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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 최근 갑자기 이색적인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인구 20만명이 될까말까한 그러한 울산일 때 자주 보게 되던 이색적인 사람들이 영원히 소멸되지 않고 다시 환생을 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판이니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환생한 이들이 죄다 사공으로만 되어있어서 더욱 가관일 뿐이다. 하긴 가관(可觀)이란 말부터가 그렇다. 가관이란 말은 본래의 의미가 '볼만하다'란 뜻으로 '설악산 단풍이 가관이다' 같은 경우에 쓰는 말이었다. 참으로 볼만하다는 감탄의 뜻이 완전히 뒤바뀌어 '꼴 보기 좋다'식의 구경거리가 될 정도로 우습고 격에 맞지 않는다는 뜻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가관인 사람들이 그래도 잠자코 있으면 모를 일이 될 것이나 내로라 하면서 모두가 문화도시, 문화도시, 울산! 울산을 내세우면서 자주 얼굴을 내미는 통에 배를 모는 사공이 되고 있으니 가관이다. 사공이 많아지면 그 배는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산으로 가기 때문이다.

 개교한지 일백칠년이 되는 울산초등학교 자리에 시립미술관을 세우게 되는 것이 확정되었을 때부터 나는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미술관도 좋지만 백년을 넘긴 울산교육의 탯자리가 사라지고 만다는 안타까움이었지만 기실은 나의 모교가 사라진다는 서운함 때문이었다.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몰고 왔다는 게 솔직한 이유였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보다는 시민을 위하여 울산문화를 가늠하는데 척도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문화예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저 잘한 일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시(市)가 이미 그 자리에 시립미술관을 세우기로 결정한 다음 학교까지 신축하고 옮겨 놓았다. 이제는 하루속히 미술관을 세우는 일에 매진해야 할 때인데 느닷없이 문화도시 울산포럼의 어느 한 분이 학교의 일부건물을 그대로 두고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그만 뒤꼬이게 되었다.

 문화도시 울산포럼이 대외적으로 크게 인정을 받고 그 방면의 전문가들로만 모여서 구성한 단체도 아니다. 또 단체의 이름으로 나선 것도 아닌 그중의 구성원 한사람의 의견 때문에 그것이 보고듣기 거북할 정도로 의견이 분분했었다.
 아직도 울산이 이정도인가? 하는 수치감마저 들었다.

 더군다나 문화도시 울산포럼의 그 한사람의 주장에 대해서 지금의 울산에서는 그 방면에 가장 전문가일 수밖에 없는 울산대학교 미술대학 김 섭 교수에 의해 조목조목 그 부당함에 대한 답변이 나온바있다.
 어떤 이가 나에게 살짝 말했다. 그는 어느 대학에서 건축학을 강의하는 교수가 TV에 나와 역사를 두고 망발이나 다름없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으니 신종 三奇七癌들이 다시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렇다. 지금의 울산은 인구 20~30만명이 모여 살던 울산이 아니다. 행정관서 또한 그 때의 행정관서가 아니다. 그 관서의 구성원인 인물들 또한 우매했던 과거의 사람들과 다른 공복들로 채워져 있다. 문화도시를 지향하면서 겨우 일어선 울산광역시라면 이 도시에 걸맞는 문화시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오며가며 귀동냥으로 주워들은 이야기거나 외국여행길에서 스치며 얻어 모은 안내 팸플릿 정도에서 얻은 정보를 자신의 상식인 양 주장하며 전문가처럼 행세하려는 정도라면 컴퓨터 하나면 모두 얻을 수 있는 지식이 아닌가.

 속담에 '개살구 지레 터진다'란 말이 있다.
 되지 못한 사람이 어떤 일에 먼저 덤빈다는 뜻이다. 시립미술관 추진위원회가 회의 끝에 결정을 내렸다. 더 이상 시립미술관을 두고는 이러쿵 저러쿵 말을 삼갔으면 한다.
 자칭 전문가들이여! 사공 많은 울산을 哭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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