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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3월 준공을 앞둔 태화루 공사현장을 지나면서 사래에 걸려있는 처용와(處容瓦)를 보았다. 순간적으로 사래에 걸려있는 처용와는 울산인만이 할 수 있는 신선한 발상의 전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어쩌면 대목장의 의도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목조건축물 장엄, 장식에는 화재를 예방하는 일정한 패턴이 있기 때문이다. 이 기회를 통해 용과 처용의 상징적 기능 역할에 대한 짧은 생각을 적는다.

 삼국유사 처용랑 망해사조에는 동해의 용과 용이 남자의 몸으로 변신한 처용의 이야기가 전한다. 헌강왕이 신라 학성의 개운포를 찾아 물가에 쉴 때 일어난 일들의 이야기는 이미 아는 바다. 연장선에서 동해용왕의 일곱아들 중 한 아들은 왕을 따라가 경사에서 왕정을 보좌하였는데, 그 때 이름을 처용이라 하였다. 내용에서 학성의 개운포 물가에서의 용과 경사에서 남성이 된 처용 두 가지로 구분된다. 개운포의 용은 망해사 창건약속으로 마무리된다. 한편 경사 생활의 처용은 이후 결혼을 하며 처용가와 처용무 그리고 벽사진경신으로 승화된다. 신라의 설화는 이 시대에도 처용가와 처용무 그리고 문첩의 처용화로 전승된다. 용과 처용 둘은 용이 중심이지만 상징적 기능 역할은 확연히 다르게 나타난다.

 용이란 존재는 동양에서 상상의 동물로 형상화시키되 다양하여 종잡을 수가 없다. 용은 수신의 상징이 중심이다. 용의 도상은 인문학에서 무한한 변신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러기에 귀신, 사자 등 일정하지 않고 다양하게 나타나 어느 하나를 꼭집어 이것이다 하기가 곤란하다. 민족마다 국가마다 다르며 화가마다 조각가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정서가 다르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축물일수록 용의 도상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특히 사찰, 궁전 등 목재 건축물일수록 용마루의 취두 혹은 치미, 내림마루의 용두, 추녀마루의 잡상, 사래의 토수와, 용면화, 용면와 등 다양한 용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용 형태는 구조물의 장식 효과적 현상으로 나타나지만 본질은 화마의 예방적 차원의 주술적 의미가 담긴 비보(裨補)다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건축물에 쓰여진 '내 집에 한 손님이 있으니, 정녕 바다 사람이다. 입으로 하늘에 넘치는 물을 머금어, 능히 불의 정신을 죽인다.(吾家有一客 定是海中人 口呑天漲水 能殺火精神)'라는 항화마진언의 글귀는 수신(水神)을 찬탄하는 글로 화마로부터 보호하고자하는 주술적 의미로 볼 수 있다.

 용면화의 기능을 알면 목재건축물에 그리는 이유와 그곳에 그려야하는 의미를 알게 된다. 모를 때는 괴운문(怪雲文), 괴수(怪獸), 도깨비, 귀면(鬼面), 수면(獸面) 등으로 부를 수도 있다. 설령 모습이 용과 아니라할지라도 화재의 예방적 목적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선조들은 정성 드려 지운 건축물이 혹시나 화재로 소실되는 것을 사전 예방차원에서 다양한 방편을 강구했다. 경회루 연못에 용을 넣어두고, 안압지에서 녹유로 장엄한 용면와(龍面瓦)가 출토되는 것도, 평방에 소금단지를 얻어두는것도 모두 화마의 예방적 차원이다.

 태화루 위치는 태화강과 용금소의 황용이 태화루를 화마로부터 철저하게 지키는 소방관의 역할자로 볼때 화마의 예방적 차원에서 적당한 위치이다.

 처용은 용의 인격화 호칭이다. 처용은 벽사진경신의 상징으로 승화되었다.
 미물인 용이 과연 남자로 변할 수 있을까. 자연과학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인문학에서는 가능하다. 삼국유사에서는 미물인 용이 남자로 변신한 처용이 등장한다. 법화경에서 용녀(龍女)가 용남(龍男)으로 변한 것이 유사 사례이다.

 용이 변신하여 처용이 되었으니 용과 처용은 상식적으로 대등하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기능을 살펴보면 상식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삼국유사에는 처용은 역신 다스리는 의사의 기능적 역할을 분명히 하고 있다. 악학궤범에서 처용은 열병신을 보기를 횟감정도로 밖에 보지 않아 처용은 역신과 열병신에 대해서는 대단한 기능적인 존재임을 짐작할 수 있다. 역신 혹은 열병신은 처용한테는 불가항력이다.

 지금까지 용과 처용의 기능적인 면을 살펴본 결과, 용은 소방관의 역할이며 처용은 의사의 역할을 담당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새로 지은 건축물에 다양한 형태의 용면화를 그리거나 용면와를 장식하는 것은 목재의 부식을 막고, 보기에 좋게 하는 등 다중적 의미가 내포되어있겠으나 그 중심에는 분명코 화재의 예방이다.

 화마를 퇴치하는 용의 역할과 역신을 물리치는 처용은 기능적인 면에서 용처(用處)가 각각 다름을 알 수 있다. 용은 지붕의 용면와(龍面瓦)로, 처용은 대문 혹은 출입문의 문첩화(門帖畵)로 각각 활용될 때 그 의미는 확실해진다.

 커피마니아들은 한 잔의 커피도 개성을 살리기 위해 에스프레소 커피, 핸드드립 커피, 더치커피 등으로 주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태화루에 등장한 처용상의 기능적 역할은 용면와의 기능적 역할에 비해 논리적, 객관적이지 못하다. 처용은 역신 혹은 열병신의 대상 신이며, 용신은 화마의 퇴치신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태화루 사래의 처용와는 소화기를 비치할 곳에 약봉지를 걸어두는 격이다. 짧은 생각에 오해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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