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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卓球)란 운동은 사계절, 언제 어디서든지 탁구대와 라켓, 탁구공만 있으면 누구라도 손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다. 물론 손쉽게 할 수는 있지만 즐겁고 재미있는 게임을 하려면 다른 운동과 마찬가지로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래서 탁구는 쉬운 것 같지만 막상 자신이 해보면 결코 쉽지 않은 운동이다. 지름 40㎜이며, 무게는 2.7g인 살아서 빠르게 움직이는 탁구공의 매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초등학교 4학년 때 탁구를 처음 보았으니까 필자와 탁구와의 만남은 벌써 40년이 넘었다. 당시 시골에는 특별한 놀이가 없었는데 탁구는 정말 신나는 놀이었다. 탁구는 그렇게 운동이라기보다는 놀이로 다가왔다.
 고등학교 때는 친구들을 만나면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한다는 것은 기껏해야 탁구장에 가서 탁구를 치고 나서 분식점에 가서 찐빵이나 만두를 먹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당시에 할 수 있는 구기운동은 축구와 탁구가 대부분이었다.
 

 탁구의 기원과 발상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한다. 다만 근대 탁구의 시작은 1898년 쇠가죽으로 만든 라켓을 셀룰로이드 공을 사용하면서 새롭게 출발했는데, 쇠가죽으로 만든 라켓으로 공을 치면 핑퐁 소리가 난다고 해서 핑퐁(Ping-Pong)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탁구가 언제, 어디서, 어떤 경로로 도입되었는지 문헌상으로 정확하게 기록된 것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대한탁구협회에서는 1924년 1월 경성일일신문사에서 주최했던 '핑퐁경기대회'를 탁구대회의 효시로 보고 있어 1900년 초에 이미 탁구가 들어왔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국제탁구대회의 첫 출전은 1952년 싱가폴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 선수권대회로 시작해서 86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에서 여러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한국 탁구의 전성기를 열었다. 그러나 지금은 탁구선수로 등록한 인원이 우리나라는 3,000명 정도이나 3,000만 명이 되는 중국이 세계 최강으로 버티고 있다. 중국이 이렇게 많은 선수를 확보하고 있어 당분간 중국의 독주를 막을 수 없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탁구도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탁구협회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 사람들은 다른 스포츠보다도 탁구를 가장 사랑한다. 실내운동장과 실외운동장 곳곳에는 탁구대가 있어 누구라도 쉽게 탁구를 칠 수 있게 하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산책과 병행해서 남녀노소가 틈만 나면 탁구를 친다. 그것은 건강도 주고, 또한 즐거움도 주었다. 필자 역시 중국에 있을 때 테니스는 칠 수가 없었지만 탁구는 언제든지 칠 수가 있었다.
 

 필자는 지난 2월에 개최된『2014 울산신문사배 전국탁구대회』에 참가했다. 전국에서 탁구동호인 1,800여명이 참가해서 실력을 겨루었다. 탁구를 좋아하는 이들이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이를 볼 때 최근에 탁구 붐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인다.
 퇴근 후 별일이 없으면 탁구장에 가서 탁구레슨을 받고, 동호인들과 게임을 하면서 탁구의 재미에 푹 빠져있다. 그런데 전에는 볼 수 없었던 40~50대 아저씨들이 탁구장을 출입하고 있다. 그들은 탁구를 '추억의 운동'이라 부른다. 그들은 평상에서 탁구를 쳐 본 세대들이다.
 

 최근 신문보도에 의하면 7년 새 우리나라 초·중·고 학생들의 비만율이 꾸준하게 증가해 지난해엔 100명 가운데 15명이 비만인 것으로 조사됐다. 성인병으로 직결될 가능성이 높은 고도비만 학생 비율은 2006년 0.8%에서 지난해 1.5%로 두 배가량 증가했다고 한다. 키는 줄고 체중을 증가하는 학생들이 많아진 결과인 것이다. 균형 있는 식사와 규칙적인 운동이 필요한 시기를 놓치고 있는 결과인 것이다.
 

 탁구, 추억이 있는 이들에게는 추억으로, 추억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추억을 만들어 주는 생활체육이 되었으면 좋겠다.
 봄이 왔다. 그대, 아름다운 추억도 이 봄바람과 같이 오길 바라는가. 그러면 지금 탁구장으로 가 보기 바란다. 그곳에 봄이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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