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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의 말은 어법의 문제도 문제지만 사용하는 단어나 언어의 신중함도 지나침이 없어야 한다. '노가다 언어'로 권위주의 파괴의 한 단면을 보여준 고 노무현 전대통령만 해도 그가 남긴 한국 정치사의 긍정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거친 언어의 폐해는 망령처럼 떠돌고 있다. 지나간 이야기지만 고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 정상외교에서도 직설적 화법으로 정상외교에서 파격에 가까운 발언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다분히 의도적인 노무현식 화법이 화제가 된 것은 무엇보다 지금까지 우리 정상들이 외교를 통해 사용했던 언어나 국내 정치에서 보여준 언어와는 다른 차원의 언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는 굳이 외국어의 사용이나 외래어의 남용, 이른바 '노가다 언어'의 거침없는 구사를 두고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의식구조에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서유럽 외교를 두고 말이 많다. 정상 외교에서 보여준 '한복의상'과 외국어 연설을 두고 야당이 연일 공세를 취하고 있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공식 언어는 우리말이어야 한다"며 "박 대통령이 중국에 가서 중국말로 하고 프랑스에 가서 불어로 연설하고 미국에 가면 영어로 하는 것을 국민이 보고 자긍심을 느끼실 분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 점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개인 박근혜 여사가 5개 국어를 하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의 공식적인 언어는 우리말 하나여야 한다"며 "이것은 외교적 관례이고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중앙일간지의 한 논설위원은 이를 두고 '대통령의 외국어 능력'을 외교적 자산이라며 찬양론을 폈다. 그는 박 대통령의 '외국어 외교'를 두고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뚜렷하게 각인시킬 수 있었다며 칭송을 늘어놓았다.

 대통령이 외국어를 잘하는 것은 분명 장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외국어를 하나도 아니고 무려 5개나 구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어와 프랑스어는 토론이 가능할 만큼 능숙하고, 중국어와 스페인어로는 쉬운 대화를 할 수 있는 정도라고 한다. 이번에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프랑스 경제인들과의 간담회에서 20여분 동안의 연설을 프랑스어로 한 것은 단연 화제였다. 외국의 대통령이 간담회에서 프랑스어로 연설한 것은 처음이었다는 보도다. 중국을 방문했을 때는 칭화대에서 22분 가운데 4분을 중국어로 연설, 10여 차례나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 시진핑 국가주석과 대화를 하던 도중에 "배고파 죽겠다(餓死了)"고 중국어로 말해 폭소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문제는 할 수 있는 것과 하는 것의 차이다. 대통령이 외국에서 그 나라 말로 연설하는 행위는 외교적 기술이면 충분하다. 굳이 외래어를 동원해 표현하자면 '언어적 스킨쉽'이라고 하면 어떨까 싶다. 친숙함을 표현하고 관심을 드러내는 일에 자국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효과적이다. 외국 정상이 우리 언론 앞에서 '안녕하세요'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에 대한 호감도는 급상승하기 마련이다. 딱 그 지점이다. 그 선을 넘지 않는 외국어 사용이면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우리 문화에는 이상하리만큼 외국어에 대한 사대주의가 깔려 있다. 이는 어떻게 보면 우리 언어에 대한 열등감이라는 해석도 가능한 이야기다. TV를 켜면 온통 외국어 일색이고 시골마을 공중화장실도 'toilet'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영어가 붉은 빛으로 낯을 붉히고 있다. 시골 촌로가 이 단어를 제대로 알고 있을리 없지만 여름에 우박내리듯 찾아오는 외국인을 위한 배려인지 방방곡곡 외국어 표기가 주인행세하는 공중화장실이 가득한 나라가 우리다. 드라마에서 야망에 찬 재벌 2세들은 반드시 미국이나 유럽에서 비행기를 타고 입국하는 순간,  영어로 '비즈니스'를 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외국어 능력은 이들이 진짜 능력을 가진 인재라는 점을 보여주는 가장 구체적인 척도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아이돌 그룹의 이름은 국적불명의 영어로 도배되어 있다. 대통령이 '신뢰 프로세스'라고 이야기 하자 신뢰와 프로세스는 친구가 됐고 친구가 되지 못한 단어들은 서로 삿대질을 하며 이분법의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여와 야, 영남과 호남, 구세대와 신세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혈투를 벌이는 나라가 우리다. 그 뿐인가. 안방을 점령한 미디어들의 외국어 홍수부터 국적불명의 외래어는 애교다. 내가 사는 아파트나 몰고다니는 차부터 일상적으로 들리는 가게이름에 근무하는 회사와 상대하는 기관명에도 영어가 들어가는 것은 대세다. 온 나라가 이지경이니 대통령이 외국에 나가 그나라 말로 제법 오래 연설을 하는 것이 이상할 게 없는 것이 우리 정서라는 이야기다.

 어떻게 해서든 말 하는 중간에 외국어를 집어넣어야 '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심리가 이제 아예 전면에 외국어를 완장으로 차고 나와 설친다. 서울에서 생활하는 타지 출신들이 늘 느끼는 점이지만 이같은 언어적 우월의식은 우리말 속에서도 자리하고 있다. 서울말을 쓰지 않는 서울주소지의 사람은 그냥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에 불과하다. 서울과 타지역을 나누고 서울 아닌 곳은 모두 시골로 치부하는 나라가 우리다. 언어가 소통의 도구임에도 소통의 장벽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해보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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