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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발 660m 습지의 철쭉 군락에서 바라본 정족산 정상부. 정족산 정상부는 마치 가마솥의 발 처럼 솟은 형상이어서 솥발산이라 부른다.
# 낮은 산행코스…가족 나들이로 제격
진달래가 지고 나면 피는 철쭉은 개꽃으로 불린다. 진달래는 칡, 쑥처럼 춘궁기나 흉년에 밥 대신 배를 채울 수 있는 일종의 구황식물이다. 반면 철쭉은 독성이 있어 먹을 수 없다.  '개-'는 진짜나 좋은 것이 아니라는, 보잘것없다는 뜻을 담고 있다. 개꿈 개살구 같은 낱말들을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춘궁 (春窮)을 걱정하지 않게 되면서 '개꽃'은 잊혔고, 봄을 대표하는 철쭉이 됐다.
 울산 근교에는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철쭉 산행지가 많다. 가장 즐겨 찾는 곳은 천연기념물(402호)로 지정된 가지산 철쭉군락지다. 상북면 석남터널에서 가지산 능선을 따라 펼쳐진 철쭉군락은 우리나라 최대 규모다. 남쪽으로 가면 온양면 대운산 철쭉 군락지도 추천할 만하다. 정족산 철쭉군락지는 규모는 크지 않지만, 해발 700m 정도의 비교적 낮은 산에 위치한 데다 주변에 람사르습지에 등록된 무제치늪이 있어 가족들과 함께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정족산 산행의 울산쪽 들머리는 웅촌면 은현리 반계마을과 하늘공원이 위치한 삼동면 보삼마을 인근 용암사로 하면 된다.
 은현리를 통해 정족산으로 가려면 7번 국도를 따라 부산 쪽으로 내려가다가 웅촌면 소재지에서 춘해대 쪽으로 우회전을 해야 한다. 춘해대를 지나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다시 오른쪽 길로 얼마가지 않으면 검단 초등학교가 나온다. 학교 담장이 끝나는 지점 왼편 마을길에 정족산 무제치늪과 적석총 안내 표지판이 있다.

# 은현리 반계마을에서 출발
산행길 초입에 있는 마을은 반계마을이다. 마을 회관 옆 400년을 넘게 산 갈참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마을을 지나 계곡(반계계곡)을 따라난 좁은 도로를 가다보면 차와 백숙, 동동주를 파는 음식점들이 나온다. 포장된 도로는 곧 끊기는데 이 곳 부터는 계곡을 따라 오솔길을 올라야 한다.
 오른쪽에는 옛 운흥사의 부도를 간직하고 있는 운흥사 사찰이 있고, 계곡을 따라 곧장 가면 멀지 않은 곳에 운흥사지가 있다. 운흥사지 가는 길은 그윽한 숲 냄새와 산새소리, 물소리가 가득하다.


▲ 정상부 철쭉 사이로 난 오솔길.
 운흥사지를 두고 오르는 산길은 거의 오솔길 수준이다. 계곡을 낀 능선 길은 그다지 가파르지 않아 봄기운을 만끽하며 명상에 잠기기에 알맞다. 산행 길 곳곳에서 만나는 산죽의 서걱거리는 소리도 상쾌하다. 특히 중턱 너머에서 만나는 산죽터널 길이 인상적이다. 어른 키보다 큰 산죽 사이로 마치 미로 같은 산길을 만들어 놓았다.
 산죽 터널을 지나면 참나무 군락이다.  곳곳이 진흙탕이다. 수북이 쌓인 낙엽 때문에 자칫하면 발을 빠뜨릴 수도 있다. 고산 습지인 무제치늪이 가까운 탓이다. 오솔길 같은 등산로가 끝날 즈음 임도를 만난다. 임도를 따라 조금만 오르면 660봉이다. 무제치늪을 알리는 안내판이 보이고 억새 숲 너머로 마치 종지를 엎어 놓은 듯한 정족산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 군데군데 군락지와 대면
봉우리를 목표로 하고 임도를 따라 걷노라면 군데군데 철쭉 군락이다. 철쭉이 피어 있는 양상은 그야말로 '극과 극'이다. 4월의 높은 기온 탓에 벌써 낙화하기 시작한  녀석이 있는가 하면 이제 갓 몽우리를 맺는 놈도 있다. 엎어 놓은 종지의 초입에 제법 넓은 철쭉 군락지가 있다. 부처님 오신날 절집 대신 정족산을 택한 이들이 철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 정족산 표지석에서 울주군 웅촌 쪽으로 바라본 풍경.
 철쭉은 수로부인의 설화 속에 등장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수로부인은 성덕왕때 강릉태수로 부임하는 남편 순정공의 함께한다.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다 병풍처럼 둘러선 바위 끝에 서 붉은 꽃이 활짝 피어있는 것을 보게 된다. 수로부인이 '누가 저꽃을 꺾어 주겠소?'하고 물었지만,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사람의 발길이 닫기 어려운 험한 벼랑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다. 그 때 소를 끌고 가던 한 노인이 철쭉꽃을 가지고 싶어 하는 수로 부인의 모습을 보고, 아무 말 없이 소를 끌던 줄을 바위에 묶어 놓고는 절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노인은 몸놀림이 가벼웠고 어렵지 않게 절벽을 올라가서 꽃 한 가지를 꺾어서 내려왔다. 노인은 미소를 가득 머금고 그 철쭉꽃 가지를 수로부인에게 전하며 노래를 불렀다.
 '붉은 바윗가에 암소를 끌고 온, 이 노인이 부끄럽지 않으시다면 이 꽃을 받으십시오'
 신라의 향가 중 하나인 '헌화가(獻花歌)'이다.

# 정상에서 즐기는 그림같은 풍광
정족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기암괴석들로 가득하다. 그 사이사이 연분홍 혹은 선홍빛의 철쭉 무리가 듬성듬성 피어있다.
 해발 701m 정족산 정상. 크지 않는 바위 꼭대기에 최근에 다시 세운 표지석이 눈에 거슬린다. 표지석을 고정하기 위해 하단에 땜질하듯 바른 콘크리트가 바위와 어울리지 않는다.
 정족산 봉우리에서 본 무제치늪은 생각보다 넓다. 600m가 넘는 고지에 평지가 있는 것도 그렇고 그 곳에 습지가 있다는 것도 신기할 따름이다.
 조망이 시원하다. 북쪽으로 솔밭공원묘지를 지나 고헌산이, 동쪽으로 문수산 남암산 대운산이 펼쳐진다. 멀리 울산항과 동해바다도 보인다. 남쪽으로는 화엄벌과 원효산 너머 천성산에서 뻗어 나온 능선이 공룡능선 북면을 굽어 내원사 계곡으로 치닫는다.
 사위가 녹색이다. 그 녹색의 물결 사이사이 선홍색의 철쭉이 수를 놓았다.
 문득 칠흑같이 어두운 바닷속에서 사그라져 간 수많은 아이가 떠오른다. 붉은 철쭉 꽃잎 한 움큼을 따서 바람에 날렸다.

▲ 람사르습지로 등록된 정족산 아래 무제치늪.
# 국내 최고 산지습지중 하나인 '무제치늪'
하산하는 길은 무제치늪을 지나 삼동 쪽으로 잡아도 좋겠다.
 무제치늪은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인 꼬마잠자리와 땅콩물방개 등 곤충류 200여종, 그리고 이삭귀개, 땅귀개 등 습지식물 260여 종이 서식하고 있어 자연환경의 변천과정과 동·식물의 생태를 체험할 수 있다. 지난 2007년 12월 람사르습지로 등록된 '살아있는 자연사 박물관'이다. 

# 영화기념관 공사 한창인 보삼마을
무제치 늪에서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 종합장사시설인 하늘공원으로 가는 도로와 만난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보삼마을이다. 공사 중인 듯한 '보삼 영화마을 기념관'이 눈에 들어온다. 보삼마을은 70~80년대 '씨받이' 등 몇 편의 시대극 영화가 촬영 된 곳이다. 그만큼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옛 정취가 살아있던 곳이었다. 하지만 하늘공원이 들어서고 도로가 넓어지면서 옛 모습은 찾을 길이 없어 아쉬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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