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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하지만 답답하다.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온 국민의 염원이지만 사고가 터지고 연이어 일어난 일련의 상황은 그저 망연자실일 뿐이다.망연자실( 茫然自失), 말 그대로 제 정신을 잃고 어리둥절한 모양을 이르는 말이다. 생떼같은 아이들이 칠흑같은 바다에 갇혔다. 벌써 6일째다. 대한민국이 혼돈에 빠졌고 대부분의 국민들이 넋을 놓아 버렸다. 사고는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 삼풍백화점 붕괴부터 천안함 폭침까지, 우리는 가슴 먹먹해지는 숱한 사고에 익숙해져 있다. 문제는 대응이다. 사고가 터지면 온 나라의 재난관련 기관과 언론은 '초등대처 부실'을 떠들었다. 수습과 함께 대책이 나오고 '재발 방지'도 어김없이 약속했다. 그런데 말이다. 그 많았던 대책은 보고서에만 있을 뿐, 현실은 허둥지둥 그 자체였다.

 재난을 책임지는 정부 부처는 이번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침몰 초기엔 승객 대부분이 구조될 것이라는 어줍잖은 보고를 믿고 '골든타임'을 놓쳤다. 가라앉고 있는 배를 뒤로하고 변장에 변신술까지 부리며 도망친 선장과 다를 바가 없었다. 탑승자 수를 잘못 알리고 구조상황을 오락가락 발표하는 것은 허둥대는 정부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된 셈이다. 시계가 나쁘고 조류가 불가항력이라고 항변하지만. 침몰하는 배를 그대로 보고 있는 정부를 국민들이 보고 있다.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는 후일담이다. 현장에서는 최선이 있을 뿐이고 무조건 구조가 첫째다. 변명만 늘어놓는 현장이 몇날이나 계속됐고 심장을 도려내는 고통 속에 있던 부모들은 급기야 청와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런 정부, 이런 대처를 보며 누가 우리를 경제대국이자 선진국가라 이야기할 수 있는지 자괴감까지 든다.

 온갖 안전이 실종된 지난 정부 이후 박근혜 정부는 '행정안전부' 이름을 '안전행정부'로 바꿨다. 행정보다 안전에 방점을 두고 국민의 안전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겠다는 의지였다. 그런데 말이다. 행정은 안전의 뒤에 숨었고 등 떠밀리듯 나온 안전은 수습사원처럼 허둥대기만 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실종자 가족에게 대책을 약속하고 이를 이행 했는지 확인전화까지 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현장을 장악하고 일사불란하게 상황을 이끌어야 할 안전행정부는 해경과 해군, 해양수산부에서부터 민간구조대에까지 따로 노는 현장에서 그야말로 허둥지둥하는 모습이다. 도대체 우리 정부 시스템에 재난대응은 있는지 의심스럽기까지 한 대목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많은 것을 잃었다. 한국전쟁 이후 가난의 고통을 벗어나는 것이 온 나라의 최우선 가치가 됐고 반세기 동안 경제대국 건설에 매진했다. 물질이 지배하는 사회는 부의 획득으로 몸은 살찌게 됐지만 그만큼 정신은 피폐해 졌다. 부실과 날림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불치병이다. 속도전과 성과주의가 낳은 근대화의 뒷골목에는 비리와 담합, 은폐와 의혹이 쓰레기처럼 나뒹굴고 있다. 여기에 이제는 안보불감증과 나태와 안일이 온몸에 스며들어 악성종양으로 자리하고 있다. 눈 가리고 아웅하던 시대에나 있을 법한 일들이 지금도 매일같이 터져 나온다. 아뿔사, 사고가 터지면 온갖 처방전이 찌라시처럼 나뒹군다. 와르르 무너진 안전이 시커먼 다도해 앞바다에서 흉물스럽게 뒤집히고 부스스한 얼굴로 눈 비비던 관계 당국의 안일함이 벌거벗은 몸을 감추기에 급급하고 있다. 선박의 안전이나 승객의 목숨은 상관하지 않고 일본산 중고배를 들여오고 개조해도 관리는 서류에만 존재한다. 가리고 덮은 관계자의 안전의식이 애송이 항해사가 잡은 키처럼 아무렇지 않게 굴러가니 그저 요행만 바라는 것이 대한민국의 안전이다.

 사태가 여기까지 오니 신뢰는 바닥이다. 생떼같은 목숨이 울부짖고 있는데도 출처불명의 방송은 정부를 향해 삿대질을 해대고 SNS에서는 괴담이 봇물을 이룬다. 불신만이 지배하는 사회. 그러나 이를 진정시키고 다독거릴 정부는 보이지 않는다. 발표하는 것마다 위태하고 안스럽다. 대책 기구는 따로놀고 그 많던 대응 매뉴얼은 이미 바다에 빠져 너덜거린다. 언제까지 이런 부끄러운 인재가 계속되어야 하는지,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목숨을 버려야 제대로된 재난시스템이 작동될 것인지, 우리 정부는 이제 정말로 국민을 정면으로 보고 그 답을 내 놓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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