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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은 유독 정치적으로 2인자를 많이 배출한 곳이다. 장면 총리시절의 민주당 정부에서는 울주군 언양 출신의 오위영 전 무임소장관, YS정부 때는 최형우 전 내무부장관, 그리고 제3공화국의 박정희 대통령 때는 이후락 전 대통령 비서실장(정보부장)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마침 이후락 비서실장과 권력의 무게를 놓고 자웅을 겨루듯 늘 샅바싸움을 벌이던 김종필 전 총리가 국회를 찾아가 그를 위한 정치인들의 모임에서 행한 연설을 TV로 시청하면서 새삼 그분들의 행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권력이란 최고 통치자로부터 얼마나 가까이 서느냐에 따라서 결정되어지는 것이다. 이후락 비서실장과 김종필 전 총리는 박정희 대통령과의 지근거리에 서기위한 숙명적인 라이벌 관계에 있었다. 10·26 사건 즉 대통령이 김재규에게 시해를 당할 때 HR(이후락의 애칭)은 이미 대통령 가까이 가지 못하는 처지에 있었다.

 실권을 당하고만 상태였다. 권력의 무상을 느끼며 전국의 이름난 절을 찾거나 온천지를 찾아 휴식을 취한 다음 탯자리인 울주군 웅촌면 석천리의 고향 마을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그는 절친한 친구 사이였던 전 울산 MBC 사장인 정택락과 망중한으로 바둑을 두고 있었다. 정 사장의 부름을 받고 웅촌으로 달려간 필자가 문을 막 열고 들어섰을 때 HR은 신현확 부총리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두 분은 잠시 귓속말을 나누고는 정 사장의 차로 서울로 가면서도 끝내 그 이유를 말하지 않고 부랴부랴 떠나는 것이었다.

 몹시 상기된 얼굴 표정인 것으로 보아 나는 무슨 큰 일이 생겼나 보다 했는데  큰 일이 생기고 말았다. 훗날 HR이 울산에서 밤늦은 시간에 그 때 서울에 갔던 일을 말해 주었다. HR이 대통령의 시신을 확인하고 나오다가 저만큼에서 JP가 차에 오르는 것을 보고는 뛰어가서 무작정 차에 올라타 버렸다.

 "뒷좌석에 나란히 앉은 내가 JP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지, 여보 이제 우리 지난 일들은 다 잊고 힘을 모읍시다고 말했지. 그러나 JP는 묵묵부답이었고 애써 외면해버리더란 말이야" HR은 그 말을 해놓고 잠시 말을 하지 않았고 입술을 떨며 천정을 보는 것이었다.

 만약 두 사람이 그 때 힘을 합했다면 역사는 또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일이다. JP와 HR은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함으로서 경쟁도 라이벌 의식도 모두 놓게 되었다. 한사람은 벌써 떠나고 없지만 JP는 노 정객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엊그제 국회에서 행한 연설은 가희 감동적이었다. 과연 노 정객다운 심중에 품었던 말을 국민들의 가슴으로 이식해 주었다.

 "내일 모레면 내 나이가 90이 되는데 지금 그 때를 돌아보면 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후회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살아서 오늘의 경제발전상을 보신다면 엉엉 소리 내어 우실 것이다." 여당이나 야당, 어느 당이라도 좋다. 정치인들이라면 길을 열고 이 소리를 음미해 주었으면 한다.

 영면의 길로 든 넬슨 만델라의 영결식장에 모인 지구촌의 그의 모든 정상들의 머리위로 화해와 용서의 비가 쏟아졌다고 하듯이 만델라의 삶처럼 정치를 할 수는 없을까. 인간은 신이 아닌 인간 그 자체이기 때문에 지나고 나면 후회할 일을 저지르게 된다.

 후회, 그것을 깨닫고 이젠 그러지 말아야지 할 때는 이미 늦어버린 때인 것이다. 이제 국민들은 알고 있다. 툭하면 거리를 메우고 앉아서 국민들을 내세우면서 정치적인 구호를 외치는 것이 지겹기만 하다.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국민들은 그것을 보고 표를 찍을 것이다. 이제는 여당도 야당도 모두가 통 큰 정치를 할 때이다. 우는 아이에게는 젖이 필요하다. 정권을 잡은 여당도 우는 아이를 두고 매를 들기 보다는 쓰다듬고 어루만지는 아량을 베풀어 주는 것도 명약이 될 법 하다.

 그런 다음 야당이 보이는 모습을 국민들이 한번 지켜볼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우리가 헤쳐 나가야 할 일은 앞이 안보일 정도로 막막하기만 하다. 과거를 뉘우치는 노 정객의 말이 지금에 와서 사자후(獅子吼)처럼 들리듯이 오늘의 정치인들은 훗날에 이르면 분명 후회스러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 그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후손들에게 손가락질 받을 일을 만들지 말자. 그것이 새 시대를 맞은 우리가 가져야 할 절체절명의 도리인 것 같다.

 노 정객은 말했다. 먹고 사는 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자유도 민주주의도 얻지 못한다고…. 정쟁으로 인하여 창조 경제호가 경적만 울리면서 바퀴를 굴리지 못하고 있었다. 또 한 번 태화강의 기적이 산업 도시 울산에서 일어나 제2 한강의 기적으로 이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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