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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가 올해 정명 600년을 맞아 다양한 사업을 벌였다. 정명 600년을 역동적인 산업도시 울산이 세계도시가 되는 출발점으로 삼자는 취지로 시작된 올해 각종 행사는 많은 시민의 참여와 캠페인으로 울산의 도시 품격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울산이 정명 600년을 기념하는 이유는 바로 내일을 위한 좌표로 삼고자 하는 데 있다. 이제 울산은 정명 600년을 계기로 새로운 도시마인드를 가진 세계도시 울산을 위한 품격을 갖춰야 할 시점이다. 도시의 성장과 발달은 산업의 성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과거 도시국가로 세상에 명함을 내민 그리스 로마인들은 서남아시아의 정신적 문화유산과 기술을 전수받기 전까지 야만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야만적 기질을 가진 그들의 공동체는 짝짓기와 먹을거리 찾기에 급급해 종족을 늘이고 부는 축적했지만, 문화를 만나지 못했기에 무질서와 혼란이 판을 쳤다.
 도시의 성장이 문화적 파워와 연결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문화적 기반이 부족한 도시는 천박하다. 도시의 구성원들이 천박해서가 아니라 도시를 이끌어 가는 리더들의 문화적 소양이 부족하기에 그렇다.
정명 600년, 이제 울산을 문화적 에너지가 넘쳐나는 도시로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 울산신문은 경동도시가스와 공동으로 올해 정명 600년을 돌아보고 앞으로 울산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점검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반구대암각화는 고래 등 해상과 육상 동물이 함께 그려져 있고, 사냥술과 생활상이 세밀하게 묘사된 유일한 암각화이다.

동아시아 최초로 신석기시대 돌도끼 석영제 마제석부 발굴
BC 6,000년경부터 시작된 울산의 장구한 역사 또다시 입증
세계유일 고래사냥 장면 등 선사문화 보고 반구대암각화도

# 반구대암각화에서 시작되는 한반도의 역사
최근 울산지역에서는 고고학계를 놀라게 한 다량의 신석기 시대 유물이 발굴됐다.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일대인 신고리 3·4호기 원전 개발사업 이주단지 조성부지에서 기원전 약 6,000년(신석기시대 초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들이 대거 출토됐다.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부경문물연구원은 울산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 일원에 대해 발굴조사를 한 결과, 동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신석기시대 초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석영제 마제석부(간  돌도끼·사진)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석기시대 유물이 발굴된 지역은 1935년 일본인 고고학자 사이토 다다시가 처음 발견한 남해안 신석기시대 유적 중 하나인 신암리 유적에 포함되는 곳이다. 이번 발굴에서도 같은 시대 융기문토기(덧 띠무늬토기)와 자돌문토기(찌른무늬토기), 세침선문토기(가는선문토기) 등의 토기류도 확인돼 이 같은 사실이 다시 한 번 증명됐다.

 6,000년 전 울산은 어떠했을까. 이와 관련한 또 한가지 중요한 자료가 반구대암각화 인근에서 발견됐다. 지난달에 25개의 공룡발자국 화석이 나온 울산 반구대암각화 앞에서 추가로 공룡발자국 화석이 발견되는 등 총 81점의 화석이 확인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찾아낸 이 발자국 화석은 초식공룡인 용각류와 조각류, 육식공룡인 수각류가 함께 발견돼 다른 지역과 다른 특징을 나타냈다.

 특히 연구소는 화석 중에서 길이 9㎝·너비 5.4㎝의 작은 수각류 공룡 발자국의 경우 형태로 보아 지금까지 경상도 지역에서 발견된 육식공룡 발자국 화석과 다른 종류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국보 285호 반구대 암각화 앞에서 추가로 발견된 공룡 발자국.
 새끼로 보이는 공룡의 발자국이 무더기로 발견된 것도 특이하다. 황성동 세죽마을에서 발견된 고래잡이 흔적과 서생의 유물, 반구대암각화 인근의 공룡 화석 등은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울산의 역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반구대암각화는 무엇보다 앞서 언급한 모든 증거의 총집합이다. 반구대암각화는 바다와 육상 생물을 모두 새겨 놓은 진귀한 문화유산일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유래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다.

 반구대암각화의 학술 가치는 세계적인 석학들이나 인류학자들이 인정하는 부분이다. 세계적으로 암각화를 연구하는 이들은 그림으로만 보던 반구대 암각화를 하나같이 눈앞에 놓고 그 숨결을 느껴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동안 문화재 당국은 자연상태의 훼손은 어떤 것도 안된다는 논리로 형상변경이나 발굴조사를 외면해 왔다.

   
울산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출토된 기원전 6,000년전 신석기시대 조기 석기. 돌도끼·긁개류 등.
 연해주의 사카치아랸, 이탈리아 발카모니카, 스웨덴 타눔, 아프리카 나미비아, 탄자니아 콘도, 아르헨티나 리오 핀투라스 등 모두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암각화다. 모두 나름대로 보존이 잘 된 암각화지만 훼손상태가 심각한 곳도 있다.

 특히 관광지가 된 암각화는 비록 물에 잠기는 곳은 없지만, 인위적인 탐조시설이 들어서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암석과 현대의 인공미를 연결한 곳이 대부분이다.

 또 한가지, 이들 암각화에 나타난 그림들은 대부분 조악하다. 무엇보다 단순한 형상의 나열이나 상징화된 이미지의 반복이 이들 암각화의 전부라 할 수 있다. 물론 고래 그림은 없다. 해상과 육상 동물이 함께 그려져 있고, 사냥술과 생활상이 세밀하게 묘사된 암각화는 반구대암각화가 유일하다. 그런데 말이다.

 앞서 열거한 대부분의 암각화가 주변에 또 다른 암각화를 갖고 있고, 선사인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흔적을 남긴 점은 간과할 문제가 아니다. 6,000년 전의 한반도는 지금과 다른 환경을 가졌을 가능성이 크다. 반구대암각화가 위치한 대곡리 인근까지 해안선이 올라와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과 주변의 토기 제작 흔적을 미루어 볼 때, 집단적인 선사주거지역이 형성됐을 가능성이 높다.

# 해양문화·북방문화의 절묘한 교차지점
개운포 인근 세죽마을에서 6,000년 전 선사인의 생활도구들이 패총과 함께 발견된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세죽마을과 대곡리가 해안선으로 연결됐고, 이들이 6,000년 전 이 땅의 주인이었다면 그 흔적은 반구대암각화나 패총 말고도 더 많은 것을 남겼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우리 선조들의 한무리는 시베리아 바이칼 지역에서 출발했고, 또 다른 무리는 폴리네시안 계열의 남방 해양 쪽에서 유입됐다는 이야기는 가설의 수준을 넘어선 사실이다. 많은 학자가 시베리아에서 샤먼(무당)에 대한 많은 자료를 조사하고 우리 민족과의 유사성을 찾기 위한 연구를 하는 만큼 남방지역의 문화적 유전인자를 찾아가는 작업도 병행돼야 한다.

 시베리아 시스키스키 암각화에서 발견되는 육상동물의 모습과 사냥술이 반구대암각화의 원형이라면 고래잡이의 원형은 바다 쪽 어느 지점에서 찾아낼 수 있다고 가설할 수 있다. 바로 반구대암각화가 해양문화와 북방문화의 절묘한 교차점이기에 그렇다.

 바로 그 울산이 선사의 흔적을 벗고 도시화로 가는 과정에는 신라와 화랑이라는 코드가 자리한다. 그 증거가 천전리 각석이다. 역사시대가 시작된 이후 천전리 각석 일대는 새로운 상징성을 띤다.

   
신라시대 화랑 집단 거주지 등 많은 유적·유물이 발굴된 천전리 각석.
 바로 화랑이다. 천전리가 화랑의 계곡이었다는 사실은 대곡댐 건설 당시 대곡리 일대에서 발굴된 화랑의 집단 거주지 등 많은 유적과 유물로 증거된다. 신라에서 화랑의 탄생이 무속적인 전통과 맥을 같이 하고 있기에 천전리는 신성한 땅이자 제의의 장소로서 그들에게 일종의 신성불가침한 '소도'와 같은 기능을 했다.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암각화가 있는 태화강 상류에는 선사시대 때부터 기원의 제의적 제단으로서 암각화가 있던 곳이기 때문에 무속적 제의 목적으로 화랑들이 거주했고 신라왕실의 많은 이들이 이곳을 다녀갔다고 볼 수 있다.

# 광역시 승격 16년째, 새로운 미래 모색해야
대한민국 7대 도시로 성장한 울산광역시(蔚山廣域市). 광역시 울산은 올해로 16년째를 맞이했다. 지난 1997년 7월 15일 울산 시가지 일원과 울주군 지역은 울산이란 이름으로 통합돼, 광역시로 승격했다. 울산 역사에서 일찍이 이렇게 큰 변화는 없었다. 울산이란 도시는 현대에 와서 세계인이 놀랄 정도로 초고속 성장을 했다.

 그런데 광역시 울산은 단일 지역 및 하나의 역사공동체로 이루어진 도시는 아니다. 여러 지역과 갈래들이 모여 지금의 광역시를 구성하게 됐다. 울산이 앞으로 더 조화롭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런 갈래에 대해 좀 더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각 지역과 주민들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고려한 위에서 행정을 펼친다면, 더 나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올해는 울산이란 지명이 고을 이름에 사용된 지 600년이 되는 해이다. 울산시는 이를 기념하는 다양한 사업을 펼쳤다. 이를 통해 울산 지명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다양하게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울산 정명 600년을 통해 울산의 장구한 역사성을 돌아보고 앞으로 울산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를 생각하는 좌표가 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김진영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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