 전시에는 폴 휴지 부트로스(레바논), 쉥겐 림(싱가폴) 등 해외 작가를 비롯해 국내 작가 강명훈, 강이연, 김기훈, 김창겸, 에브리웨어(방현우·허윤실), 옥진명, 한진수, 하이브(한창민·유선웅), 홍순명 등이 참여한다. 이들 중 강명훈, 옥진명 등 2명은 현재 울산에서 활동중인 작가다.

 이들의 작품은 이처럼 관람객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이끈다. 천에 움직임이 닿을 때마다 아름다운 색들이 조화롭게 퍼지는 에브리웨어의 'SOAK'도 그렇다. 색이 퍼져가는 모양은 과거 자연물을 이용한 전통 염색의 독특한 색과 질감과 비슷한데 최근 시대에 맞게 관람객과 빛을 통해 상호작용을 해보려는 시도를 담았다.

 일정한 속도와 양의 붉은 거품이 끊임없이 나오는 한진수의 '레드 블러섬'은 운동성을 표현하는 예술인 '키네틱 아트' 중에서도 컴퓨터나 첨단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 기계의 매커니즘을 이용한 작품이다. 그는 단순한 기계의 매커니즘을 표현한 작품들을 통해 최첨단 사회가 만들어 낸 가능성 이면의 불확실성을 들춘다.

 강명훈 작가는 아티스트로서 내가 창조주임을 보여주는 'I am'을, 옥진명 작가는 흔적에 가려진 실체를 들춰보는 사진 설치작 '흔적' 등을 선보인다. 또 미디어아트의 기술적인 측면을 최소화하고 종이나 천 같은 자연적인 재료 위에 이미지를 투사해 차분하고 따뜻한 느낌의 미디어 작품, 강이연 작가의 'Veiled' 등을 만날 수 있다.

 

 

 

 

   
관람객의 움직임이 화면에 그대로 반영되는 하이브의 '아이리스(IRIS)'.

 
# 오는 22일까지 울산문예회관서
전시에 소개되는 디지털 아트 작품들은 첨단 과학기술을 사용하다보니 실제 과학기술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과학기술이 예술가들의 상상력과 표현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준 것처럼, 예술이 반대로 영향을 주기도 하는 것이다.

 그룹 하이브의 '아이리스'가 그 예다. 이 작품은 작고 얇은 정사각형의 픽셀 수백 개가 하나의 대형 화면을 이루는데, 작품 앞에 선 관객의 움직임이 화면에 그대로 반영된다. 먹(墨)색을 이용한 흑백전환이 동양적 미감을 내뿜는다.

 기존 미디어아트 작품이 LED 등 발광체(發光體)를 사용한 것과 달리, 이 작품은 픽셀 속 원형 조리개가 흑백의 크기를 바꿔가며 빛의 투과량을 조절해 표현돼 눈부심이 없다. 작가들은 이 신개발 디스플레이의 특허 출원을 준비 중이다.

 상용화 된다면 빛을 이용한 미디어 작품이 옥외설치 용도로 사용될 경우 눈부심, 시야방해 등의 이유로 경관조명 조도심의에서 제약 받던 것을 극복할 수 있는 획기적 발명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에브리웨어의 'SOAK'의 경우에도 염색된 아름다운 패턴들은 천 위에 디지털 프린트를 통해 의상이나 침구와 같은 아이템으로 변용할 수 있다.
 
# 내일 연계포럼 '미술관의 미래' 열려
그렇다면 이같은 첨단 디지털 기술이 접목된 예술이 과연 미래의 미술관의 한 모습이 될 수 있을까. 전시를 기획한 이대형 전시총감독은 "미술관의 미래에 대한 고민은 그것이 담아내야 할 예술작품의 미래를 고민하게 만들고 이는 현대미술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란 방향성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며 "이번 전시는 기술 자체의 진화속도가 그것을 흡수하는 적응 속도보다 빨라진 시대에 과연 미술관, 그 안에 담길 예술가들의 상상력이란 어떤 속성을 가지게 될지 살펴본 전시"라고 소개했다.

 

 

 

 

   
기록·흔적으로 여겨지는 사진작품의 실체를 들춰보는 작업을 한 울산 작가 옥진명의 'Traces(흔적)'


 전시를 주관하는 울산미술협회의 김정걸 회장은 "그동안 울산 작가들이 선보여온 전시는 평면적인 회화나 설치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는 울산 시민들에게 생소할 수 있는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들을 소개함으로써 미술관이 어떤 콘텐츠와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어떤 교육의 장을 선보여야 할지 시민들과 함께 고민하는 장"이라며 "이번 전시가 미디어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융합을 통한 실험적인 예술을 체험하는 공간이 돼 시민들이 예술의 창조적 실험정신을 공유할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전시와 함께 오는 7일 오후 3~6시 울산문화예술회관 회의실에서 열리는 연계포럼 '미술관의 미래'에서도 울산시립미술관의 미래를 그려보는 다양한 방안들이 논의될 예정이다. 우선 미노 유타카 일본 효고현립미술관 관장을 초청, 지역미술관이 도시발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어본다. 미노 관장은 가나자와 21세기미술관 초대관장과 오사카 시립미술관장을 역임했다.

 이밖에도 이대형 전시총감독, 대구시립미술관 김주원 학예사, 서울토탈미술관 신보슬 학예사, 이영란 헤럴드경제신문 문화부 부장 등이 패널로 참여한다. 한편 이번 전시는 오는 22일까지 울산문화예술회관 제1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으며 전시기간 내내 도슨트들이 진행하는 교육, 체험프로그램도 운영된다. 관람료 무료. 문의 052-265-4447                                                                         사진=전시기획사 Hzone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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