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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흥미를 두고 있는 것이 생겼다. 등산이다. 어머니께서는 줄곧 아침마다 동네 뒷산에 오르신다. 울긋불긋 단풍이 물드는 계절에는 매일가다시피 하셨고, 이젠 제법 날이 쌀쌀해졌음에도 자주 산에 가신다. 등산과는 먼 사람인 기자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아 "뭐가 그리 좋아서 매일 가시냐"고 물었더니, "시원하잖아" 하고 단번에 대답하셨다. 그러고는 "이 좋은 걸 왜 사계절 내내 안 다녔을까"하고 기분좋게 배낭을 메셨다. 시원하다는 말의 의미를 알고 싶어 한 번은 따라나서고자 했지만, 휴일마다 이겨낼 수 없는 늦잠에 결국 또 어머니 혼자 가셨다. 지난 주말에는 큰 맘 먹고 어머니에게 먼저 제안을 했다. 북구 천마산을 오르기로 했다. 최근 천마산 입구의 만석골저수지가 새 단장 했기 때문이었다. 구경도 할 겸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시원함'을 느껴보고자 오전 9시 천마산으로 향했다.


#새 단장한 만석골저수지 순환산책로

   
▲ 만석골저수지에 순환산책로가 조성되면서 숲과 저수지를 한 눈에 담을 수 있게 됐다.
고민이 있을 때,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공원을 걷곤한다. 그저 앞으로 걸어나가는게 생각을 정리하는데 꽤나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외로움을 많이 타서 무조건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걸어야했지만, 어느 순간 혼자 걷는 것이 익숙해지고 편해졌다. 그래서 작은 동네 뒷산도 혼자서 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산을 타보니 혼자보단 둘이 훨씬 좋았다. 20대 중반의 여성이기도하니 혼자서 깊숙한(적어도 공원보다는)산에 들어가기엔 무서움이 앞섰다.


 천마산으로 가는 길목은 달천마을을 지나치는 길이라서 그리 무섭지는 않지만, 마을을 벗어나 천만사라는 사찰을 지나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나뭇잎이 부대껴 내는 소리는 특유한 고요함을 지니고 있어 왠지 으슥하다.


 천만사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공영주차장이 나오는데, 여기서 두 갈래로 길이 갈라진다. 왼쪽 방향은 만석골저수지로 가는 길이고 직진방향은 숲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다.


 만석골저수지는 북구 달천동에 있는 농업용저수지로 1966년도 축조된 것으로 면적 0.8㏊에 2만4,000t을 담수할 수 있는 저수지다.


 만석골저수지 방향으로 좀 더 들어가면 주차를 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마련 돼 있다.


   
▲ 곧게 뻗은 편백숲을 걸으면 피톤치드의 상쾌함이 느껴진다.
 지난해에 왔을 때는 저수지만 덩그러니 있고 보·차도가 분리되지 않아 이용에 불편을 겪곤 했는데, 저수지 주변으로 둥그렇게 데크가 설치되면서 좀 더 산뜻해졌다.


 방문 기념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도 눈에 띈다. 산책데크 중앙 뒤편에는 작은 바람개비 동산이 조성돼 있는데 빨강, 노랑, 파랑 등 색색의 바람개비가 바람과 함께 춤을 추고 있다. 쌀쌀한 초겨울 날씨지만 빙글빙글 돌아가는 바람개비를 보고 있자니 마음에는 봄이 찾아오는 것 같다.


 일반 장승 이미지와는 다르게 개구지게 웃고 있는 미니 장승은 아이들의 웃음과 닮아 기분좋게 만든다.


 새 옷을 입은 만석골저수지를 한 바퀴 돌고 편백산림욕장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편백나무 8,500여 그루
달천편백산림욕장은 30년생 편백나무 8,500여그루가(4.45ha)가 식생한다. 올해에도 5년생 편백나무 2,000그루를 심었다.


 입구는 울창하게 드리운 소나무 숲으로 시작한다. 어디쯤가면 편백나무를 구경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쯤에 곧게 뻗은 편백나무를 만날 수 있다. 박하사탕의 시원함처럼 차가운 공기와 함께 마시는 피톤치드향이 온 몸에 퍼진다. 이런 느낌이 어머니가 말하신 시원함이 아닐까 싶었다.


 피톤치드는 나무가 곰팡이, 세균 등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내뿜는 것이다. 활엽수보다는 침엽수에서 많이 발산되고, 그중에서도 편백나무가 월등하다고 알려져 있다.


 소나무의 3.9배, 잣나무의 2.2배다. 피톤치드는 항균, 살균, 이완 및 진정 효과가 있어 숲이 인간에게 선물한 최고의 건강치유 물질로 인정받고 있다. 조용한 편백나무 숲은 몸만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곳은 아니다. 명상에 들어도 좋고, 책 한 권 들고 들어가 편안한 마음으로 독서에 빠져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러고보니 지난 여름쯤에 만났던 한 어르신이 생각난다. 편백나무숲에서 풀피리를 불며 등산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이도호(북구 농소3동·65)어르신이었다. 겨울철이라 이 날은 어르신을 만날 수 없었지만, 그 장소에 와있으니 그 때 어르신이 들려주셨던 풀피리 연주가 귀에 퍼져나간다.


   
▲ 편백숲 입구 조형물.
 편백산림욕장이라는 이름답게 곳곳에는 눕거나 앉아서 편히 쉴 수 있는 의자와 평상, 벤치가 마련돼 있다. 편백나무가 빽빽한 곳 아래 자리한 의자는 늘 인기가 좋다.


 편백나무 숲 한 중간에는 잠시 쉬어가기 좋게 광장이 조성돼 있는데 넓은 평상들 사이에는 한 소녀가 즐겁게 현악기를 켜고 있다. 진짜 사람은 아니고 자연재료로 만든 조형물인데, 포토존으로 사랑받는다. 한 걸음씩 걷다보면 나무 사이사이에 이 같은 아기자기한 조형물을 발견할 수 있다.
 
#1시간이면 정상에
편백숲을 지나 언덕을 더 오르고, 숨이 좀 가쁘다 싶으면 어느새 정상이다. 낙엽이 떨어져있는 탓에 길이 조금 미끄러웠지만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워낙 짧다보니 이쯤은 견딜 수 있었다.


 정상에 오르니 북구지역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늘 경이롭다. 늘 지나다니던 길과 익숙한 동네에 지나지 않지만 알려져 있지 않은 보물지도라도 찾은 양 기쁜마음이 벅차오른다. 또 하나의 시원함을 찾아냈다.


 배낭에 마실 것 하나 싸오지 않은 것이 후회됐다. 따뜻한 차라도 한 모금 마시면 더욱 좋을 것 같았다. 마침 함께 정상에 오르신 한 아주머니가 한 모금하라며 커피 한 잔을 주셔서 감사히 받아 먹었다.


   
▲ 천마산 정상.
 하산하는 길은 더욱 짧게 느껴졌다. 지난 가을 신불산에 갔을 때는 내려오는 길에 다리가 너무 아파 고생한 기억이 있었는데, 천마산은 1시간만에 평지에 이를 수 있다. 평소 산에 잘 가지 않는 사람이라면 천마산을 한 두번 오르내리다보면 숲과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오전 10시쯤 걷기 시작했는데 내려오니 12시가 다 되어간다. 해가 중천에 뜨니 부모님 손을 잡고 함께 나들이를 나온 꼬마들도 여럿 보인다. 산 문턱에는 아이들이 간단히 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 돼 있었는데, 걷기만 하는데 지루함을 느끼기 쉬운 아이들의 놀이터로는 제격인 것 같다.


 어느새 만석골저수지로 다시 돌아왔다. 차를 타고 마을로 돌아가는 길, 바람개비가  오늘 느낀 시원함을 모두 담아 신나게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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