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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가 문화재단을 만들려는 실천의지가 있었다면 벌써 만들고도 한참은 지났을 것이다. 세월만 그냥 흘러보냈다는 말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울산광역시가 전혀 생각도 못한 종잣돈이 생기고도 10년하고도 그 절반을 더 넘겼는데도 문화재단을 만들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을 뿐, 아예 실천은 하지 않고 있으니 정녕 딱한 노릇이다. 

 전국 16개 광역단체 중에 경기도가 최초로 1997년에 문화재단을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서울과 인천, 부산 등 12곳이 문화재단을 갖고 있다. 심지어 재정상태가 열악한 강원도는 광역단체 중에 두 번째로 서울보다 이른 1999년에, 제주도 역시 서울보다 4년 앞선 2000년에 문화재단을 만들었다. 울산과 충남, 전북, 경북 등 4곳만 없다.

 울산의 문화재단은 당초 계획대로라면 10년 전 쯤에 설립됐으리라. 울산이 광역시로 승격한 다음해 1998년 초가을에 뜻밖의 종잣돈이 울산광역시에 들어왔다. 문화재단 설립이 가시화됐다. 그 종잣돈을 밑천으로 울산광역시가 출연하는 돈과 기업과 독지가들이 기탁하는 돈을 모아 수 년 안에 일정액의 기금을 확보한다면 문화재단이 설립될 수 있었다. 

 종잣돈이 생긴 전말은 이렇다. 당시 예총 회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반인으로서는 유일하게 현장을 지켜봤다. '98년 초가을 어느 날 시장 비서실에서 전화가 왔다. 시장실에 급히 와달라는 연락이었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 감사인 최해조씨가 문화재단의 종잣돈을 전달하기 위해 찾아와 있었다. 종잣돈 6억9천여만원을 내놓았다. 최씨는 빠른 시일에 문화재단이 설립되기를 바란다는 덕담까지 했다.' 

 당시 문예진흥원이 지자체의 문화재단 종잣돈을 내놓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종잣돈이 전달된 것은 순전히 최씨 덕분이었다. 울주군 두동이 고향인 최씨는 1998년 4월 1일 3년 임기의 문예진흥원 감사로 취임한 뒤, 울산에 문화재단이 없는 것을 알고는 어렵게 종잣돈을 마련하여 전달한 것이었다. 울산광역시는 예상하지도 않은 거액이었다.

 당시 시장은 종잣돈이 마련된 것에 고무돼 문화재단 설립에 대한 청사진을 발표했다. 울산광역시의 일반회계에서 해마다 일정액을 출연하고, 기업과 독지가를 초청하여 문화재단의 필요성과 취지를 설명한 뒤 기금을 모으겠다고 했다. 목표연도는 특정하지 않았지만, 수 년 안에 설립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밝혔다. 황량한 문화토양에 허덕이던 문화예술계는 물론 울산시민에게도 반가운 일이었다.

 그러나 문화재단을 만들겠다는 달콤한 말만 난무했다. 실천의지가 전혀 없었다. 다음해 1999년 예산편성에 문화재단 설립을 위한 출연기금이 한 푼도 반영되지 않았다. 그 다음해도 그랬고, 또 그 다음해 역시 그랬다. 그러고도 울산광역시의 신년 계획이나 현안 발표 때에는 항상 문화재단을 설립하겠다는 말 뿐인 약속은 빠지지 않았다. 

 울산광역시에 종잣돈이 생긴 1998년 당시 광역단체 중에 문화재단을 갖춘 곳이라야 경기도 한 곳 밖에 없었고, 다음해에 강원도가 만들었다. 나머지 열 곳은 2000년대 들어 설립했다. 울산도 남 다른 향토애로 어렵게 종잣돈을 마련해 전달한 최해조씨의 그 숭고한 뜻을 생각했더라면 온힘을 기울여 진작에 문화재단을 설립해서야 했다. 

 후임 시장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시장직에 선출된 2002년부터 선거공약에서 문화재단 설립을 약속하고는 지금껏 실천하지 않고 있다. 2년 전에는 연간 2-3%의 이자수익으로는 운영에 애로가 많으므로 최소한 500억 이상의 기금을 확보해야 한다면서 문화재단 설립을 장기과제로 꼽았다. 종잣돈이 생긴 이후 15년을 허송세월한 변명치고는 궁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산업수도로서 1인당 지역총생산(GRDP)이 전국 평균의 2.2배에 달하는 5,400여만원으로 압도적인 전국 1위라고 자랑했다. 그런들 무엇하랴. 문화수준은 빈약하다. 지난 6월에 조사·발표된 문화지수는 0.13을 기록해 전국 7대 도시 중에 하위권이다. 문화시설 또한 26곳으로 턱없이 부족하다. 다른 곳은 갖추고 있는 등록미술관은 아예 없다.

 울산보다 경제력이 한참은 뒤지는 강원도와 제주도가 오래 전에 문화재단을 설립한 것은 돈이 충분히 있어서가 아니라, 지역의 자생적인 문화에 깊은 애정을 가진 단체장의 강력한 실천의지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울산문화재단의 조속한 탄생을 기대할 수는 없는가. 15년 전의 종잣돈을 언제까지 썩힐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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