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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이다. 한글날이면 울산에서는 맨 먼저 외솔 최현배 선생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선생이 태어나신 곳이 바로 울산이고, 선생이 한글 연구와 보급에 일생을 바쳤기 때문이다. 선생은 비록 몸은 울산을 떠나 있었지만, 마음은 늘 고향 울산을 잊지 않았다. 선생이 남긴 글에 잘 드러나 있다. 

 선생이 돌아가신지 13년 뒤 1983년 12월 당시 울산문화원이 펴낸 '울산문화' 창간호에 선생이 쓰신 '내 고향의 자랑-울산풍물'이란 글이 실렸다. 선생이 광복 전에 쓰신 그 글은 아드님 철해씨가 보관하고 있다가, 울산문화원에 보내와 실린 것이었다. 선생은 울산의 풍광을 이렇게 나타냈다.

 '산 좋고 물 좋으니 곳곳이 승경이라. 삼산낙조(三山落照)에 들새가 돌아가고, 이수귀범(二水歸帆)엔 한정이 듬뿍하며, 학성경운(鶴城輕雲)은 변천의 정을 자아내고, 구정소우(鷗亭疎雨)는 시취(詩趣)를 북돋우며, 어풍대(御風臺) 격성(激聲)은 남아의 기상을 장하게 하고, 함월산(含月山) 청광은 평화를 상징하며, 태화강 고기등불은 밤새도록 반짝이고, 한섬(大島)의 소금연기 종일토록 높이나니, 이것이 울산팔경이라.' 
 울산은 그처럼 풍광이 빼어나고, 물산 또한 풍부했다. 국방의 요충지로 병영이 설치되면서 상무정신이 드셌다. 상대적으로 문풍이 모자란 점이 커다란 아쉬움이 됐다. 그래도 현대에 들어와 외솔 선생을 필두로 민속학의 태두 송석하, 영문학자이자 수필가 정인섭 선생 등 큰 학자를 잇따라 배출했다. 경제학의 김영모와 정치학의 진덕규, 인류학의 이문웅 선생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울산이 도시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그들이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할 때에 적절하게 활용해야 하는데도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물론 먹고 살기에도 벅찬 당시의 시대상황으로써는 지역의 지적(知的) 수준을 끌어올리는 일쯤이야 사치로 여겼으리라. 그런 점을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폐쇄성을 벗지 못한 울산사회의 한계가 아닐 수가 없었다. 

 더욱이 1962년 2월 공단으로 건설되면서 돈만을 좇는 배금주의와 한탕주의가 휘몰아쳤다. 전국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울산은 사람이 살만한 도시가 아니라, 돈을 벌면 떠나야 하는 도시라는 오명에 시달렸다. 심각한 정체성의 혼돈을 겪었다. 그동안 아무 쓸모가 없다는 안이한 판단으로 인문정신이라는 튼튼한 밑바탕을 갖추지 못한 탓이었다. 

 울산은 오랫동안 낙후성을 극복하지 못했고,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울산이 전국의 대도시 중에서 도시수준의 바로미터라는 교육과 문화예술 분야에서 여전히 하위권을 맴돌고 있음이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경제력에서는 울산에 한참은 뒤지는 중소도시들이 도리어 울산을 능가하고 있다. 이웃 경주와 안동, 거창, 전주, 고양 등지가 본보기다. 

 지난 시절 울산을 이끌던 지도층이 판단을 잘 했다면 다르지 않았으랴. 당장 울산에 인문정신을 고양시켜야 한다. 울산이 언제까지 지금의 산업체에서 생산하는 제품만으로 풍족하게 살아갈 수가 있으랴. 미래의 먹거리를 창출하려면 인문학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울산광역시를 비롯한 지자체가 발 벗고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시민들이 자연스레 인문학에 접근하게 해야 한다. 

 이쯤에서 선진 사례를 살펴보자. 대구 수성구 수성문화재단의 '인문학 뮤지엄'이 볼만하다. 성인 프로그램 외에도 인문학의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어린이(초등생)와 청소년(중ㆍ고교생)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도토리 고전학교와 한뼘 인문학강좌가 그것이다. 몸과 마음을 동시에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인문학 프로그램에 어린이와 청소년의 열기가 매우 뜨겁다고 한다. 나이를 고려한 인문학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 큰 성과를 거둔 것이다. 

 올해 외솔 선생 탄생 119주년을 기념하여 두 번째 '한글문화예술제'가 열린다고 한다. 인문정신이 빈약한 울산에서는 어쩌면 이런 행사가 필요할 수도 있겠다. 인문정신의 외연을 확충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칫 흥행위주의 보여주기식 행사만 계속하다가는 독(毒)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시민들이 자연스레 인문학에 다가서게 흥미를 유발하는 상시 인문학 프로그램 마련에 힘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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