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베의 역주행에 국제사회가 브레이크를 걸고 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불편하다. 불편한 이웃이지만 언제나 얼굴을 맞대고 살 수밖에 없는 것 또한 불쾌하다. 바로 비열한 지도자들 때문이다. 일본의 우익 지도자들은 도요토미부터 아베에 이르는 장구한 계보를 가졌다. 하긴 도요토미 역시 삼국시대 이전부터 대륙의 시작점인 한반도 해안을 분탕질해온 유전인자를 가졌으니 그 계보의 역사는 수천년이다. 하지만 불편하고 불쾌한 일본이라는 나라는 우리에게 늘 미묘한 이중성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대중문화의 카피가 그렇다. 일본을 비난하고 일본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면서도 일본의 삼류문화를 언제나 제일먼저 수입하는 쪽은 우리다. 하기야 일본 역시 한류라는 이름으로 우리 대중문화를 우상화하는 매니아들이 있으니 이 또한 두나라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일본은 대중문화가 우리보다 뛰어나게 발달한 나라다. 접할 수 있는 미디어의 말초적 즐거움이 많다. 책, 가요, 비디오, 텔레비전, 잡지, 만화에서 발군의 나라가 일본이다. 대중문화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일본의 모든 시스템은 편리하고 철저하다. 도둑이나 치한, 강도가 설칠 수 없게 조직된 사회가 일본이다. 당연히 치안 1위의 나라로 불린다. 1인당 GNP가 미국을 넘어선 경제대국이기도 하다. 환경문제에 성공한 점도 부러움을 느끼는 것 중의 하나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굉장한 나라인 것 처럼 보이지만, 여기에 맹점이 있다. 일본은 이미 모든 것이 완벽한 사회이다. 한 마디로 구멍도 없고 기회도 없다. 이미 사회가 완벽하게 모든면에서 구축된 만큼 철저한 선배사회다. 그런 일본이 위기감을 느낀 것은 지난 10년간의 경제침체를 겪고 나서였다. 10년 동안 가라앉은 배를 다시 띄워 올린 것이 아베다. 아베는 말초신경부터 골수까지 우익의 피가 흐르는 사무라이의 후예다. 그 아베가 국제적 비난의 중심에 스스로 섰다. 지난 26일 아침 아베 신조는 연미복을 차려 입고 최고급 은빛 실크 넥타이를 맨채 야스쿠니를 찾았다.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에 자신이 들어서는 순간 어떤 결과가 올 것인지는 너무나 잘 아는 그였다. 현직 총리로서는 7년 만의 참배였지만 파장은 7년 이상의 파괴력을 가졌다.  수년전 첫 총리가 됐을 때 아베는 야스쿠니 참배를 저울질 하다 결국 뜻을 접었다. 그 당시 아베의 야스쿠니 참배 철회를 두고 우익의 후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본의 우익은 곰팡이 같다. 햇살이 강렬하면 곰팡이는 음지로 기어들기 마련이듯 아베 내각도 음습한 시대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7년 후 전격적으로 야스쿠니에 섰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태도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소다. 메이지유신 직후인 1869년 일왕에 의해 '호국의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건립된 야스쿠니는 다른 신사와 차별성을 가졌다. 특히 2차대전 당시에는 전몰자를 호국의 영령으로 제사하고, 여기에 일왕의 참배라는 특별한 대우를 해줌으로써 일본인에게 왕의 신격화를 고양하는 역할을 했다. 자신들의 왕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혼은 출신이나 과거사를 묻지 않고 신격화 하는 야스쿠니는 말 그대로 일반인이 신으로 둔갑하는 변신의 통로였다. 2차대전 당시 일본의 젊은이들은 '야스쿠니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전쟁터로 떠났을 만큼 모든 가치의 기준을 왕에 대한 충성도로 정의했고 그것이 전쟁이라는 광란의 시대와 결합해 왕을 위해 죽는 것이 영광이라는 새로운 도덕관을 만들었다.

 한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일본과의 과거사 논쟁은 역사학의 논쟁 수준이 아니라 외교의 중심이다. 문제가 될 때마다 일본은 곰팡이 같은 생존법칙으로 위기를 관리해 왔다. 일본의 우익들이 주장하듯 주변국에서 자신들의 조상을 추모하는 공간을 만들어 참배를 하는 데 왜 간섭이냐는 식의 논리는 막가자는 식이다. 문제는 국제사회의 비난이나 한국과 중국의 단호한 대응이 아니다. 국제사회는 이미 자본의 논리가 완전무장한 질서다. 그 질서 속에 일본은 힘을 가졌다. 2차대전 이후 패전의 멍자국을 지우고 국제 사회의 중심이 되기 위해 온몸으로  재기에 나선 일본이기에 스스로 국제관계에서 어떤 전략과 전술을 구사해야할 지를 잘 알고 있다. 비난 성명을 내고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한국과 중국은 이미 안중에 없다. 미국 역시 잠깐 화를 내더라도 깍듯한 90도 절 몇차례면 풀릴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다. 유럽 쪽에서는 또다시 전후 독일의 예를 들며 브란트식 사죄를 이야기하겠지만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혹자는 일본도 브란트 같은 총리가 나와 역사 앞에 석고대죄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교활함이 유전인자로 흐르는 일본의 지도자들은 스스로 석고대죄 하는 법을 모르는 족속이다. 더구나 국제사회는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나 빨리 일본의 과거를 덮어준다. 바로 그 국제사회의 힘의 논리를 알기에 아베는 연미복을 장롱 속에서 꺼냈을지 모른다. 경건하게 당당하게 플래시를 받으며 참배를 마친 아베가 돌아가는 승용차 안에서 아마도 소리없이 웃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그래서 가능하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