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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이 봄의 시작이라면, 사월은 봄의 절정입니다. 대지는 어디를 가나 기화요초(琪花瑤草)가 어우러져 팡파르를 터뜨리느라 한창입니다. 눈이 부실만치 새하얀 백목련, 고혹적이고 기품 있는 여인의 자태를 빼닮은 자목련, 맑은 하늘 냄새를 풀어내는 핑크빛 진달래, 노랑부리 합창단 개나리가 줄지어 피고 집니다. 모두가 어쩌면 그렇게 오묘하고 조화로운 빛과 향기를 풀어내는지, 분분하게 꽃잎을 떨어뜨리는지, 가슴이 다 뭉클합니다.

 사월은 우주 만물의 호흡이 활발해서 농사일을 제대로 시작할 때입니다. 나무들이 물을 길어 올리고, 흙 속의 무수한씨가 바깥세상에 나와 수군댑니다. 하루하루 도타워지는 햇살이 파문을 일으켜 아지랑이로 번집니다. 해서, 밭두렁이나 언덕배기인들 함부로 밟기가 조심스럽습니다. 동네를 조금만 벗어나면 빈터나 들판에서 퇴비를 내거나 호미로 흙을 일구고 씨앗을 파종하는 사람이 보입니다. 겨울을 견뎌준 마늘밭이나 양파밭, 보리밭을 보살피는 이, 과일나무의 곁가지를 손보는 농부의 손길이 바쁩니다. 자연과 사람이 다 같이 활기를 되찾은 사월입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내가 사는 동네에는 '궁(활)거랑(냇물) 벚꽃 축제'가 열립니다. 동네를 가로질러 활처럼 휘어진 실개천을 따라 양쪽으로 줄지어 늘어선 벚꽃이 한창 벙글 때면 '궁거랑 벚꽃축제' 현수막이 골목 어귀마다 걸립니다. 행사는 주민센터가 열겠지만, 이웃 간의 잔치나 진배없습니다. 실개천을 따라 화르르 피어난 벚꽃이 터널을 이루고 일제히 부드러운 바람을 끌어안고 흩날리는 풍광은 가히 장관입니다.

 축제에는 이런저런 볼거리나 먹을거리가 더해집니다. 밤이면 온갖 동물모양의 한지 등불이 켜지고 동네부녀회가 준비하는 '파전'이나 '동동주'며 '잔치국수'는 꽃구경 나온 이웃이 흥을 더하는 데는 그저 그만입니다. 벚꽃나무 아래 멍석을 깔고 삼삼오오 둘러앉아 정담을 건네거나 꽃이 주는 부드러움과 여유에 취해 밤이 깊은 줄도 잊은 모양입니다.

 꿀벌은 팝콘처럼 부풀어 오른 꽃 사이를 넘나들며 꿀과 꽃가루를 따느라 분주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스마트폰을 내밀고 함박웃음을 담느라고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다 자칫 옆 사람의 발을 밟거나 내쳤어도 그냥 마주 보고 씨익 웃어 보이면 그만입니다. '꽃 실수'는 살가운 정이고 예쁜 실수인가 봅니다. 사월은 꽃입니다. 꽃 앞에 선 사람의 얼굴에는 걱정이나 절망, 고민 따위는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그저 환한 웃음이고 희망이어서 걸음걸이가 절로 흥이 납니다.

 낮에는 노랑 유니폼을 입은 유치원생들이 단체로 축제장을 찾았습니다. 선생님의 호각소리에 맞추어 쪼르르 병아리 떼로 따르는 모습은 색다른 구경거리입니다. 화르르 타오르는 꽃길 아래로 원색물감의 사람들이 이루는 물결을 바라보고 있으면, '여기가 신선이 사는 곳이구나' '천국이 이렇겠지' 싶습니다. 바람에 나부끼는 가장귀를 그러안고 잠시 생각에 젖습니다. 긴 겨울을 묵묵히 이겨내고 이렇게 가지마다 아름다운 꽃을 피워 내는 것이 우리네 인생과 매한가지입니다.

 지난 날 내 인생 여정에도 수월찮은 비바람과 한파가 있었습니다. 난데없는 우박세례에 그렁그렁 눈물을 보인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치지 않는 비가 없듯이 겨울추위는 견딜만한 부드러움으로 변하고 사월을 마중하고 있습니다. 힘든 겨울을 지내고서야 사월이 주는 고마움을 더 실감할 수 있습니다. 겨울 다음에 피우는 것은 다 꽃입니다. 꽃과 새순이 봄이면 피어나듯, 우리네 삶도 그러합니다. 봄에는 누구라도 한 아름의 희망과 여유를 마주 할 때 입니다.

 온갖 꽃들이 피고 져서 더 행복한 사월입니다. 행복은 작은 것 속에 숨어 있어서 큰 야망에 찬 사람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답니다. 소소한 일상에 의미를 주며 길섶에 핀 야생화 한 송이에도 사랑으로 쓰다듬을 때 행복은 손을 내민다지요. 나는 사월이 좋습니다. 이 기운이면 남은 달력쯤이야 거뜬히 사랑으로 지킬 수가 있겠습니다. 꽃문이 원 없이 열리고 수시로 드나드는 내 작은 텃밭에서 흙을 실컷 만질 수 있습니다. 나는 거기서 마음에 드는 씨앗과 모종을 골라 묻는 자유와 희망의 호미질을 즐길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꽃냄새가 코끝을 따라오고 부드러운 바람이 좋은 사월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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