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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듣거나 말거나, 길 위에서 혼자 중얼거린 말들의 집합이에요. 소설은 밀실의 내 고유한 책상에 돌아가 앉아 쓰지만 여기 모인 말들은 천지사방 열린 길 위에서 쓴 것들이니 소소할는지 몰라요. 소소한 만큼 더 진실하고 예쁠지도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가 주인이 된 문장들이라고. 걷다 보면 발에 물집도 생길 터, 어느 낯선 집 추녀 밑에 앉아 헤집어 터트린 물집들이 여기 있다고. 그러니, 이 짧은 문장들이 당신들의 쉼표도 되었으면 좋겠다고. 쉼표를 도미노처럼 릴레이로 나누어 품으면 우리들 세상이 좀더 환해지지 않겠느냐 하고요." - <길 위에서> 전문
 

 이 책은 작가가 논산에서 머물며 때로는 벽에 그린 낙서처럼, 때로는 시 한 수 읊듯이 또 때로는 이야기하듯이, 대화하듯이 써내려간 짧은 글 모음이다. 3년여 동안의 소소한 일상이 묻어 있는 이 글들은 어느 한편 쓸쓸하게 다가오기도 했다가 삶에 대한 끝없는 열정을 실감하게끔 하기도 한다. 그래서 짧지만 강렬한 한 줄 한 줄의 문장들이 꿈과 희망을 건네는 잠언과도 같이 다가오고 작가와 술잔 기울이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듯한 기분이 들게도 한다.
 

 힘 있으면서도 온화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오는 듯한 <힐링>은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모두에게 위안과 휴식이 되는 글들을 담고 있다. 문장 마디마디 속에서 소리 없이 맹렬한 소통의 장이 펼쳐지고 있는가 하면 이해와 긍정, 회복의 이미지가 그려지기도 한다.
 

 또한 작가의 일상과 향기로운 소통에의 간절함이, 하루하루 시시때때로의 단상을 적은 글들과 더불어 나란히 실은 사진들 속에 들여다보인다. "홀로 가득 차고 따뜻이 빈 집", 작가가 직접 쓰고 그린 현판이 붙어 있는 논산집 풍경이며 탑정호의 잔잔한 물결, 작가의 서재 그리고 그 안으로 비쳐드는, 작가의 오후를 고스란히 드러내주는 것 같은 햇살, 그 모두가 작가 박범신이 말하는 희망과 행복, 소통과 열정을 표현하고 있다.
 

 작가가 세상과 자기 자신, 그리고 독자와의 소통을 담은 이 책은 결국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나서는 이야기되지 않는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무엇보다 '사랑이 가장 큰 권력'이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문학, 목매달아 죽어도 좋은 나무"라고 표현한 박범신의 작가로서의 40년 문학 인생을 사이사이 엿볼 수 있게도 해주는 <힐링>은 우리로 하여금 고통과 외로움의 신랄함에 빠질지라도 여전히 사랑이라는 단단한 울타리가 버팀목이 되고 있음을 저버리지 않게 한다. "비우는 것이야말로 행복의 문"이며 욕망을 좇으려는 마음과 욕망을 내려놓으려는 마음, 이 둘 사이에 균형을 잡을 수만 있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이고 그럼으로써 삶은 풍요로워진다고 작가는 짧은 문장 속의 힘 있는 목소리로 웰빙의 삶을 외치고 있다.
 

 '끝'이라고 쓰는 것이 제일 무섭다고 한 작가는 모든 관계에 있어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도록 강조하고 있다. 고요하면서도 진솔한 작가의 한마디 한마디는 젊음과 열정으로 아픔을 이겨내고 인내하도록 용기와 위안을 주며 따뜻이 토닥여주는 것만 같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청춘에게 말을 걸고 있을 뿐 아니라 '흐르고 머무는 사람'이기 때문에 영원히 갈망하는 것에 대하여 그리고 생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힐링>은 삶과 사랑의 향기를 가득 품은 채 외로움과 고독을 달래주는 문장들의 집합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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