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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우리의 설날 연휴 첫날 찬물을 끼얹었다. 독도 영유권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단독 제소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노다 총리에 이어 두 번째다. 노다의 경우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에 열받은 측면이 있지만 이번 제소 방침은 치밀한 계산이 까린 아베의 우경화 행보의 한 과정이다. 우리 정부가 아베의 발언에 대해 "무의미한 짓"이라고 일축하며 밝혔듯, 독도는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우리 고유의 영토로서 그 영유권을 ICJ에서 다투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또 일본의 일방적 제소만으로는 ICJ에서 재판이 성립할 수 없다. 그런데도 아베는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과 프랑스에서는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여론전이 전개되고 있다. 동해에 대한 지도의 표기 문제를 두고 우리쪽에 손을 들어준 미국 버지니아주 의회에 대해 일본이 집요하게 방해공작을 전개한 증좌가 드러났다. 주미일본대사는 동해병기법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대형로펌과 거액의 용역계약을 맺고 각계각층을 상대로 광범위한 조직적 로비를 벌여왔다고 한다. 외국 공관이 주재국 지방자치단체의 특정 입법 활동을 저지할 목적으로 노골적인 정치적 개입행위에 나선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어서 외교적으로 상당한 파장이 예상되지만 일본은 안하무인이다.

 또 하나의 사례는 프랑스 남서부의 앙굴렘시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만화페스티벌이다. 이 곳에서 전시되고 있는 위안부 기획물 '지지않는 꽃'이 일본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세계인들의 공감과 지지를 얻고 있다고 한다. 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을 맞아 전쟁의 참상을 주제로 '지지않는 꽃'이란 제목으로 열리고 있는 이번 기획전에는 우리 작가들의 위안부 만화 20여 편이 전시됐다. 일본의 언론과 우익 정치인들이 이번 기획전을 두고 전시철회나 반대 기획물 전시를 추진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자 이제는 비난으로 침을 뱉고 있다. 하지만 행사의 주최측은 일본의 계속되는 방해에도 불구하고 조직위와 관람객들은 위안부 문제가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여성 인권과 역사의 문제라며 일본의 유감 표명을 응대했다.

 일본은 유독 위안부 문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과거사 발언 가운데 위안부 문제만 모으면 한권의 책이 될 정도로 일본 정치인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위안부 문제를 꼭꼭 숨기고 있다. 가능한 들키지 않게 어쩌다 들키면 결코 인정하지 않는 전략이 전후 70년 가까이 반복하고 있는 일본의 과거사 숨기기다. 전쟁의 역사나 침략 본능은 광기의 역사가 덮어줄 수 있다고 믿기에 간간히 유감이나 말장난식 사과로 체면을 구기면 그뿐이라고 생각하는 쪽이 일본이다. 하지만 위안부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위안부를 인정하고 이들 앞에서 무릎을 꿇는 순간, 교과서나 독도, 심지어 센카쿠 열도까지 떠벌려 왔던 모든 과거가 치욕으로 돌아온다고 인식하고 있다. 모든 전쟁에는 위안부가 있었고 2차대전 과정에서 존재했던 위안부 역시 그 오래된 역사의 한 장면일 뿐이라는 몰염치가 일본의 정치인들에게는 또다른 위안이다. 가능한 그 오래된 위안부의 역사를 보편화시켜 자신들의 과거사를 덮어버리려는 발언은 그래서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위안부에 대한 왜곡과 뻔뻔한 발언을 일삼는 일본인들에게 부끄러움을 찾아볼 수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위안부를 모집하지 않았고 강제연행하지 않았다는 두가지 거짓을 옹골차게 쥐고 있으면 어떤 비난도 피해갈 수 있다는 믿음이 깔린 듯하다. 어쩌면 몇 남지 않은 위안부의 산 증인들이 임종의 순간을 맞을 때까지 버티면 된다는 계산도 깔려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덮는다고 사라지는 것은 역사가 아니다. 인간사에서 덮어주는 행위로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것은 용서뿐이다. 일본에 대한 세계인들의 태도는 놀라울 정도로 우호적이다. 일본의 문화와 일본인의 태도, 일본의 자연과 일본인이 만든 제품에 대해 세계인들은 대체로 우호적이고 친밀감을 느낀다. 과거 일본이 잔혹한 전쟁범죄를 주도했고 학살과 만행을 일삼았다는 인식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한 우호적인 여론이 일본을 교만하게 만들었다. 오직 자신들을 괴롭히는 것은 생생한 증거가 널려 있는 이웃 국가들 뿐이다. 그렇다보니 일본에게 위안부는 눈엣가시다. 가능한 과거사를 덮고 일등 국가로 나아가려는 일본에게 살아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과 그 생생한 증좌는 치우고 지나가고 싶은 과거다. 그래서 그들은 부인한다. 손사래를 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말간 얼굴로 뜬금없는 일이라는 표정을 지어보인다. 바로 그 중심에 아베가 있다. 아베가 지금 취하고 있는 정치적 행위를 뜯어보면 그의 외조부 시대, 일장기가 태평양 곳곳에 펄럭이던 화려한 과거로의 자맥질과 다름 아니다. 어린 아베가 청년 아베에서 지도자로 변모할 때마다 그 자맥질은 도를 넘고 있다. 피로 얼룩진 가문의 유전인자가 매일 새로운 만행으로 세포분열을 거듭하는 것처럼 아베는 매일 새로운 만행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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