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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혼자 사시는 어머니가 부엌에서 마루로 나오다가 넘어져서 20마늘이나 꿰매었다고 한다. 이틀이나 아침·저녁으로 전화를 해도 받지 않으시기에 집으로 가보는 수 밖에 없었다. 집에 도착해서야 3일전에 다쳐서 병원에 갔다 왔음을 알았다.
 

 아흔 살이 다 되신 어머니의 사고에 갑자기 내 자신이 그렇게 미워질 수가 없었다. 항상 바쁘다는 이유로 어머니가 다친 줄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원망이었다.
 "다쳤으면 전화를 하지 왜 안 했노?"
 "뭐, 크게 다친 것도 아니고, 너도 일한다고 바쁠텐데 뭐 할라고 전화를 하노. 내 혼자 병원에 가서 치료 잘 받았다. 걱정마라."
 "그렇게 하는 게 더 잘못된 거다. 남들이 보면 뭐라고 하겠노. 자식도 없는 사람으로 안 보겠나."
 

 어머니가 혼자서 피가 흐르는 다리를 잡고 버스를 타고 병원에 간 것을 생각하니 내 일에만 몰두한 자신이 미웠다.
 그날은 붕대를 풀고 새 붕대를 감아주고 집으로 왔다.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여름에 다친 상처는 오래갈 것이란 생각에 약국에 가서 붕대와 소독약, 연고, 그리고 넘어질 때 다친 허리가 걱정이 되어 파스를 사 가지고 다음날 아침 어머니를 모시고 진료를 받은 언양에 있는 병원으로 갔다.
 

 진료를 받고, 물리치료도 받아야 하기에 두 시간이 소요된다고 했다. 나는 갑갑한 병원문을 밀고 밖으로 나왔다. 가을을 알리는 가랑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우산을 쓰고 거리로 나오는데 바로 앞에 처음 본 건축물이 보였다. 빗속에서 본 건축물은 너무나 깨끗하여 발길이 저절로 그곳으로 향했다. 
 

 웅장한 성벽의 위용을 드러낸 건축물은 언양읍성의 복원공사 중 한 곳의 남문인 영화루이다. 입구에 들어서니 행정을 위해 건축된 성이라기보다는 전쟁에 대비하는 성으로 보였다. 영화루 앞에는 성문을 방어하기 위해 둥근 반원형 옹성이 있고, 옹성에는 여장이 있어 여기에는 적을 보고 총이나 활을 쏠 수 있는 총안이 있어 일반 성들과는 다른 전투성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 주변에 해자(垓字)가 있어 전쟁을 대비해 건축한 성임을 알 수 있었다.  
 

 언양읍성은 조선초기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쌓았던 읍성 중의 하나로 처음에는 흙으로 쌓았다가 다시 튼튼한 석축으로 건축한 성으로 산지가 아닌 평지에 네모꼴로 쌓은 평지성이다. 당초에는 성벽의 둘레가 1km이며 성벽의 높이는 4m가 되었다고 한다.
 

 네모꼴인 성은 사방에 옹성과 누각을 지었다. 남문은 영화루(映花樓), 동문은 망월루(望月樓), 서문은 애일루(愛日樓), 북문은 계건문(啓乾門)으로 북문에만 누각이 없다. 성문의 이름만으로 보면 너무나 서정적이라 전쟁에 대비한 성문에 대한 이름으로는 다소 어울리지 않지만, 누각의 이름으로는 너무나 멋있는 이름이다.      
 남문은 아직 준공식을 하지 않았기에 영화루란 현판은 아직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성문을 지나 영화루에 올라보니 뒤로는 화장산이, 앞으로는 영남알프스가 산의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성벽을 걸어가다 보니 벌써 흡연자들이 다녀갔는지 길 위에는 담배꽁초들이 보인다. 성벽위에서 담배를 피우고 그렇게 뒤 처리를 하고 간 모양이다. 그에 질세라 영화루 마루에는 아이스크림을 먹다 버린 쓰레기와 휴지가 뒹굴고 있었다.
 

 모든 것은 처음이 중요한데 문화재에 관심이 있어 온 사람들의 나쁜 모습을 남기고 간 것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문화재는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의 것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손때와 숨결이 남아 있는 것이므로 반드시 원형 그대로 자자손손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재산이다.
 

 울주군에서는 훼손된 읍성을 힘들게 원형에 가깝게 복원해 영원히 보존할 문화재로 만들고 있다. 문화재를 찾는 이는 반드시 문화재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방문을 하여야 한다. 그것이 선진국이 되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나의 무관심으로 어머니가 다친 것처럼, 우리 모두는 문화재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를 생각해 보며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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