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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전래동화에 따르면 원래 이야기는 하늘의 신 니얌의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거미인간 아난시가 니얌이 요구하는 네 가지, 그러니까 비단뱀 오니니, 표범 오제보, 말벌 모보로, 요정 모아티아를 구해다주고 대신 이야기를 얻어 내려왔다고 한다.

 아난시가 '이야기'를 가져다 인간에게 전해준 이야기는 인간에게 불을 구해다준 프로메테우스를 떠올리게 한다. 프로메테우스의 불이 인간의 이성과 계몽, 논리, 문명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아난시의 이야기는 감성과 본능, 재미와 여유를 상징한다 하겠다. 아난시는 신이 원하는 것을 가져다주었지만, 그것을 구하는 방법은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 이상의 속임수와 지혜가 동원된다.

    비단뱀은 몸통의 길이를 잰다는 구실로 길게 눕힌 다음 재빨리 묶어버리고, 표범에게는 '묶고 풀기 놀이'란 걸 제안하여 꽁꽁 묶은 다음 풀어주지 않고, 말벌에게는 벌집 앞에 단지를 준비해두고 물을 뿌리면서 비가 내려 벌집이 무너진다고 속여 벌을 단지 안에 가둔다. 요정을 잡을 때는 좋아하는 음식을 두고 덫을 놓는다. 대단한 임기응변의 재주다.

 프로메테우스의 행동은 제우스의 분노를 가져와 바위에 묶이게 되는 벌을 받는다. 과학과 문명의 발달에는 대가가 따른다. 자기를 희생하는 비장미, 운명을 어쩌지 못하는 비극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반면 아난시의 이야기는 즐겁고 유쾌하다. 긍정의 에너지가 넘친다. 아난시는 우리나라의 봉이 김선달처럼 꾀주머니에 지혜덩어리이다. 더구나 이야기를 거미인간 아난시가 전해주었다는 것은 이야기의 속성과 잘 어울리는 그럴듯한 설정이다. 거미가 거미줄을 짜는 것을 인간이 이야기를 짓는 것에 빗댄 것이다.

 그리스로마신화에선 베를 잘 짜는 아라크네가 아테네 여신에게 도전을 했다가 벌을 받아 거미로 변했다고 한다. 베를 짜는 실은 인간의 운명이나 수명을 상징한다. 운명의 세 여신 모이라도 베 짜는 여인들로 나온다. 세 여신 가운데 하나인 아트로포스가 가위를 들어 실을 자를 때 한 인간의 일생과 그에 대한 이야기도 끝이 나고 만다.

 하지만 끊임없이 뽑아져 나오는 거미줄처럼, 둘둘 감겼다 풀려나오는 실타래처럼 이야기는 생명이 길다. 이야깃거리가 된 당사자는 사라져도,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고유한 생명력을 지니게 된다. 이야기를 듣고 주머니에 넣어두기만 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않자, 주머니 속 이야기들이 복수를 꾀한다는 우리나라 전래동화 <이야기 주머니>는, 널리 퍼지고 전해져야 생명력을 얻게 되는 이야기의 속성을 잘 보여준다.

 이야기는 프로메테우스의 이성적 세계, 논리적 질서의 세계에서 우리를 한 걸음 쉬어가게 한다. 땀을 흘리며 일을 하다 잠시 정자나무 아래 휴식을 취하는 행동, 그때 불어오는 산들바람. 그것이 이야기이다. 더구나 이야기는 특별히 정해진 규칙이 없다. 판소리의 추임새가 분위기를 띄워주듯, "그래서 어찌 되었는데?" "아, 저런." 하는 감탄과 반응이 이야기꾼을 신명나게 한다. 그러면 기분 좋을 때 얹어주는 덤처럼 한 편의 이야기는 두 편, 세 편으로 늘어나고 내용은 점점 부풀려지고 과장돼 간다. 거기에는 내밀한 정서적 교감이 있다. <천일야화>에서 죽음의 광기를 물리친 것도, <데카메론>에서 페스트의 공포를 이겨낸 것도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에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면 어머니는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고 하셨다. 물론 말씀은 그렇게 해도 결국 못이기는 척 옛날에, 옛날에 하며 이야기 자락을 풀어놓긴 하셨지만. 그런데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는 속설은 이젠 옛말이 되었다. 지금은 이야기가 돈이 되는 세상이다. 이야기가 만화로, 영화로, 애니메이션으로, 게임으로, 광고로, 예능이나 드라마로 몸을 바꾸며 창출하는 경제적 부가가치가 엄청나다. 그러다보니 '콘텐츠'라는 이름으로 경쟁적으로 이야기를 모으고, 발굴하고, 개발하고 있다. 이야기에 자꾸만 프로메테우스적인 경제논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잔잔하게 여운이 남는 이야기보다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이야기의 진정한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여유와 유머, 휴식, 교감이 아닌가 한다. 인간에게 이야기를 선물한 거미인간 아난시. 아난시의 거미줄은 고요한 밤이 지나고 새벽이슬이 영롱하게 걸렸을 때 가장 아름답다. 그리고 이야기는 이야기로 이야기할 때 더 이야기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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