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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카드가 많이 붙어있는 도시는 혼란스럽다고 어느 여류작가가 쓴 글이 있었다. 사실이 그렇다. 플래카드는 대게 광고성을 띄지만 광고성 보다 주의·주장을 쓴 것도 있고 특히 선거철에 나붙는 특정 정당의 구호도 있어 혼란스러울 때가 더러 있긴 하다. 그러나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이 효과적이어서 그런 곳에다 붙이거나 매달아 놓는 중에도 유달리 보게 만드는 것도 있다. 요즘 울산광역시 교육청 앞에는 유심히 보게 되는 플래카드 하나가 나붙어 있다.

 거기에는 "울산교육 학력평가 전국 1위" 라고 쓴 글이 쓰여 있다. 노상 걱정스러움을 떨쳐버리지 못하던 울산의 교육이 전국의 학력평가에서 으뜸상을 차지했다. 이건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반가운 일이다. 교육부는 학생들의 학력증진을 위해 매년 전국을 대상으로 엄중하고 철저한 방법으로 평가고사를 치르게 하는 행사를 열고 있다. 교육부와 전국 교육과정평가원등 관계기관이 함께 실시하는 이 행사는 특별히 우수한 한 학생을 뽑는 경진대회가 아니라 전체의 학생이 전년에 비해 어느 정도나 학력이 증진되었나를 평가 하는 것이 특징이어서 더욱 관심을 갖게 되는 행사이다. 2013년 6월에 중3년생과 고2년생을 대상으로 시험을 치르게 하고 작년 11월 29일에 교육부가 발표한 평가에서 울산이 전국 1위를 차지한 것이다.

 돌아보면 울산의 교육은 그 동안 희비로 점철된 굴곡의 연속이었다. 공업센터가 선포될 즈음에 울산에는 인문계 고교도, 대학도 없었다. 공장을 세우는 일도 중요하지만 학교가 먼저 서야한다고 시민들의 열화같은 요청이 아우성으로 쏟아져 나왔다. 사실 공장의 우수한 엔지니어나 유능한 공무원들은 거의가 울산시에서의 근무를 기피하게 되었고 그 결과 울산아가씨도 이름을 떨쳤지만 기러기 아빠, 즉 울산 총각들이 거의 모두라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였다. 그것은 교육 때문이었다. 마땅한 학교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위해 울산출신의 실력자인 이후락 대통령비서실장은 고향을 위해서는 교육여건을 다듬어 놓는 것이 우선이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 실장은 현대그룹의 정주영 창업주의 도움으로 대학을 세웠고 10여개교에 가까운 고등학교를 세웠다. 어떻게보면 울산은 정주영 회장 같은 기업인을 만나게 된 것이 축복이 아닐수 없었다. 이 실장은 다시 이 학교들의 효율적인 관리와 교육발전을 위하여 울산육영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까지의 공립교육에 길들여진 학교관계자들과 시민들은 갑자기 들어선 사립학교간의 알력 같은 것이 생기고 실력자를 핑계로 부당한 방법으로 공립학교의 권익을 잠식하려는 육영회 측에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여론을 감지한 이 실장이 어느날 대통령의 공업단지 시찰을 맞춰 울산의 교육환경을 제대로 살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는 울산 언양간의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공단으로 향하게 되었던 차를 울산대학으로 돌리도록했다.

 대통령은 젊고 유능한 이 관 초대 학장이 학교를 바로잡기 위해 안쓰러울 정도로 애쓰고 있다는 이실장의 건의에 따랐다. 대통령은 불시에 울산대학에 들러 한 시간이 넘도록 이 관 학장과 단독 면담을 하면서 건의사항을 듣게 되었다. 그 단과대학인 울산공과대학이 부친의 유지를 이어받은 정몽준 재단 이사장에 의해 이제는 명문 사학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대학을 제외한 중등교육을 육성하기 위해 만든 육영회가 문제가 되었다. 이를 감지한 이 실장이 울산으로 내려와 실제 상황을 살피게 되었다. 지방의 유지들을 불러 모아 의견을 물어보았지만 어느 누구도 이 실장에게 제대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기자들을 불러 모았다. 실력자라도 워낙 큰 실력자여서 기자들도 선뜻 실상을 고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 때 현재 울산신문 사장으로 있는 조희태 기자 번쩍 손을 들었다. 조 사장은 당시 k신보 기자였다.
 "말해보쇼!"
 "예, 사실 육영회가 교육을 육성 하는게 아니라 울산의 교육을 망치고 있습니다."
 그때로서는 가히 폭탄적인 발언이었고 용감한 행동이었다.
 자신의 큰 업적으로 여기고 있는 육영사업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그 발언에 놀라는 빛이 역력했다. 누구도 바르게 직언해주는 사람이 없었던 말을 듣게 된 이 실장이 조희태 기자를 따로 불러 장시간 진지한 마음으로 경청하게 되었고 그 직언들은 이튿날 즉시 시정이 되게 하는 조치를 취하게 되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용단을 내려야 했던 일을 교사출신인 기자가 그 말많던 시민들과 교육계의 당면사항을 거뜬히 해결해 버리는 것이었다. 아무튼 육영회도 그렇게 꾸중을 들을 일만 한게 아니였다. 오늘의 교육에 벽돌을 쌓는 일에 큰 힘을 보태게 되었고 울산교육이 성장할 때 까지 큰 역활을 했던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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