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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가 상중(喪中)이다. 애도기간이 규정되진 않았지만 가슴에 달고 있는 노란리본은 유효기간이 없다. 주말엔 서울에서 최대인파가 모여 세월호 촛불집회를 가졌고, 팽목항에서는 여전히 실종자 수색이 반복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이후 사회적 이슈는 시국사건이 됐고 이는 언제나 촛불집회로 이어졌다.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일부 단체들이 가세하면서 세월호는 이제 적폐청산이라는 사회적 담론을 넘어 정치적 논쟁으로 비화되고 있다. 실제로 촛불집회와 함께 일부 보수단체들은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세력이 있다'며 촛불에 물을 뿌리는 집회도 열었다. 갈수록 혼돈지경이다. 세월호와 함께 기우뚱거린 박근혜 정부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사면초가에 빠진 셈이다.

 사면초가(四面楚歌), 말 그대로 사방이 요란하다. 한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실종자 수색은 마무리가 되지 않았고, 적폐청산의 목소리는 컸지만 시작도 하지 못했다. 여기에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세월호는 거센 조류에 선실이 부서지듯 정권의 밑바닥까지 흔들어놓고 있다. 사실,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면 정치인들의 목소리가 사라졌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한달이 지나면서 노란리본을 단 정치는 다시 고개를 치켜들고 있다. 이성이 마비된 감성의 정치는 지방선거판을 자극하기에 딱 좋은 호재다. 야당이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제도권 정치인들이야 말을 아끼지만 전교조를 비롯한 진보세력은 대놓고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다. 전교조는 한 발 더 나갔다. 홈페이지 추모 동영상엔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김주열 열사부터 세월호까지를 아예 보수정권의 희생양으로 직시하고 있다.

 정치는 종교와 한 몸이다. 태초에 태생이 한 몸이었다가 각자도생을 했지만 오늘의 정치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수천년전 원시집단 종교의 몰이성적 메커니즘을 쏙 빼닮아 있다. 단상에서는 열을 올리고 뒤돌아 악수하는 습성이나 대중의 굳은 눈빛을 어떤 감언이설로 풀어줄 수 있는가를 잘 알고 있는 속성 등등 너무나 닮은 것이 정치와 종교다.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이는 대체로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자로 인식한다. 지금 박근혜 정부가 외치는 적폐의 중심이기도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법과 원칙을 물질적인 풍요로 대체할 수 있다는 비정상적 사고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까놓고 이야기하면 돈만 있으면 다 되는 세상이라 생각하는 부류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유권무죄 무권유죄로 연결된 괴물의 사회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이다. 돈만 있으면 다 되는 세상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축재에 열을 올린 사회였기에 법과 원칙, 공적 시스템은 돈이라는 촉매제에 허물거리며 녹아버렸다.

 우리 사회에서 부자가 되는 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정치 실세를 아버지나 장인으로 두는 경우고 나머지 하나는 종교의 교주가 되는 길이다. 개천에서는 미꾸라지도 나지 않는 세상인데도 우리사회는 여전히 개천에서 용이 나는 '창조경제'를 만들겠다고 야단이다. 우스운 이야기다. 개천은 이미 말랐고 웬만한 개천은 복개하거나 정비공사를 마쳐 용이 날 가능성이 없다. 차라리 종교를 만들어라고 외치는 쪽이 현실적이다. 유병언이 그렇다. 구원파의 꼭짓점에 앉은 그는 지금 대한민국 사법질서를 가지고 놀고 있다. 음사사교 (淫祠邪敎), 중국의 고서인 '예기' 곡례에서는 제사 지내서는 안 되는 것을 제사 지내는 행위를 두고 음사(淫祀)라 했다. 그 음사가 집단화 되고 일정한 체계를 갖추면 사교가 되는 법이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음사를 만들어 무리를 모은 이들은 많았다. 불안한 사회는 언제나 새로운 탈출구를 찾게 된다. 오래전 정도령이 그랬고 불과 20여 년 전 다미선교회 등 시한부 종말론자들에 의해 주창된 휴거(携擧: 예수의 공중 재림 때 허공으로 들려 올라가는 현상) 소동이 그랬다.

 검찰이 경기도 안성에 은둔해 있을 것으로 추정하는 유병언 회장을 검거하려고하자 신도들이 종교탄압을 외치며 인간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다. 어처구니없게도 순교 이야기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25만 평이라는 어마어마한 종교시설인 금수원에 자신의 왕국을 짓고 온갖 불법을 자행한 유병언을 이제 그가 만들어낸 신도들이 구원하려고 한다. 집단 순교로 이어질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 사법당국은 여론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다 때려 잡아서라도 유병언을 구속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촛불만큼 뜨거워지면 눈 찔끔 감고 들어갈 태세다. 바로 그 지점이다. 법과 원칙을 팔아먹은 사회는 국민의 여론만 살피게 된다. 수첩공주, 원칙과 약속 대통령이 제대로 보아야할 지점은 팽목항이나 금수원 입구의 인간 바리케이드가 아니라 그토록 외쳤던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우는 방향이기에 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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