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총리가 사의를 밝혔다. 황망하게 보낸 10여일 동안 고뇌의 밤을 지샌 그가 일요일 오전, 스스로 옷을 벗었다. 야당이 무책임한 총리라 비난했다. 불과 몇시간 전까지 내각총사퇴를 외치던 야당은 총리가 사퇴선언을 하자 "무책임 하다"며 또 비난전이다. 복지부동. 땅(地)에 엎드려(伏) 움직이지(動) 않는다(不)는 이 네 글자는 군대 용어였다. 위급한 전시 상황에서 몸을 은폐하고 땅에 엎드려 움직이지 않는 것이 전술의 하나다. 하지만 이 네 글자는 이제 군대에서 사용하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대한민국 공무원을 대표하는 글귀가 됐다. 나서면 죽고 엎드려 가만히 있으면 살아남는다는 공무원식 위기대응 구호다.

 한 국가나 조직은 네트워크가 생명이다. 리더를 중심으로 철저하게 계획에 따라 움직이면 업무가 순조롭게 이루어져 원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모든 구성원은 조직이 자신에게 부여한 가치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맡겨진 일을 꼼꼼하게 수행해야 한다. 비록 구성원 한 명, 한 명은 중요한 정책 결정자는 아니지만 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안정적이고 바르게 업무를 수행해야만 조직의 목표가 순조롭게 달성될 수 있다. 유가의 최고경전인 역경(주역)에 나오는 말이다. 역경은 오늘의 우리에게 준엄한 경고를 했다. 바로 그 리더의 자격이다. 절족복속. 솥발을 부러뜨려 음식을 엎지른다는 뜻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 소인을 쓰면 그 임무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나라를 위태롭게 만든다는 이야기다.

 수백명의 인명피해를 낸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12일이 지나도록 단 1명의 실종자도 구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은 박근혜정부의 초기 대응과 위기관리 능력이 총체적으로 부실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침몰 당시 사고 접수와 전파 체계, 구조할 수 있는 황금시간대인 '골든타임'(48시간)을 놓친 구조 당국의 안일한 초동대처는 두고두고 안전교육의 사례로 남게 됐다. 총체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고의 대처과정에서 해경과 소방본부의 대응은 복지부동의 전형이자 절족복속의 낯뜨거운 사례다. 전남도소방본부가 세월호 사고 소식을 처음으로 접한 시각은 16일 오전 8시 52분 32초. 배에 타고 있던 한 단원고 학생은 "살려주세요. 여기 배인데 배가 침몰하는 것 같다"며 긴급상황을 전하고 "목적지인 제주도로 가고 있고 선생님을 바꿔주겠다"고 말했다. 침몰 선박의 선명도 '세월호'라고 전했다. 전화를 받은 전남도 소방본부는 1분 35초 만인 8시 54분 7초에 목포 해경상황실로 "배가 침몰한다는 신고가 왔다"고 알렸다. 하지만 소방본부는 3자 통화 당시 지금까지 파악한 정보를 해경 상황실에 제대로 전하지 않았다. 해경은 3자 통화가 시작되자 또다시 위치 파악에 나섰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해경은 소방본부가 "신고자는 선원이 아닌 탑승객이다"고 알려줬지만 급박한 상황에 있던 학생에게 위도와 경도, 배이름, 상선인지 어선인지 등을 묻고 또 물었다. 해경이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배 이름만 대면 배 위치를 금방 알 수 있는데도 선원도 아닌 학생을 붙잡고 헛발질만 하고 있었다.

 바로 대한민국 해경의 현주소다. 해경은 세월호 실종자 구조작업에 핵심 역할을 하면서도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사고 직후 한 해경 간부가 "승객 80명 구했으면 대단한 것 아니냐?"라고 했다가 곧바로 직위 해제됐다. 나서다 짤린 사례지만 그냥 툭 튀어나온 말은 아니다. 복지부동의 일상화가 낳은 헛발질이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해경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는 한둘이 아니다. 세월호는 화물을 규정보다 훨씬 많이 실어 사실상 여객선이 아닌 '화물선'이나 다를 바 없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그런데 해경이 선박 운항관리규정 심사를 허술하게 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한다. 언론보도로는 사고 초기 자원봉사에 나선 민간 잠수부들과 갈등을 빚어 한시가 급한 실종자 수색 작업이 지연됐다는 비판도 나왔다. 또 각지에서 소방 헬기가 팽목항에 집결했는데도 구조 현장에 뛰어들지도 못한 채 대기만 하다가 되돌아갔다고도 한다.

 이번 사고 직후 정부가 보인 대처능력은 말 그대로 복지부동의 전형이다. 사고가 터지자 정부 부처는 대책본부를 꾸리기에 바빴다. 대처는 없고 대책본부만 만든 정부였다. 서울의 중대본 외에 세종시에는 해수부와 교육부가 중앙사고수습본부를, 보건복지부 등은 사고대책수습본부를 차렸다. 해양경찰청은 인천과 목포에 지방사고수습본부,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은 목포에 중앙구조본부를 꾸렸다. 10여개의 대책본부가 꾸려지면서 일관성 있는 현장 지휘체계는 실종됐다. 여기에다 초보 선원이 세월호를 몰았던 것처럼 초보 장관들의 헛발질도 이어졌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이끈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은 지난 4월 2일 취임해 장관 업무를 갓 시작한 초보였다. 경기도 교육청을 이끄는 고경모 권한대행도 지난 3월 5일부터 '대행'을 시작한 한 달 남짓 초보였다. 범정부 사고대책본부장인 이주영 장관도 '몰라요 장관'이 집으로 간 지난 3월 6일 취임해 한 달을 갓 넘긴 초보였다. 총체적 초보들의 부실한 대응에 우왕좌왕한 정부가 결국 대한민국호라는 위태로운 배를 침몰시킨 셈이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