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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보지 말고 보던 거 계속 봅시다! 뉴스 보고 있노라면 분통이 터지고 또 우울해져 밥맛도 없어요!" 공연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려 들른 식당에서 뉴스 좀 보자는 필자의 대사에 옆 테이블에 있던 손님의 대사다.

깊은슬픔에 멈춰버린 대한민국
헐뜯음·미움·비난 … 접어두고
이쯤에서 잠깐 숨고르기 해보자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는 민관이 합동으로 초래한 어처구니없는 인재임이 틀림없다. 필자의 외아들도 고2 학생이다. 배를 이용해 제주도 수학여행을 앞두고 있었기에 더욱 아찔하다. 아이들은 사고 침몰 첫 시점으로 부터 구조를 위한 골드 타임이 넘도록 무능한 선장과 선원들의 안내 방송만을 믿었다. 선실 내에서 빨간 구명조끼를 입고 배가 위태롭게 기울어져 가는데도 어른들의 기다리라는 방송만을 순종하던 동영상이 또 떠오른다. 화가 치밀고 피멍울이 터진 듯 마음이 아프다. 마음이 아프면 정말 가슴팍 한 가운데가 아린듯한 통증이 느껴져 온다. 추모 분향이 오늘도 전국에서 끊이질 않고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겠다며 달아나던 아비규환의 와중에서도 살신성인의 사랑을 실천한 여 승무원 고 박지영씨를 떠 올리면 가슴 한켠 뭉클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평소 인사성도 밝고 배려심도 많아 주위에서 칭찬이 자자했다던 꽃다운 22세 아가씨다. 홀어머니와 여동생을 책임진 가장으로서 생계의 치열한 현장에 뛰어 들었던 고 박지영씨의 사연이 잊혀지질 않는다. 같이 구조 돼야 한다며 함께 가길 원하던 어린 동생들에게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 입혀 주며 "난 너희들 모두가 구조 된 뒤에 따라 가겠다"라며 바닷물이 목까지 차오르는데도 다부지고 당찬 말로 격려했다던 그 모습이 잊혀지질 않는다. 고귀한 사랑은 고귀한 희생 또한 뒤따르는 것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어른인 우리는 더욱 부끄럽다.

 슬픔은 전이성이 강하다. 필자는 20년 넘도록 어른과 아이들 위한 연극 공연일을 하고 있다. 오랜 전래 동화인 청개구리이야기라는 인형극을 하다 보면 처음엔 실컷 웃으며 보던 아이들이 엄마가 어리석은 거꾸로쟁이 아들을 대신해 결국 독뱀에게 물려 죽는 장면에서는 훌쩍이기 시작한다. 그 훌쩍임은 어느새 옆 친구들에까지 전이돼 훌쩍이고 급기야 함께 관람하던 부모, 선생님들의 눈시울마저 적시며 "얘! 너 왜 울어?!" 하며 같이 울다 보면 공연장이 어느새 장례식장이 돼 있다. 슬픔은 슬픔을 낳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이번 사고로 대한민국이 올 스톱이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활동 등에서 모든 행사들이 전체 스톱이다. 정치계에서는 총리가 옷을 벗고, 그와중에도 여·야는 6·4 지방 선거를 앞두고 이 참에 생색내며 제 밥그릇 챙기기 위한 비난 몰이로 어지럽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선박 물류, 해운업, 관광업은 잇따르는 예약 취소와 교육, 사회 문화면에서의 모든 행사 취소로 그에 따른 파급 손실도 엄청나다. 지난 천안함 침몰 사고에서는 유족들이 나서서 슬픔을 멈추고 각자의 일에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며 국민들에게 호소했었다. 그러나 이번 참사에서도 그러기엔 어린 목숨과 희생자들의 숫자가 너무나 많아 안타깝다.

 하지만 이쯤에서 잠깐 숨 고르기를 하면 안될까? 전 국민의 애도의 물결은 곳곳마다 노란 리본으로 펄럭이고 있다. 그런데 살신성인한 고 박지영씨라면 우리들의 지금 헐뜯음과 미움, 비난, 시기. 모함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살신성인의 사랑을 아름답게 보여준 그녀에게 지금 우리의 모습이 부끄럽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밑도 끝도 없고  속 시원한 해결책도 없다며 뉴스 보기를 꺼려하는 시민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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