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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새 가을이다. 고장 난 난로같이 달아오르기만 하던 여름해는 물러앉고 그 자리에 가을달이 무심히 떠 있다. 말라있던 마음 한 귀퉁이로 가을이 스며드는지 사방 쯧쯧쯧 풀벌레 소리로 가득 찬다.

 어찌 들으면 노래 같고, 어찌 들으면 울음 같고, 어찌 들으면 뜨거운 대화 같은 저 소리를 나는 여름을 견디며 얼마나 그리워하였던가. 그 매운 찜통 속에서도 삽상한 가을바람을 떠올릴 수 있게 희망을 준 가을 전령사 풀벌레들, 저들은 대체 어디서 어떻게 지내다 이리 모여 판소리 한 마당을 풀어놓듯 밤을 지새우고 있는 걸까.

 창을 닫고 나서도 귓전을 맴도는 소리를 밀어내면서 어쩌면 벌레를 먹이사슬 피라미드에서 사람보다 더 높은 자리에 놓아야 할지 모른다고 생각해본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별별 벌레들이 내 집을 차지하고 앉아 구석구석 살고 있다는 피해의식에 사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개미, 처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읽었을 때 참 많이 놀랐다. 그것은 책의 내용과 소설적 역량을 떠나 개미들에 대해 어쩌면 이렇게도 같은 것을 본 사람이 또 있을까 싶어서였다. 큰 조카는 유치원 가기도 전부터 화단에서 파 온 개미집을 유리병에 담아 책상 위에 두고 들여다보는데, 고모인 나는 저 징그러운 놈을 왜 들여왔느냐고 야단을 쳤었다.

 하지만 조카는 꿋꿋이 개미들에게 애정을 가졌고, 점점 책상 위에 놓이는 것이 바뀌더니 이제는 생명을 아끼는 좋은 의사로 살고 있다. 문제는 그때 징그러워하면서 보게 된 개미집의 구조, 개미들의 습성 같은 것을 소설 <개미>에서 보았을 때 그때의 유리병 속을 다시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온몸이 스멀거리는 듯한.

 여름을 지나면서 나는 숱한 벌레들과 어쩔 수 없이 동거를 한다.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회색나방, 새카만 쌀벌레, 팥에서 나오는 좀벌레 같은 녀석들과….

 작년에 팥 한 되를 사다 어디 두었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더니 참으로 끔찍하고 처참하게 해체돼 내 앞에 나타났다. 처음엔 그리 심각한 줄 모르고 물에 담갔는데 정말이지 내팽개치고 도망가고 싶었다. 물 위를 가득히 덮은 벌레들이라니.

    온몸이 스멀거리는 느낌을 떨치며 수십 번 씻고 또 씻고 손이 퉁퉁 불 때까지 그러다 무슨 들깨 알 같은 것들이 점점 사라지면서 이만하면 될까 하고 물을 빼서 들여다보니 오, 세상에 그것은 내 것도 아니고, 팥의 것도 아니고, 아예 벌레의 무수한 집이었다. 도대체 연장하나 없이 무슨 수로 그 질긴 두 겹 비닐을 뚫었고, 무슨 수로 그 단단한 팥에다 드릴로 뚫은 듯 정교한 구멍을 내어 들어앉을 수 있는지 내 아둔한 머리로는 도무지 셈을 할 수가 없었다.

 단순히 팥 벌레에게 팥 한 되 빼앗긴 것만으로 내가 이러는 것은 아니다. 사실 과일도 가장 색 곱고 단내 나는 것은 녀석들의 차지다. 과일 중 가장 먼저 익는 것은 낙과, 낙과를 주워보면 제일 맛있는 부위엔 어김없이 녀석들이 구멍을 뚫고 알을 낳은 후다. 채소도 그렇다. 가장 푸르고 연하고 고소한 부분을 녀석들이 먹고 지나간 그 채소를 우리는 친환경이니 유기농이니 더 선호하고 있지 않은가.

 이뿐 아니다. 나비나 벌 나방 등 변태를 거친 이들을 우리는 벌레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들은 어릴 때는 벌레라는 이름으로 살지만 자라서는 곤충으로 산다.

 유충일 때는 우리와 다름없는 잡식에서 출발하지만 오랜 기다림과 각고의 노력 끝에 당당히 날개를 달고 날아올라 우화등선, 징그러웠던 벌레의 이름을 벗어버린다. 그리하여 신선처럼 꽃 꿀이나 나무 수액을 먹고 산다. 이 부분에 오면 나는 벌레들 앞에 고개를 떨구고 만다. 아직도 버리지 못한 내 어리석었던 우화등선의 꿈이 가슴 밑바닥에서 꿈틀거리기 때문이다.

 지금 내 손에 들린 살충제는 벌레들에겐 재앙이겠지만 내게는 생존이다. 자연에서 볼 때는 가장 치명적이고 치사한 방법일지 모른다. 하지만 내 집을 녀석들 소유로 돌아가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요즘은 내가 녀석들 집에 세 들어 사는 참담한 기분이다.

 어디엔가 숨어 있다 불쑥 나타날지 모른다는 피해의식이 점점 더 깊어진다. 천정이나 바닥 벽에 대고 벌써 두 병째 살충제를 무차별 살포 중이다. 내가 저들보다 우위라는 것을 보여주는 길은 오직 이 방법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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