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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학교는 일제히 문을 열고 새 선생님, 새 교실, 새로운 친구를 맞는다. 말 그대로 새로운 한 해를 새 마음으로 연다. 교정에는 산수유가 노란 잎을 터뜨리고 봄 학기를 막 시작한 학생들은 여린 봄 순처럼 여기저기 싹을 튀우는 봄이 열린 것이다.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 나는 3월이 싫었다. 오히려 두려움이나 불안감이 나를 엄습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부모님 곁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설이 지나고 정월 보름이 지나면 서서히 봄기운이 땅을 적시기 시작한다. 얼었던 들판은 녹아 곳곳에 파란 싹이 고개를 내밀면 춘곤증처럼 오후의 햇살은 나른해지기 시작했고, 어머니는 떠나보낼 자식의 이불이며 옷가지를 빨아 그 오후의 햇살에 말렸다. 그리고 읍내 장에서 사 온 세간을 보따리에 싸고 빈 박스에 담으며 어머니는 또 당부한다.

 "밥을 지을 땐 물이 손등 정도에 와 닿아야 적당해" "도시락 반찬으로 김치랑 멸치조림, 콩자반이 좋아!"

 이런 당부의 말씀이 내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나는 세상에 갓 태어난 태아처럼 어머니 곁에서 어머니 냄새를 더 맡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알지 못하는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그건 낯선 지방에서의 자취생이 겪어야 할 힘겨운 생활과는 그 종류가 달랐다. 나는 어머니의 냄새를 곁에서 더 맡고 싶은 욕구뿐이었다.

 그리고 3월 첫날, 세간살이를 챙기고 버스를 탄다. 미처 돌아 볼 새도 없이 버스가 마을을 떠나면 그때부터 마치 미아가 된 듯 나는 돌아보고 돌아보지만 어머니는 그 어디에도 없고 얼른 토요일 오후가 오기를 그때부터 기다린다. 자취생의 첫날 밤은 어머니의 얼굴을 그리다 잠이 들었고 낯선 지방의 학교생활은 기대보다 두려움이 더 깊었다. 그렇게 한 주가 지난 토요일이 되면 어머니를 본다는 기대에 봄꽃처럼 상기된 얼굴로 아침을 맞았고, 학교를 마치자마자 버스터미널로 뛰었다.

 그 한 세월이 지나고 내 자식을 떠나보내는 3월이 됐다. 대안학교를 다니는 중학생 아이는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집을 떠났다. 내가 어머니 곁을 떠난 시절보다 3년이나 어렸지만 그는 무덤덤했고 자연스러웠다. 부모 곁을 떠나는 두려움이 있기는커녕 오히려 자유스러워 하는 모습에 사뭇 서운함까지 엄습해 왔다. 나는 옛날의 나의 어머니처럼 당부한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샤워 꼭 하고…"

 아이는 왜 또 그 이야기를 하느냐는 투로 건성어린 대답을 한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한다. 나는 못내 서운하다. 아이를 태우고 대안학교에 데려다 주었다. 그를 떠나보내는 심정이 어린 시절 나를 떠나보낸 어머니의 마음이었을까! 뒷자리에 앉은 아이에게 했던 말을 또 리플레이 한다. 최대한 다정한 마음을 담아 목소리를 내 보지만 뒷자리에서 들리는 그의 대답은 무미건조하다.

 불현듯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머니의 당부 말씀이 떠올랐고 나보다 더 두려워하는 어머니의 불안한 눈길이 선명하게 보였고 그만 난 울컥 눈물이 났다. 아이를 떠나보내는 부모의 심정은 애써 태연한 태도를 연기할 뿐, 떠나는 아이보다 더 두렵고 아프다는 것을 어른이 되어서야 깨닫는다. 밥 굶지 말고 다니란 말 속에는 젖을 더 빨리고 싶은 마음이, 낯선 길을 다니지 말라는 말씀에는 낯선 길을 가더라도 네 손을 꼭 잡은 내가 있으니 두려워 말라는, 어머니의 마음이 녹아 있음을 이제야 안 것이다.

 3월이다. 분주한 개학을 준비하고 집을 떠나 낯선 곳에서 학업을 이어가는 학생들은 기대감만큼의 설레임이 그리고, 불안감이 엄습할 것이다. 부디 밥 잘 먹고 낯선 길 다니지 말고 공부 잘 하라는 어머니의 마음을 새겨 두었으면 한다. 또 했던 말 잔소리처럼 리플레이 한다. 하지만 그 말씀으로 어머니가 우리 손을 잡는다.

 며칠 전, 다른 지방으로 자식을 유학 보낸 친구의 이야기를 보았다. 처음으로 자식을 세상에 떠나보내는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이 슬픈 무게로 침윤되어 가슴 저미게 했다. 공허하게 비어가는 마음과 불안감, 그리고 희망과 기대가 교차하는 어머니의 마음, 이것이 떠나보내는 부모의 마음이며. 더 오래 손 잡아 주지 못해 아픈, 떠나보내는 자의 공통된 마음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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