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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치의 깃발을 들었던 안철수가 결국 구정치와 손을 잡았다. 자정이 넘은 시간, 기초공천 문제의 대타협이 이뤄질 줄 알았던 만남에서 안철수는 민주당과의 통합을 선언했다. 물론 형식은 '제3지대'라는 모호한 간판을 걸었지만 깨놓고 말해서 합치자는 이야기다. 대한민국 정치사에 흔하게 등장했던 야합의 역사가 다시 한 획을 그은 셈이다. 혹자는 새 정치를 위한 중대결단이라고 포장 하지만 야합은 야합일 뿐이다. 노태우 시절, DJ가 빠진 3당 합당을 두고 대한민국 우파인사들은 '구국의 결단'이라는 가당찮은 수사를 늘어놓았다. 지금의 '새 정치를 위한 결단'도 비슷한 맥락이다.

뒤통수 긁지 말고 정면으로 이야기 해보자. 안철수가 누구인가. 거의 2년여 동안 색깔과 빛깔은 퇴색과 변색을 반복했지만 대한민국 정치사에 '새 정치 신드롬'을 몰고 온 주인공이 그다. 지난 대선에서 '문철수'라는 비아냥거림을 감수하며 약한 모습을 보인 그가 절치부심 새로운 정당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백신'과 '안철수'를 같은 단어로 인식한 많은 이들은 흥분했다. 물론 6·4지방선거를 가능한 유리한 구도로 몰고 가려는 새누리당이야 '3자 구도'라는 멋진 그림판을 뒷주머니에 감추고 무딘 논평으로 일관했지만 야권의 주도권 다툼 속에서 분열의 '어부지리'를 얻고 싶은 마음이야 숨길수록 드러나는 법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새누리당의 야권 '연대 불가론'은 그렇다 치더라도 윤여준의 등장으로 시작된 야권연대 불가론은 좀 쑥스럽게 됐다. 안철수 역시 이를 의식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연대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런 그가 심야의 야합을 통해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민주당이 변화한다면 그 자체가 새 정치"라는 발언으로 새정치의 방향을 돌렸다. 곪고 썩은 정치를 도려내는 백신이 어느 순간 신종 바이러스로 변신하는 수준이다. 정치는 생물이다. 언제나 변할 수 있고 적과 동지도 이해관계에 따라 바뀌기 마련이다. 그런 정도라면 수긍이 가는 대목이지만 정치의 속성을 부인하고 탄생한 것이 새 정치다. 그냥, 선거는 다가오고 사람은 안모이니 자연산으로는 횟감이 부족해 가두리 양식장으로 들어가기로 했다는 고백이 더 솔직하지 싶다.

이쯤 되면 안철수를 바라보던 많은 이들이 안철수의 실체를 제대로 보게 될 것은 자명하다.  지난해부터 우리 정치는 안철수를 빼고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추상적 수사와 간헐적인 매서운 언어로 무장한 그의 등장은 영락없는 우리 정치판의 백신 출현이었다. 그의 눈에는 지금 정치판을 양분하는 무리들이 하드 디스크의 본체에 잠복해 있다 때가 되면 본체를 잠식하는 좀비이자 웬만한 백신으로는 말끔히 사라지지 않을 악성 바이러스쯤으로 보였다. 그가 아니라 기존 정치에 염증을 느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했기에 '새 정치'와 '백신'과 '안철수'는 이음동의어로 인식됐었다.

문제는 새 정치를 타이틀로 등장한 안철수가 선택한 '제3지대 정치신당'의 내용이다. 어제 선언한 신당 창당이니 섣부른 예단은 위험하지만 우리 정치에서 이만한 움직임은 설계도를 보지 않아도 제품의 모양은 나오는 법이다. 원죄는 야합이다. 어떤 수사를 갖다 붙여도 야합은 야합일 뿐이다. 지방선거를 90여일 앞두고 선택한 창당은 더욱 그렇다. 야합의 원죄를 안고 출발하는 정당은 1차 유통기간이 정해져 있다. 지방선거까지가 딱 그 기간이다. 선거를 위한, 선거에 의한, 선거용 정당의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기에 포장지는 신선하지만 봉지를 뜯는 순간 구린내가 나기 마련이다. 안철수는 봉지 속의 구린내를 없애기 위해 구리고 썩은 내용물을 갈아치우고 싶지만 어차피 들어온 가두리 양식장에선 신선한 해초나 펄떡이는 먹잇감으로 세포분열을 할 도리는 없는 법이다. 단지 던져주는 먹이나 받아 먹고, 갈아주는 환경을 숙명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선택을 해야 하는 국민의 입장에선 오히려 잘된 일이다. 색깔은 선명해 보이는데 빛깔이 모호한 무리들과 비슷비슷한 구린내가 진동하는 좌판을 둘러보며 선택을 고민했던 사람들에게 야합은 판단의 손길을 분명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시장에서의 실제 상거래 효과에 있다. 포장지를 바꾸면 당장은 판매가 올라가기 마련이다. 매일같이 어물전을 뚫어지게 보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야 새로운 포장지에서 퍼져 나오는 신선한 냄새가 내용물의 신선함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가두리 속으로 들어간 안철수지만 그런 얄팍함이 그를 야합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현실적 문제 때문에 스스로를 가두리로 몰아갔다고 바라보는 시선도 많다. 그래서 그가 상품을 만들어 우리에게 내보이는 순간 그 속에 담겨 있는 내용물은 적어도 바이러스가 아닌 백신이 적절하게 혼합해 있기를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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