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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진료실에서 환자를 보다보면 과거가 자주 문제가 되는 사람들이 많다.
 과거에 부모로부터 학대나 사랑의 결핍으로 그것이 문제가 되면서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성장해가는 것이 어려워지는 경우이다.  부모와의 관계가 제대로 형성이 안된 그런 과거 때문에 현재도 불행한 것이다.  

 이런 경우는 과거는 그냥 지나가버리면 없어지는 그냥 물리적 시간으로서의 과거인 것이 아니고 지금까지 존재해오는 바 과거로서 그것을 '기재(旣在)'라고 부른다. 이 경우는 시간과 존재가 떨어질 수 없는 근원적 시간으로서의 과거이다.

 그래서 이 경우 과거는 결코 낡은 옷처럼 벗어 집어 던질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과거 얘기를 하게 된다.  그때 어머니가 어찌하였다고 예컨대 어머니가 직장을 가지고 있어 그가 항상 원할 때 같이 있어주지 못했다면 어머니로써는 잘 기억할 수도 없는 그때를 끄집어내며 어머니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위해 가정을 떠나서 연습실에 가 있지 않았냐는 식이다.

 이제는 지나가버린 그때가 지금은 그 아들의 발목을 붙잡는다.  그러면서 레코드 돌아가듯이 그것을 반복 반복한다.  상대방은 이제는 지나간 일인데 그것을 무엇 땜에 다시 꺼내서 힘을 빼고 결국은 자신에게도 해로운 일을 하고 있나 안타깝지만 그렇게 않으려 해도 그것이 안된다.   

 일종의 나쁜 습관처럼 과거의 행태와 방식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앞의 우울증 환자만이 그런 것이 아닌 것이다.  경주 리조트 붕괴사고 그리고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반복되는 것이다.  물론 우울증 환자의 경우와 복잡한 사회적 재난을 다루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겠지만 과거의 모습을 바꾸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것에서는 다를 게 없을 것 같다.

 필자는 개인이든 사회든 새롭게 개혁한다는 것은 사실 들추어 내기 싫은 과거를 마주칠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과거의 사실을 현재의 사실로 체험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이런 현재의 과거는 죽어서 사라진 과거가 아니며 과거로부터 리바운드하여 현재를 살게 되는 과거이다.

 들추어 내기 싫고 결코 넘어설 수 없을 것 같은 과거일수록 그 과거로부터 리바운드 해야 할 것이다. 레코드 돌아가듯이 반복하는 과거 또는 나는 그렇지 않다고 결코 그것을 보지 않으려 하는 그림자 같은 과거 그런 것은 사실은 바로 나의 미래의 인격인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어떤 나쁜 일을 경험하게 될 때 그것이 나에게 속한 것이어서 그런 일을 겪고 있는 것이라고 느끼지 않게 된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상대가 나빠서 나에게 나쁘게 느끼도록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쁜 것과 좋은 것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나쁜 것은 내 안에도 있고 더욱이 자신 안의 나쁨은 바깥으로 '무의식적'으로 '투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 반복되는 불행으로부터 넘어서려 한다면 과거의 고리를 자르거나 그림자를 바깥으로 돌리는 식으로는 안될 것이다. 자신의 그림자를 드러내어 소화시키며 받아들이는 과정으로서 극복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필자는 사회적 정의를 일반적인 생각과 좀 다른 쪽에서 이해하는데 '그림자'와 '과거'를 직면할 수 있는 것을 정의(正義)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림자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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