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훈풍이 몸에 휘감긴다. 때가 때인 만큼 앞집에도 옆집에도 장미가 숭얼숭얼 피었다. 먼발치에서 보기만 해도 마음이 시려온다. 이제는 저 예쁜 꽃들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다. 왜 이리 마음이 옥죄여 오는지 가슴조차 멍하다.

바다가 다 마르면 살아날까
물에서 지기엔 서러운 꽃들
진하디 진한 눈물만 흘리네

 어릴 때의 추억이 떠오른다. 소풍을 가는 전날은 학교 수업도 일찍 마쳤다. 하늘의 구름 색깔만 좀 더 짙어 보여도 마음을 졸였다. 그날 밤은 이슥토록 마당에 나가 내일의 날씨에 온 신경을 쓰면서 잠을 설쳤다.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고만할 때의 또래들은 모두 그렇게 들떠 있었다.

 봄날의 아침, 세월호에 탑승한 아이들도 여행을 떠나기 전날에는 나처럼 그랬을 것이다. 가슴이 맘껏 부풀어 올랐을 터이다. 며칠 떨어져 있을 뿐인데도 가족들과 손을 흔들며 집을 나섰을 것이다. 드디어 여객선을 타고는 우주를 다 포옹할 것 같은 바다의 경치에 흠뻑 빠져있지 않았을까. 수다의 꽃들은 저 넓은 바다만큼이나 많았을 것이다. 딱딱한 교실을 벗어나 모처럼 해방 된 기분에서 한껏 들떠 있었으리라.

 그 기분도 아랑곳없이 순간, 바다에서 일어난 이들에게 닥친 엄청난 재난 앞에 할 말이 없다. 세상사는 예상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 어처구니가 없는 일에 정신이 나갈 지경이다. 텔레비전에서는 세월호의 참상이 온 종일 특보로 나오고 있다. 아니 몇 날이 될지도 모르겠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볼 자신이 없다. 아니 끼니마다 밥을 먹고 숨을 쉬고 있는 것이 무슨 의미를 부여하는지 모르겠다. 

 거리의 모습도 슬픔에 젖어 있다. 신호등을 건너 아파트단지에는 언제 누가 쳐 놓았는지 담장 길이만큼 줄이 길게 쳐졌다. 주민들이 세월호 희생자들의 애통함을 표현하는 장소를 만들어 놓았다. 한 줄 글로나마 애도의 마음을 전하라고 마련해 놓은 것이다. 그 줄 따라 명복을 비는 글들이 하나 둘 매달렸다.

 그 글귀들이 마치 가을참새 떼가 전깃줄에 앉아 짹짹거리는 것처럼 나불댄다. 눈물의 물결이며 안타까움의 물결이었다. 아침저녁으로 줄이 점점 더 길게 생겨났다. 어제가 다르고 내일이 다르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한 층 두 층 늘어나 몇 층으로 줄이 쳐져 있다.
 
    처음 애도의 장소로 만들었을 때만 해도 장미가 피기 전이었지만, 오월, 그리고 유월로 접어들자 담장을 에워싼 장미들이 너도나도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핏빛 같은 꽃들이 담을 온통 물들였다. 그에 뒤질세라 애도의 글도 꽃송이가 늘어나듯 나날이 늘어났다. 저마다의 마음을 담은 글귀가 나부끼고 있다. 바람을 타고 매달린 종이에서 나는 타타타 부딪히는 소리가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부딪히는 소리 같고, 삼삼오오 걸어가면서 수다를 떠는 것 같이 들린다.

 아! 가슴이 저미어 온다. 바다가 다 마르면 그들이 살아날까. 오늘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숨이 막힌다. 거리에 나서면 발걸음이 저절로 그 곳으로 향한다. 한 줄기 바람이 스친다. 꽃물결이 일렁인다. 일제히 꽃과 하얀 종이가 흔들리니 흡사 빨간 꽃밭에 흰 나비가 나풀거리는 현상이다.

 그들의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일까. 하늘에서 갑자기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한들거리는 장미 송이에 투명한 물방울이 매달린다. 하얀 종이 위에도 눈물처럼 번진다. 비를 맞은 장미는 더한층 싱싱함을 보이다가, 어느새 물방울을 소리 없이 땅에 떨어뜨린다. 물에서 지기에는 서러운 꽃이, 진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