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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흥이 많고 악가무에 능했다. 그중에서도 '영남은 춤, 호남은 소리'라고, 낙동강을 낀 영남지방의 춤은 유별났다. 이 영남의 춤 한 가운데에 경남 합천의 '밤마리오광대(五廣大)'가 있다. 부산의 수영 야류(들놀음), 창원, 통영, 가산오광대 등이 모두 밤마리오광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데 이 영남 탈춤의 대표격인 '오광대'의 원류가 울산의 '죽광대(竹廣大)'라는 흥미로운 사실을 찾아낸 이가 있다. 울산의 중견 무용가 최흥기(50·울산죽광대놀이 복원추진위원회 대표) 씨가 그 주인공으로, 그는 최근 두 차례의 논문발표를 통해 죽광대놀이는 오광대와는 다른 울산 고유의 연희놀음임을 입증했다. 지난 2006년부터 발로 뛰며 문헌자료를 모으고, 현장 확인을 거친 이 결과물은 지난 30년간 '울산만의 것'을 끈질기게 찾고 고민해온 한 지역 춤꾼의 성과다.

 

 

   
죽광대놀이 중 탈놀이마당의 '제3과장 양반과장' 재연장면.


단순 탈놀이 아닌 곡예 접목된 신명나는 놀이
2006년부터 자료 수집, 두차례 논문으로 입증
복원 작업에 지역예술가·시민 등 적극적 동참

# 한말 영남일대서 공연되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 전후 사라져

11일 최흥기씨를 중구 옥교동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최 씨에 따르면 죽광대놀이는 한말 고종 연간인 1870년 경부터 부산·경남을 중심으로 한 영남 일대에서 공연되다가 일제강점기인 1925년 경 전후 사라졌다.

 죽광대패는 흔히 한자인 죽 대신 한글인 대를 써서 '대광대(竹廣大)패'라고도 하는데 심우성은 <한국전통예술개론>에서 대광대패를 이렇게 소개한다.

 '대광대(竹廣大)패는 주로 5일이나 7일, 9일마다 열리는 각 지방 장날에 맞춰 장터를 떠돌던 유랑 예인 집단으로, 낙동강변을 따라 합천, 의령, 초계, 고령, 안동, 호남지방에까지 왕래를 하며 놀았다고 한다. 솟대쟁이패의 솟대타기가 대광대 패놀이에도 끼여 있었으며 주요 연희 종목으로는 풍물, 솟대타기, 죽방울치기, 얼른, 오광대놀이(탈놀이)가 있었다. 이 중 오광대놀이가 특기였으며 대광대패의 오광대놀이가 경상도 지역의 오광대놀이, 야유의 확산과 정착에 큰 영향을 주고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죽(대)광대패는 떠돌이 전문 광대들로서, 지방 장날에 맞춰 고난이도의 곡예기술을 선보이며 돈을 받고 공연했다.

 이는 확실히 농사짓던 하인들의 탈춤으로서, 양반의 허세를 조롱하고 풍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오광대의 탈놀음과는 다르다. 그러나 현재 죽광대 놀이는 자취를 감춘 채 많은 이들에게 오광대와 같은 것으로 오인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울산 출신 민속학자 송석하 선생도 <오광대소고>에서 죽광대를 언급했다. 송 선생은 "죽광대는 곡예와 탈놀이를 같이 하는 단체이고, 오광대는 죽광대에게 영향을 받아서 탈놀이를 하는 단체"라며 "죽광대는 오광대처럼 단순히 탈춤만을 하는 단체가 아니고 곡예를 주로 하는 단체"라고 설명하고 있다.

 

 

 

 

   
 

# 곡예·탈놀이 두개 마당으로 구성 각각 여섯 과장으로 나뉘어
최흥기 씨는 "다행히 죽광대에 관한 자료는 부족하지만 오광대나 야유의 자료를 통해 그 기원과 특징을 찾을 수 있으며 복원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그가 설명하는 죽광대 공연은 장대 위에서 재주를 부리는 곡예마당과 탈놀이마당으로 이뤄진다. 두 마당은 각각 여섯 과장(科場)으로 이뤄진다.

 곡예마당 제1과장은 울산서낭당 각시인형의 출현과장, 제2과장은 광대들이 불을 가지고 노는 등광과장, 제3과장은 꽃고깔을 쓴 악사들이 잡귀를 쫓는 매귀악과장, 제4과장은 무동들이 땅재주와 무등놀이를 하는 무동과장, 제5과장은 광대들이 죽방울을 갖고 노는 죽방울 과장, 제6과장은 광대들이 긴 장대 위에서 재주를 부리는 솟대 과장이다.

 탈놀이마당은 제1과장이 오방신장무과장이고 제2과장은 노장 승려가 나오는 노장과장, 제3과장과 4과장은 말뚝이와 영노가 나와 양반의 허세를 조롱한다. 제5과장은 할멈이 신세를 한탄하는 할미과장, 제6과장은 사자가 나와 인간세상과 자연계를 정화시키고 연희를 마무리하는 사자무 과장으로 이로서 연희가 끝이난다.

 이처럼 죽광대놀이는 밤마리 오광대를 비롯한 안동 하회탈춤 등 탈춤 등에 비해 곡예라는 극적인 요소까지 갖추고 있어 지금 시대에도 관객의 흥미를 더욱 유발할 수 있다.
 

 

 

 

   
죽광대놀이 복원을 위해 모인 예술가 등이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 판소리 고수·탈춤꾼·민화화가 등 예술가 재능기부 잇따라
최흥기씨는 최근 지역 예술가 등과 함께 죽광대놀이를 복원하기 위한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중구 옥교동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인 학산예술원에서 매주 1~2차례 관심있는 학생 및 전문가들과 함께 죽광대의 여러 장과 곡예기술, 탈놀음 등을 재연하고 있는 것. 이 작업엔 그와 뜻을 함께 하는 지역 예술인 및 시민들이 함께하고 있다.

 죽광대놀이 자체가 곡예, 판소리, 탈춤, 풍물 등 다양한 민속연희가 등장하다보니 판소리 고수부터 탈춤꾼, 민화 화가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이 선뜻 재능기부에 나섰다.

 시립예술단의 박성태 대금연주자, 박창준 판소리 고수, 오수령 무용가, 엄영진 소리꾼, 배한나 민화화가, 김미선 연희자, 장지애 가야금 연주자 등이 그들로, 여기에 청소년 및 시민들까지 현재 26명이 참여 의사를 밝힌 상태다.
 
# 하루라도 급한 복원작업, 울산시 차원의 지원 절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작업실이 좁다보니 이들 모두가 함께 할만한 공간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최흥기씨는 "이론은 어느정도 세워져 복원작업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하는데 의상 및 소품제작부터 공간, 인건비 등을 모두 사비를 들여야하다보니 진도가 안 나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공간이 부족해 두 세명씩 따로 모여 개인기량만 늘려가고 있는 처지다. 그러나 고난이도 곡예기술 등 협업이 중요한 게 죽광대 놀이다보니 이 상태론 복원과 공연이 불가능할 수 밖에 없다.

 이처럼 울산의 무형문화자산이자 문화콘텐츠로서 가치가 있는 죽광대 놀이 복원에 울산시나 문화원 등 관계 기관의 협조와 지원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아직은 눈에 띄는 성과가 없다보니 관의 지원이 어려울 수도 있으나, 경남의 오광대와 부산 야류만 해도 지자체 지원으로 전문 연희단체가 만들어지고 상설 공연장도 갖춘 상태다.

 민속놀이 복원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적 인프라 구축을 위한 장소 제공 정도는 하루빨리 해결돼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 힘겹게 찾아낸 울산 고유의 민속놀이 하나가 사장되거나 타 시·도에 '눈 뜨고 코 베일지도' 모를 일이다.

 곧 들어서는 태화루나 대숲 등 죽광대를 접목할 수 있는 문화공간은 이제 울산에 많다. 그 곳들을 무엇으로 채울지 고민이 필요한 지금, 이곳에서 뛰어놀 죽광대 놀이패의 곡예재주와 탈춤, 음악을 상상해보자. 예술로 채워지는 또다른 문화공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죽광대놀이의 복원작업에 매달리고 있는 최흥기씨는 "언젠가 죽광대놀이가 우선 시의 무형문화재가 되고 나아가 국가무형문화재가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전통 복원에 그치지 않고 미래 이끌 문화콘텐츠로 발전"

 

 최흥기 울산죽광대놀이 복원추진위원회 대표

"죽광대 놀이는 우리나라 탈놀이의 효시인 오광대의 원류라는 전통 민속놀이의 가치 뿐 아니라 울산의 문화콘텐츠로서의 가치도 무궁무진합니다."

 최흥기씨는 죽광대가 그동안 부족했던 울산 고유의 무형문화재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미래를 이끌 문화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최 씨는 "사람들은 죽광대 복원을 단순히 전통문화의 복원으로만 생각하지만, 실제 제가 꿈꾸는 죽광대의 발전은 민속적 가치를 키우는 한편 현대인도 즐길 수 있는 콘텐츠"라며 "세계적인 서커스 공연으로 상업적 이익을 내고 있는 태양의 서커스가 그 예"라고 소개했다.

 처음 무용을 전공한 후 늘 찾아왔던 울산만의 춤, 울산만의 무형문화자산이 바로 죽광대라고 생각한다는 최 씨는 "지금은 형편이 열악하지만 언젠가 죽광대놀이가 우선 시의 무형문화재가 되고 나아가 국가무형문화재가 되길 희망한다"며 "끝으로 어려운 여건이지만 함께 참여하는 회원들께 감사하다"고 전했다.     글·사진=김주영기자 usk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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