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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은 지역적 독창성이 있는 등궐살이 풍속이 있다. 권상일 등이 편찬한 울산의 최초읍지 학성지(1749년) 풍속조 매귀악 부분에 기록으로 전한다.

 매귀악 부분에는 크게 3가지의 풍속을 소개하고 있다. 하나는 매년 섣달에 하는 '매귀익히기(煤鬼習)', 다른 하나는 정월보름에 하는 '지신밟기(踏地神)', 나머지 하나도 정월보름 포시부터 연행되는 '등궐살이(騰厥殺)'이다.

 이들 3가지 풍속은 매귀악부분에 함께 기록되었기 때문에 언듯보면 같은 것으로 볼수있으나 자세히 분석해보면 각각을 설명하고 있다.

 매귀익히기는 매년 섣달에 마을의 나이 어린 놀이패에게 징과 북을 사용해 매귀를 익히기 위한 것이다. 지신밟기는 정월 보름에 행해지며 특징은 큰 종이깃발과 기두가면의 등장이다. 새해를 맞은 첫보름에 가정의 무사안녕을 빌기 위한 행사이다. 특히 기두의 등장은 삿된 것을 물리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현행 지신밟기에 등장하는 포수의 역할로 볼 수 있다. 등궐살이는 정월 보름에 사방이 통하는 장소에서 행해진다. 매귀악의 다른 이름을 등궐살이라 한다.

 이상의 매귀익히기, 지신밟기, 등궐살이 등 3가지 중 매귀익히기는 섣달에 행해지기 때문에 문제가 없으나 지신밟기와 등궐살이는 일관적으로 정리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학성지에 연희방법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 후학들은 지신밟기와 등궐살이를 등식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셋째, 등광궐아괘보살이라는 일곱 글자의 해석이 깔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매귀악의 가사 등광궐아괘보살을 나무 등걸로 보는 견해이다. 이러한 문제를 전제하고 접근해본다.

 첫째, 지신밟기에서 매귀악으로 명칭 전환이다. 정월보름 낮에는 지신밟기를 연행하다가 포시 무렵부터는 매귀악 혹은 등궐살이로 명칭이 바뀐다.

 둘째, 의미의 변환이다. 지신밟기가 마을과 가정의 한해 무사안녕을 빈다면, 매귀악인 등궐살이는 등광보살을 칭명, 찬탄하는 의미 변환이다. 지신밟기의 목적이 가정의 벽사진경에서 등궐살이는 온 세상의 무명을 밝히는 것이다.

 셋째, 장소의 이동이다. 지신밟기가 각각 집의 마당에서 행해지는 반면 등궐살이는 사방이 통하는 큰 장소를 선택한다. 이는 사목을 태우는 것이기에 보다 넓고 안전한 장소를 택하는 이유이다.

 넷째, 지신밟기 이동 형이며 등궐살이는 정주 형이다. 지신밟기는 기두가면을 쓰고 집을 찾아다니며 마당에서 연희하므로 이동 형 연희에 비해 등궐살이는 사목을 태우기 때문에 비교적 넓은 공간이면서 안전한 공간을 선택하게 된다.

 다섯째, 등궐살이는 달집살이의 고전 형이다. 등궐살이는 사방이 통하는 공간에서 사목을 태워가면서 연희한다. 현행 달집살이 역시 논경지의 중심이나, 강변, 백사장 등 비교적 화재의 염려가 없는 넓은 공간을 선택하고 있다.

 여섯째, 등광궐아괘보살은 중국식 명칭이다. 불교의례에는 부처의 이름을 부르는 칭명(稱名)이 있다. 이는 불교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등광궐아괘보살은 중국식 명칭이다. 등광궐아괘보살에서 궐아는 등광이라는 사람을 의미하며, 괘(掛)는 대(大)의 오식으로 생각된다. 궐아를 빼고 괘 대신 대를 바꾸면 등광대보살이된다. 등궐살이는 등광궐살이에서 광이 생략된 형태이다. 이는 가난한 여인이 부처의 방문을 위해 등불을 밝힌 공덕에서 부처로부터 등광이라는 이름과 훗날 보살이될것이라는 수기를 받는 불교설화다.

 일곱째, 신라시대 학성의 독창적 문화이다. 신라시대 울산은 서축인 인도와 상반되는 동축이다. 현존의 동축사에서도 확인된다. 유독 울산에 태화사, 망해사, 영축사, 문수암 등 사찰이 많은 이유와 울산 세시풍속에 불교가 바탕되어있는것도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관점에서 등궐살이의 지역적 독창성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등궐살이에 등장하는 등광궐아괘보살이라는 일곱 글자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행연구의 답습에서 벗어나 설득력 있는 재해석이 있어야 한다. 학성지 기록자는 등광궐아괘보살이라는 일곱자를 이해하지못한 상황에서 기록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등궐살이라고도 하는데 방언에서 사목을 등궐이라고 부르고, 태우는 것을 사른다고 하므로 지경 안에서는 모두 그러하다"라는 기록에서 확인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말이라는 의미인 리언(俚言)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후대의 관심자는 깊은 연구와 분석보다는 땔감인 사목의 등걸에 천착하여 까둥구리를 태우는 것으로 생각했다.

 또한 리언을 일반적으로 적용하는 상말 혹은 속된 말 등에만 천착하여 '연희자의 말' 혹은 '연행자 그들의 말' 등을 빠뜨린 것으로 볼 수 있다.

 리언을 세속적인 말, 민중의 말, 방언, 놀이자 그들의 말 등으로 해석해도 될 것을 구태여 '속되게 꾸짖는 말' 혹은 '상말'로 해석한 것은 기록자와 더불어 해석자가 뒤에 오는 '등광궐아괘보살'의 본질에 대한 충분한 이해의 부족에서오는 결과이다. 이미 속되게 꾸짖는 말 혹은 상말 등 부정적 관점에서 풀이하면 등광궐아괘보살의 일곱자는 비합리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중국 소주(蘇州)지방에서 리(俚)는 방언으로 '그' 혹은 '그들' 등의 용법으로 나타난다. 기록자가 쉽게 이해되지 않는 연희자 그들의 말이 리언인 것이다. 참고하여 등광궐아괘보살에 대한 기존해석과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리의 용법은 상황에 따라 적용이 달라야한다. 본질을 알면 설득력있는 현상을 구성할수 있기 때문에 본질규명에 충실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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