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해 추석 경주에 있는 큰댁으로 가던 길에서 생긴 일이다. 평소 다니던 7번 국도가 복잡할 것을 염려해서 여유로운 외곽지 도로를 택해 길을 나섰다. 좀 에둘러 가는 길이긴 하지만, 외진 들길은 그런대로 운치가 있어서 좋았다.

 콧노래가 저절로 나오고 성큼 와버린 가을을 제대로 느낄 수가 있었다. 남편은 얼마 후면 형님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것에 들떠 있었다.

 하지만 달콤한 시간은 얼마 가지 않아 그치고 말았다. 우리 차 앞에 가는 트럭이 문제였다. 벌써 명줄을 놓았어도 오래전에 놓았을 고물 트럭이 시커먼 매연을 풀풀 날리면서 '세월아, 네월아 갈 테면 가라지…'를 부르며 가로막고 있었다.

 처음 얼마간은 '참아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맹독성 매연은 왜 그리 지독하던지. 매연을 고스란히 마시면서 뒤따라가야 한다는 것이 견디기 어려웠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얼굴을 찡그리면서 입에서 욕이 나오기 직전이었다. 그렇다고 이 차선에서 앞차를 추월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었다. 황색 중앙선을 침범해서라도 앞차를 추월할까 갈등하는 남편의 속내를 진정시켜야만 했다.

 남편은 대체로 성격이 느긋한 편이다. 그러나 핸들만 잡으면 느긋함은 금세 꼬리를 감추고 약삭빠른 여우가 되어 행동할 때가 잦다. 푸른 신호등이 황색등으로 바뀔 때는 더 힘주어 가속 페달을 밟기도 하고, 옆 차가 끼어드는 꼴은 하늘과 땅이 뒤바뀐다 해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식이다.

 젊을 때 길든 해병대 기질은 늙을수록 수그러들 기미라고는 없다. 복잡한 시내에서 로터리를 회전할 적에는 양보심보다는 옆 차의 옆구리에 착 달라붙어 악착같이 본인의 자리를 고집하기는 태중 병처럼 굳어진 습관이다. 그런 상황을 옆에서 볼 적이면 내 속은 조마조마하기 그지없다.

 앞차의 주제넘은 여유가 미웠다. 뒤차를 먼저 가라고 옆을 비켜주면서 점멸 신호라도 보내주면 좋을 텐데 전혀 안중에도 없이 맹독성 방귀를 풀풀 날리는 심보라니…. 고물차 주제에 부리는 여유가 가증스럽고 증오심마저 일었다.

 남편을 거들어 추월하자는 말이 목구멍을 오르내렸다. 남편이나 나나 이쯤에서는 슬슬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자제력을 잃으면 우발적 살인도 저지를 수 있는 심정이 이런 것일까. 이 정도 상황이면 그깟 추월쯤이야 무에 그리 대수일까 싶었다.

 "추월합시다!"  남편은 내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즉시 행동에 옮겼다. "무식한 고물차야 저리 비켜라!"라며 전속력으로 황색 선을 무시하고 매몰차게 가속 페달을 밟았다. 오랜만에 마음에 쏙 드는 그이였다. 내 속이 다 후련했다. 아뿔싸, 그때 바로 머리 위 도로를 감시하는 단속 카메라가 커다란 눈을 홉뜨고 내려다보다가 '번쩍' 번개윙크를 보내왔으니 이 일을 어쩌랴.

 차는 꼼짝없이 단속 카메라에 찍히고 말았다. 순식간에 맥이 빠진 우리 차는 점멸등을 켜고 도롯가로 주차했다. 때마침 '삐리릭' 남편의 손전화기가 방정스럽게 울렸다. '도로가 막히느냐, 조심해서 와야 한다'며 동생을 염려하는 큰댁 형님의 목소리가 점잖게 흘렀다. 곧 날아들 만만찮을 범칙금을 떠올리니 억울함에 애먼 손가방만 짜증스럽게 흔들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그리도 더디 가던 고물 트럭이 그새 뒤따라와 보란 듯이 우리 앞을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경적 음까지 '뿌엉~'울리면서 말이다. 운전석의 젊은 남자는 퉁퉁하고 떡 벌어진 어깨를 내보이며 여유롭게 지나갔다. 마치 '세상은 그리 성질대로 사는 게 아닙니다!'라고 훈시라도 하는 것처럼. 우리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고개를 숙여 보이며 고물 트럭을 정중하게 지나 보낸 뒤 마주보고 씩 웃었다.

 그새 일 년을 지나 추석이 코앞이다. 도로가 복잡해도 앞차가 얄미워도 교통법규는 지켜야 함을 말하고 싶다. 다행히도 그때 냈어야 했던 '범칙금' 쪽지는 여태껏 우리 집을 못 찾고 있는지 행방이 묘연하다. 그래도 그때의 교훈은 추월의 욕망을 억제하는 계기가 됐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