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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밀양의 풍경입니다.
도심에서의 비가 고도에 따라 진눈깨비로 변하더니 산 정상에 이르러 함박눈으로 변했습니다.
모든 것을 덮을 듯 쏟아져 내리는 눈 아래 길은 벌써 하얗게 누웠습니다.
아직 그 누구도 밟지 않은 새 길을 걷는다는 것은 즐겁습니다.
뽀드득 뽀드득 여운 짧은 소리를 뒤로하고 걷다가 문득 돌아보면,
저만치 펼쳐진 발자국 위로 서서히 지워지는 시간들이 보입니다.
지난겨울 폭설에 채 피지 못한 어린 생명들이 스러져갔습니다.
그들의 아픔은 여전한데 세상은 어느새 잊고 무심한 듯 흘러갑니다.
우리가 너무 빨리 달아오르고 너무 쉽게 망각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밀양 케이블카 끝자락은 전망대입니다.
산들이 중첩되는 산자락마다 터를 잡은 마을들이 발아래 펼쳐져 시야 밖으로 사라집니다.
저 멀리 산 아래는 벌써 봄을 준비하는 연초록이 피어납니다.
언제나 그렇듯 겨울은 지나가고 봄은 올 것입니다.
누군가에는 악몽의 계절이었고 또 누군가에는 설국의 추억을 안겨준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지나간 일들은 잊고 사는 것이 세상사 이치라지만, '지나간 일들은 잊자'라는 말에는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다시 올 겨울이 두렵지 않을 겁니다.

눈이 어느새 지나온 발자국들을 지웠습니다.  글·사진=김정규기자 k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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